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원에 사지만 않는다면, 정말 만족스러운 기기
몇일전 생일이었다. 거의 3달전부터 아내가 갖고싶은게 없느냐 물었는데, 생각보다 물욕이 없어서 그런가 딱히 생각나는게 없었다. 10년도 훨씬 넘은, 아빠에게 물려받은 전기면도기를 바꿔주겠다고 했는데, 정말 오랜 세월동안 작동한 녀석 치고는 아직도 끄떡없어서 바꾸기가 애매했다.
그러던 중, 정말 아무 의미없이 던진 한마디에 내 선물이 급 정해졌다. 사실 정해졌다기보다는 받고나서야 이게 선물이었구나 하고 알게되었는데, 아내와 같이 유튜브를 보던중 헤드폰 컨텐츠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는데 "애매한 헤드폰 살 바에는 에어팟 맥스 정도면 괜찮지. 근데 70만원 주고는 절대 아니고 한 50만원 밑이면 정말 좋은 제품일 것 같아." 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사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조차 기억 안날 정도로 그냥 던진 한마디였는데.
아내가 처음 사준 모델은 실버였다. 뜯자마자 나온 한마디는 "존예" 였다. 정말 너무 예뻣는데, 모두가 생각하는 '아 이거 때 많이 탈것같은데..' 하는 생각이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이왕 아내가 심혈을 기울여 사준 제품인데 굳이 바꾸고싶지 않았지만, 아무리 애플케어를 하더라도 항상 조심스럽게 다루어줘야만 할 것 같은 연약한(?) 모습에 점점 나이가 들면서 너무 튀고싶지 않은(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생각에 아내에게 조심스레 "바꿔도되?"하고 물어보았고 아내는 아주 빠른속도로 스페이스그레이를 새로 주문하였다.
사실 에어팟 맥스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보고 구매한게 아니라, 먼저 구매하고 후기를 찾아본? 조금 특이한 상황이었다. 유튜브에 에어팟 맥스에 대한 내용을 샅샅이 뒤져서 보기 시작했고, 생각 이상으로 장점보다 단점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기기처럼 보였다.
평소에 유튜브 뮤직과 스포티파이를 즐겨 듣고 있었는데, 에어팟 맥스로 두 앱의 음악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큰 특징이 없었다.
우선 스포티파이는, 앱에서 EQ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긴 했지만, 평소에도 음악이 너무 작고 심심해서 스피커로 틀어놓지 않는 한 밖에서는 자주 듣지 않는 앱이었다. 뭔가 에어팟 맥스에서 더 많은 출력을 해줄 것 같았는데, 유튜브나 스포티파이나 둘 다 그만큼 케파를 제공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그러던 중 애플뮤직 미국계정이 1달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비교를 위해 다시 설치해보았다. 3년전까지만 해도 계속 쓰고있었는데, 유튜브뮤직으로 옮기면서 중단시켰던 애플뮤직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바뀌어있었다. 아.. 애플뮤직이랑 에어팟 맥스를 연결하고나서야 알았다. 애플 이 녀석들은 정말 양아치다. 두개를 같이 사용하니까 에어팟 맥스가 정말 대단한 녀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애플 뮤직에서 제공하는 돌비 애트모스는 클래식이나 재즈와 같이 보컬없는 악기 위주의 음악을 들을때는 최고의 환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보컬이 돋보이는 대부분의 노래들은 이상하게 소리가 작아지는 현상을 보이는데, 소식에 따르면 ios15부터는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내용이 있어서 기대해보기로 했다.
공간음향을 제대로 경험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에서 8월 중순부터 모든 컨텐츠에 공간음향을 적용시켰다. 에어팟 맥스랑 아이패드를 연결하고 넷플릭스로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보았다. 그냥 영화관이 따로없다.
필자는 개발자에 목이 아주 긴 기린형이고 거북목도 가지고 있다. 머리에 무게가 실리면 즉각 알아차릴 정도로 민감한데, 들었던 것들과는 달리 에어팟 맥스가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다. 물론 384g에 육박하는 몸뚱아리가 절대 가볍다고 할 수는 없는데, 무게 분산을 잘 해놓아서 그런걸까(요즘 나오는 아이폰도 이상하게 손에 잡으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머리에 얹은 이후부터는 무거워서 벗고싶은 생각은 한번도 없었다. 단, 헤드폰의 특성상 아직 여름이기도 해서 답답함은 있었지만 이건 에어팟 맥스의 문제는 아니니 패스.
하지만 평소에 가방에 넣어 다닐때에는 생각보다 무겁다. 뭐 헤드폰이니까 이것도 어느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인듯?
이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말할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수많은 고가의 이어폰으로 음악도 들어보고 청력에 이상은 없을까 걱정될정도로 학생때부터 음악을 달고 살았던 사람으로써 음질에 대한 어느정도의 평가는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에어팟 맥스는 정말 음질이 플랫(flat)하다. 플랫하다고 표현하면 꼭 안좋은 느낌이 드는데, 그냥 음악을 있는 그대로 뽑아낸다고 보는게 좋을 것 같다. 에어팟 맥스와 비교되는 소니의 제품이나 뱅앤올룹슨의 제품등과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느껴진다. 헤드폰의 수많은 출력들을 이용하여 음악을 더욱 화려하고 즐겁게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할만한 제품은 아니라는게 내 의견이다.
그렇다면 누구한테는 좋을까? 음악을 그대로 들어야만 하는 영상 편집가나 음악 관련된 분들에게는 좋을 것 같다. 물론 음악 관련된 분들은 이보다 더 하이엔드 급의 헤드폰을 사용하겠지만, 영상을 편집하는 분들은 이러한 날것의 음악을 들려주는게 좋을 수도 있다.
필자같은 개발자도 포함이다. 음악을 듣기보단 코딩에 집중할 수 있는, 그래서 즐기기보다는 편안하게 들려줄 수 있는 헤드폰이 필요하다. 그런 기준으로 개발자에겐 아주 안성맞춤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도 구매 이후에 회사에 가져가서 일할때마다 듣고 있는데, 노이즈캔슬링(뒤에서 이야기할테지만)을 포함해서 일할 때 아주 좋은 환경을 제공해준다.
아마 에어팟 맥스를 까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격에 대한 가성비를 꼭 이야기할 것이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다. 나도 만약 아내가 70만원 이상의 정가를 주고 사줬다면 당장 환불했을 것이다(아내는 이것저것 포인트와 카드 신공을 펼쳐 정확히 50만원에 구매했다).
70만원이면 왠만한 하이엔드 급의 헤드폰 구매가 가능한데, 뭐랄까.. 뚜렷한 특징이 없는 헤드폰을 단순히 애플이라는 이름과 감성때문에 71만9천원을 주고 사기에는 나같은 앱등이(앱퀴벌레)에게도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림대의 김도현 교수께서 1시간에 걸쳐 에어팟 맥스를 리뷰하였다. 개인적으로 에어팟 맥스에 대해 칭찬이 많아 너무 장점만 보이려는 것은 아닐까 싶다가도 객관적인 설명이 아주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얘는 그냥 말이 필요없다. 에어팟 프로를 쓰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노이즈캔슬링이었는데, 에어팟 맥스는 그 이상의 노이즈 캔슬링이 된다. 정말 거의 안들린다. 지옥의 꽹과리라고 불리는 5호선의 소음도 이 녀석만큼은 뚫지 못했다.
에어팟 프로를 사용하면서 통화품질에 항상 아쉬움이 많았다. 노이즈 캔슬링을 켜두면 상대방에게 내 목소리가 잘 안들리는 현상이 자주 발생해서 전화할때에는 되도록이면 에어팟 프로를 귀에서 빼고 전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에어팟 맥스의 전화품질은 상상 이상이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면서 노이즈캔슬링을 그대로 켜두고 통화해도 상대방이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또렷하게 들린다고 놀란다. 물론 노이즈캔슬링 덕분에 상대방의 목소리 또한 굉장히 깨끗하게 잘 들린다.
에어팟 맥스에는 두 군데에 매쉬소재가 적용되어 있다. 하나는 이어캡이고 또 하나는 캐노피(정수리 받침대)이다. 필자는 안경을 쓰는데, 일반적인 헤드폰을 장시간 사용하면 귀가 굉장히 눌린다.
그런데 에어팟 맥스는 매쉬 소재의 이어캡으로 되어있어서 귀가 하나도 눌리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이 에어팟 맥스를 쓰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어캡은 교체가 가능(단 8만원이나 한다)하지만, 캐노피는 교체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의 색이 바래지만 꽤 골치아플 것 같다. 그래서 실버나 그린과 같은 색상보다 스페이스 그레이와 같이 어두운 캐노피를 적용한 색상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사실 에어팟 맥스를 사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애플뮤직에서 유선에 한해 어느정도의 무손실 음원을 제공하는데, 에어팟 맥스는 유선 또한 가능하면서 3.5mm 케이블은 동봉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재미있게도, 이 케이블은 무조건 '45,000원짜리 정품'이어야만 동작한다. 한 유튜버가 정품이 아닌 다양한 케이블을 이용하여 테스트하였지만, 결국 정품 외에는 어느 것도 동작하지 않았다. 70만원이 넘는 거금의 헤드폰이라면 적어도 이 케이블만큼은 같이 동봉해주었음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추가로 영디비라는 유튜버는 본인의 커뮤니티에서 에어팟 맥스에 유선을 연결하여 무손실 음원을 들었을 때의 효과를 공유했다. 필자도 유선으로 들었을 때 무손실이 적용되어서 그런지 훨씬 깨끗하고 또렷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솔직히 정말 예쁘다. 이걸 패션으로 사용해도 무방..하지만(솔직히 가격이 너무 비싸다), 밖에 가지고 돌아다니면 충분히 시선 집중받을만하다. 누군가는 사격장 귀마개라고 하던데, 생각보다 착용하면 너무 예쁘다.
아, 위에서 설명했던 것 처럼 무려 384g에 육박하는 무게가 상당히 무겁게 느껴지긴 하다. 필자는 목이 긴 기린이라 괜찮지만, 대부분은 헤드폰을 목에 걸면 턱끝에 헤드폰이 닿아서 불편하다는 말도 많다.
정말 애플 기기간 연동 속도는 상상 이상이다. 너무 편하고 빠르다. 필자는 아이폰+아이패드+맥북+애플워치 그냥 사과농장을 한참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앱퀴벌레다. 이런사람에게 에어팟 맥스는 그냥 최고의 기기다. 단, 이렇게 애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점점 사라져만 간다.
아내 덕분에 2주 가까이 정말 너무 즐거운 음악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일하면서 듣기에도 너무 좋고, 평상시에 혼자 영화를 볼때 사용하기도 너무 좋다. 플랫한 음이 심심하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음악 자체를 그만큼 잘 전달해주는 매력이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이 가격만큼은 아무리봐도 너무 비싸다. 약 50만원 내외에서 구매한다면 정말 좋은 라이프를 선물해줄 수 있는 기기라고 생각한다. 무게가 무겁다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았지만, 필자와 아내는 모두 그렇게 공감하지는 않았다. 아, 그리고 이 녀석은 애플뮤직과 꼭 한몸이어야 한다.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졌다.
한달뒤에 애플케어 플러스 등록할 계획이다. 이 녀석은 적어도 10년은 사용하고 싶다. 깨끗하게 오래오래 잘 사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