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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경 Dec 03. 2019

혹독한 아홉 수의 신년맞이

예밍아웃

 여느 날과 다름없이 회사에서 일을 하며 열심히 업무 메모를 적고 있는데 잔잔하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하고 가슴은 미치도록 답답했다. 빈 공간이 없는 듯한 답답한 몸통 속 크게 뛰는 심장 때문인지 손으로 만져보면 마치 탱탱볼처럼 작은 공 같은 게 뛰어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또 어떤 날은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집 침대에 누워있는데 천장이 내려앉는 공포를 느껴 정수리까지 이불을 덮어 눈을 가려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비교적 사람들이 몰리는 출, 퇴근시간대의 거리나 건물 안 등은 뛰다시피 걸어 다니는 게 습관이 되고 자연스러울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온갖 신경이 곤두선채로 두리번거리기도 하였다. 


두 번째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 크기와 정도와 빈도수가 다를 뿐 전체 성인 인구의 30% 정도는 한 차례 이상 공황상태를 경험한다고들 한다. 어쩌다 한 번의 경우들이 점차 일상생활을 침범하기 시작하여 회사에서도, 거리를 걷는 와중에도 몇몇 증상 때문에 피곤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정말 열심히 다니던 교회에 딸처럼 아껴주시는 목사님 게 기도 요청을 드리기도, 기다리던 주말이면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 고집적으로 집중해보기도 (꼭 보편적으로 선한 게 아니더라도), 집 동네 근처 조명은 밝지만 가장 사람이 드문 카페를 찾아다니며 글을 쓰고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내 핸드폰 진동소리만 들어도 쿵쾅거리는 답답함에 두 손으로 꼭 쥐고 테이블에 내려놓지 못할 때도 있으면서 자연스러운 척 나를 그렇게 훈련했다.


내 증상의 첫 번째 원인은  만성 스트레스다. 그리고 내 증상의 첫 번째 원인을 낳게 한 근본직으로 가장 큰 '영'번째 이유는 나의 지긋지긋한 예민한 성격이다. 내가 나를 갉아먹어가며 가장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좋게 좋게 생각해'라는 조언들은 내게 조언이 아닌 나와 정반대의 사고를 주입시키는 공격처럼도 느껴졌다.  좋아야 좋은 거지 뭘 좋게 좋게 생각해....


원래부터 '예민이 뭐죠?' 싶은 무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같은 방식인 '좋은 게 좋은 거지'가 너무 자연스럽게 '맞아 좋은 게 좋은 거야' 되는 그런 본디 내겐 없는 우둔함이 천성인 부러운 사람.


뭔가 풀리지 않는 일에 밤 잠을 설쳐가며 고민하고 어느 정도 해결이 될만한 방향이 찾아지기 전까지 끙끙대야 하는 예민한 사람과, 잠시만 다른 생각을 하기만 해도 원래 위치로 돌아오면 이불 뒤집어쓰고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무디고 편안한 성격을 소유한 사람의 삶의 질과 가치의 차이는 크다.


예민한 사람은, 또는 예민해본 사람은 안다. 알기에 반성하는 것이 예민한 탓에 주변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부분이고, 알기에 자책하는 것이 예민한 탓에 가장 고통받고 깊은 동굴화 되어가는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부분이다. 누군가에겐 해결방법이 치료이기도, 흡연이기도, 술이기도, 셋 모두이기도, 말도 안 되게 본인을 향한 폭력이기도 , 폭언이기도 한여러 가지 생김새의 예민함을 승화시키고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치료,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나를 틈틈이 다그치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해결하고 책임져야 할 내 감정이니깐.


'예밍아웃'을 하고 나면 알게 모르게 피곤한 오해를 감당해야 한다. 때로는 타당함과 타당하지 않음, 합리적임과 불합리 적임, 논리와 비논리를 구분 짓는 기준에 대한, 발언에 대한 이유들이 단순히 예민한 성향 탓으로 치부될 때가 많다.


 얼마 전 같은 회사에 동시에 입사했던 동기와 술을 한잔하며 무엇인가에 대해 맞다고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목소리를 내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화를 한 적 있다. 처음엔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단순한 구분이 아닐까 했는데 특정 상황을 두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글렀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의 잣대일 수 있는 것이다. 객관적이거나 확실히 설명이 되는 기준에 대한 질문이었다. 결국 '내 자식에게 같은 일이 생겼을 때 내가 부끄럽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이지 않을까'라는 대답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엄마는 못 그랬으면서 자식이라는 이유로 내 생각을 하나의 해결 방식으로 강요할 순 없을 테니까.


사실 요즘같이 노잼 연말을 보내는 내게 굉장히 중요한 대화이고 질문이었다. 전투력, 공경력 상승한 뾰족한 상태이기에 어쩌면 소중한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는 시기였다. 한번 더 거꾸로 걸어보고 돌아보라는 뜻에서 기어이 쓰리게도 날 더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 2020년으로 보내려나보다.


기대된다. 혹독한 아홉수가 보낼 2020년. 싫은 거는 악착같이 2019년에 다 놓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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