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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 Oct 24. 2021

숲을 따라 가을路

서서히 가을로 물들어가는 숲

  오후 1시 53분 숲과 숲 사이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데 옅은 하늘에 손톱달이 빼꼼 떴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를 들이밀어 보지만 초점을 잡지 못한다. 내 눈으로는 선명하게 보이는데 사진으로는 못 담아낸다. 지금 이 시각에 달이 뜬 걸 보니, 절기상 추분. 검색해보니 딱 들어맞는다. 어쩌면 이렇게 절기는 자연의 흐름을 기가 막히게 맞출까! 새삼 우리 조상의 지혜에 감탄한다. 추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기다. 이제 여름은 가고 가을의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점점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진다. 사계절 중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가을을 만끽해야 한다. 눈 깜짝하면 코트 걸치고 주섬주섬 패딩을 꺼내 들게 될 테니까.


 숲의 가을은 바람이 시작을 알리고 소리가 뒤를 잇는다. 후덥지근했던 바람의 온도가 산뜻하고 선선해지면 매미 소리가 멀어지고 귀뚜라미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면 숲의 하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맑고 투명했던 하늘색이 높고 선명하게 바뀌었다. 가뿐해진 하늘의 무게에 구름도 더 높이 두둥실 떠오른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공기에 숲은 서서히 옷을 갈아입고 있다. 간밤에 날씨 요정이 노란 물감을 톡 떨어뜨리고 갔을까? 나무의 위쪽부터 서서히 가을 물이 든다. 초록 잎이던 부챗살이 노랗게 물들었다. 울긋불긋 알록달록한 색감을 볼 수 있는 계절이다. 곡식과 과일뿐만 아니라 색도 무르익어 더욱더 풍요로운 가을이다. 이번엔 숲에서 가을을 보낼 생각을 하니 설렌다. 어느 때보다 뚜렷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빛을 품어 짙고 그윽해진 색과 결을 한 아름 담아야지.



  퇴근할 무렵엔 따스하고 진한 빛이 숲의 깊숙한 곳까지 가득 찬다. 노르스름한 햇살에 나른하면서도 차가워진 공기에 코끝이 시리다. 해는 점점 하루 일과를 서두르지만 반대로 내 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읽고, 밑줄을 긋고, 다시 첫마디로 돌아가 곱씹고, 갈피를 끼우게 하는 순간들을 챙기느라 자꾸만 걸음을 멈춘다. 머지않아 간결하고 고요한 계절이 다가올 테니 그전에 부지런히 숲 구석구석을 뒤적여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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