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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경 Jun 17. 2020

날마다 국사발

김칫국이 채운 반쪽 사랑


치열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 비가 새고 바람이 넘나드는 우리 집에는 날마다 칼칼하고 시원한 냄새가 퍼졌다. 그 안에는 엄마의 애씀이 그리고 세 딸의 희망이 얼버무려져 집안을 뜨겁게도 뎁혔다. 우리는 날마다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며 쑥쑥 자랐다. 김칫국이 없었으면 애초에 무너졌을 삶이었다. 그래서 내겐 그것만큼 각별한 게 없다.


"언니, 또 먹어?"

의아한 표정으로 동생이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 없이 다시 수저를 들어 올렸다. 입에 든 콩나물을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동생의 질문을 곱씹어봤다. 하기사, 벌써 두 그릇째였다. 그러나 여전히 첫 그릇을 먹는 것처럼 내 수저질은 지칠 기색이 없었다. 계속해서 동생의 따가운 시선이 가닿자 국사발을 두 손으로 움켰다. 그리곤 그릇에 남아있는 국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동생 그릇에 든 찰랑대는 김칫국 위로 흘깃한 시선이 비쳤다. 그래도 나는 움푹하게 깊은 솥단지의 뚜껑을 다시 열었다. 그 옆에 놓인 국자를 집어 들자 동생의 볼멘소리가 이내 튀어나왔다.

“그만 좀 먹어, 이 돼지야!”

내가 순식간에 두 그릇을 비우고 세 그릇을 담는 동안 동생은 한 그릇도 채 비우지 못했다. 무엇이든 나만큼 갖거나 먹으려고 안달이 난 그녀였다. 줄곧 세 번째 국을 흘깃하게 쳐다보면서 내게 질세라 동생의 수저질은 바빠졌다. 그럼에도 거대했던 나의 위장을 넘보기엔 동생의 위는 한참이나 작았다. 겨우 8살이 12살의 먹부림을 쫓아오기엔 한참이나 멀어 보였다.


엄마는 매일 거무스름한 초야에 나가서 동트는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일하러 나갈 때마다 전기밥솥에 쌀밥을 앉혔고 커다란 양수 솥단지에 김칫국을 한 되만큼 끓였다. 집에 남겨진 자식들의 끼니를 챙기 는 엄마의 뒷모습은 애처롭기만 했다.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 투정 한번 부리지 않았다. 그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김칫국을 맛있게 먹는 이었다. 그럴 것이 솥단지가 텅하니 비워져 있을 때마다 엄마는 잘 먹어서 다며 미소를 짓곤 했다. 나는 그게 효도인 줄 알았다.


엄마는 젖먹이 막둥이까지 세 딸을 홀로 키웠다. 누구보다 왜소한 몸집의 엄마였지만 남들보다 강한 생활력으로 삶을 버텼다. 나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 키워주고 먹여주는 일들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오롯이 엄마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었음을 그날에서야 게 된 것이다. 새벽녘,  문소리가 들리고 물소리가 이어질 즈음 엄마의 흐느낌이 벽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틈으로 새 나올 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죽이며 웅크고 있었다. 엄마의 불행이 나 때문인 것만 같아 가슴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날 이후 눈을 뜨는 아침마다 의무적으로 안방 문을 살며시 닫았다. 간밤에 엄마의 무사귀환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엄마가 없는 밤마다 달을 보며 기도하기 시작다. 아빠사라진 밤이 또다시 찾아올까 봐 매일 밤이 불안다. 엄마는 그런 아빠와 달리 그토록 무거웠던 삶의 무게를 쉬이 내동댕이치지 않았다. 아침마다 쓰러진 채 잠들어 있는 엄마의 전신을 바라보면 절로 고맙다는 인사 숨죽이며 다. 그렇게 매일 아침을 나홀로 분주하게 맞았다.


나는 일찍부터 철이 들었다. 엄마의 짐을 나누 동생끼니챙겨야 했고 젖먹이 막내를 돌야 했다.  반쪽짜리 울타리지만 세상 어느 집보다 절실하게 소중. 래서 불평없이 매일을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그 수고 때문이었는지 고스란히 솥단지의 바닥을 긁어도 허기가 졌다. 동생의 눈초리에도 끼니때마다 김칫국을 세 그릇이나 먹어치던 까닭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고춧가루만 듬성듬성 붙은 솥단지를 보 우리들의 일과를 점다. 런 후에 마의 가뿐한 손으로 솥단지 다시 달궈지면 날마다 사발 우리들  한뼘 더 라있었다.




27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김칫국이 좋다. 특히 기운 없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얼큰하고 뜨끈한 김칫국이 자꾸만 생각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김칫국 먹고 싶어.”

“그래? 우리 딸, 엄마가 끓여서 갖다 줄까?”

엄마의 국물 맛은 여전하다. 나는 며칠 전 엄마의 김칫국을 재현해 보려고 시도했다. 오목하고 작은 냄비에 멸치 다시마 육수를 내는 동안 익은 김치를 송송 썰었다. 우려낸 육수에 김치와 콩나물을 넣고 고춧가루 한 숟갈과 마늘 듬뿍, 소금 한 꼬집을 담아 푹 끓였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을 한술 뜨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 있었다.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란 게 존재한다는 걸. 온갖 양념을 쳐도 내가 원하던 국물 맛을 내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 후 엄마가 끓여준 김칫국을 한 입 뜨고서야 '캬,이맛이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엄마의 손맛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게 하는 묘약이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날 김칫국에 밥을 말아 세 그릇이나 비웠다. 무엇을 먹어도 감흥이 없어서 한 그릇을 채 비우지 못했던 요즘이라 오랜만의 과식이 절로 기분 좋았다.


언제라도 전화 한 통이면 그리운 맛이 엄마의 손에 들려 배달된다. 생생한 엄마의 손맛을 즐기는 일이 이제는 선택받은 자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인 것을 다. 그런 이유로 오늘도 냉장고를 열어 김칫국을 꺼냈다. 마침 아들이 허기진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엄마, 오늘 저녁 메뉴뭐예요?”

“오늘 저녁은 외할머니표 김칫국이지.”

이내 아들은 또다시 그거냐고 시무룩해다. 세상에 하나뿐인 맛을 여전히 모르는 아들이지만 그래도 내겐 사랑이다. 벌써 김칫국 냄새가 스멀스멀 코끝으로 퍼져다. 엄마의 내리사랑 가스불 위에서 펄펄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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