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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경 Jun 10. 2020

생명체 K의 역습

혹시 당신도 K인가?

여기, 제때 숨을 쉬려면 평가받아야만 하는 생명체 K가 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세상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K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규칙도 우스꽝스럽다. 일단 K의 패를 먼저 드러내라는 것. K를 지탱하고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정렬해서 가볍기만 한 얇은 여백에 글자로 채우기다. 이게 무슨 규칙이야! 소리를 꽥 질러도 누구 하나 K의 소리를 들어줄 이는 만무하다. K의 외침은 먼지처럼 날려서 누구의 귀에도 가닿질 않는다.


언제부턴가 K는 별 볼 일 없이 발에 채는 깡통이 측은해졌다. 때때로 평가받는 날이 오면 바바리맨이 된 기분이기도 했다. 짠하고 오픈하고 제 알몸을 평가받는 기분이랄까.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는 사람들 사이로 부끄럽거나 혹은 긴장된 K의 성대는 심하게도 흔들렸다.


"안타깝게도, 다음 기회에..."


K는 여기저기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평가받는 것도 억울한데 하고 싶은 것도 뜻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의 규칙과 기준에 따른 것이기에 반기를 들지도 못했다. K는 여태껏 몰랐다. 이렇게나 부족하고 모자란 게 많은지를. 알기는 알겠는데 무엇이 얼마큼 부족한지를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그건 오롯이 잠깐 스친 그들만이 알고 있었다. 찰나에 마주 보며 상석에서 K를 한번 훑어본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대단했다. 몇 분 동안 K의 인생 전부를 스캔할 수 있는 대단한 초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지구별엔 평가받으며 살아야 하는 생명체 K가 있다면, 능력을 스캔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생명체 Y도 있었다. 그렇게 K와 Y가 어우러지는 지구별은 오늘도 자전축을 중심으로 아주 천천히 돌고 있다.




하필이면 왜 K일까? 


그쯤 되니 K는 제 안을 들여다봐야 했다. 어디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이 모자란 것인지 본질을 좇기로 했다. 무엇보다 K는 바바리맨의 액션에 지쳐가고 있었다.


K의 삶이 평범하고 하찮아진 것은 Y를 만나던 날 S를 알고부터였다. S는 집안, 학벌, 외모, 스펙 모두 S 클래스를 누리는 요상한 생명체였다. S의 발견은 K를 한방에 KO 시켰다. 그제야 '안타깝게도, 다음 기회에'의 메시지에 K는 고개를 끄덕거려야 했다.

K와 S는 평가의 기로에서 늘 방향이 달랐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K는 S보다 앞서 나갈 수가 없었다. 큐빅이 제 아무리 빛을 내도 다이아몬드가 될 수 없듯이. K는 탈락 메시지에 어떠한 이유도 없었던 것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탈락에는 어떠한 이유도 필요치 않았다. K는 K이고 S는 S이니까. 본질은 바꿀 수 없는 거니까. 그제야 탈락이 좌절하거나 아쉬워할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그들만의 리그? 저들만의 리그!


태생부터 차이가 존재하는 지구별에서는 더더욱 리그의 세력은 다양했다.

학벌, 지연, 직업, 수준, 경제력 등으로 세분화되어 펼쳐졌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역과 동네로 양분화되기도 하고 아파트의 네임벨류로도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했다. 특히나 가질수록 많을수록 리그는 복잡하게 얽혀갔다. K가 그 속에 속하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날개를 단다거나, 한방을 얻는 것. 그 외 한길을 파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었다. 허나 여간해서는 K가 S로 레벨 업되는 건 가뭄에 콩 나듯 기적 같은 일이었다.



K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다시 말해 K는 S를 알기 전, Y를 만나기 이전에는 가장 위대한 삶을 사는 생명체였다. 비교가 되는 순간 평가를 받는 순간부터 K는 변했다. 그것은 열등감이거나 좌절감 때문이기도 했다. 지구별에서 K가 온전히 살아남으려면 S만큼 많이 갖거나 그도 아니면 그들을 넘보지 않는 것뿐이었다. 많이 가질 수 없다면 방법은 딱 하나다. 지구별의 자전축처럼 경계를 세워 넘보지 않으면 된다. 다행히도 지구별엔 낮과 밤이 공존하고 있으니까.


서로 각기 다른 생명체가 상생하는 방법은 제 구역을 함부로 넘나들지 않으면 된다. 바다에 사는 생명체는 바다에서, 땅에서 사는 생명체는 땅에서 사는 것처럼 말이다. 땅속에 사는 생명체가 하늘 위를 가로지르지 않듯이 K는 K의 구역에서 위대한 척 살면 되는 것이다. 지구별에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기준을 만들어 비교를 하고 서열을 나누는 것만큼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건 마치 고래가 위대하냐, 호랑이가 위대하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문제를 잘 푼다거나 명예로운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비교의 상위에 두는 건 대체 어떤 생명체의 생각에서 나온 기준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K에게 상위에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건 많이 웃는 것, 감사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다. K를 아는가? 혹시 당신은 K인가? 그렇다면 K구역의 확장을 위해서 나와 함께 오늘 밤 건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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