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맞춰 호흡하기
흐리지만 선선하니 좋다. 오전에 필라테스를 하고 점심을 거하게 챙겨 먹었더니 식곤증으로 버스에서 내내 졸았다. 비몽사몽 숲으로 걸어가는데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 잠을 깨운다. 좌우로 도리도리 주변을 살피고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 잠시 마스크를 턱 끝까지 내렸다. 양쪽의 폐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깊이 숨을 들이 마셔본다. 손끝, 발끝, 머리끝까지 맑은 공기로 가득 차게. 후우 이제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다.
필라테스 수업을 듣는데 유독 ‘호흡’이라는 글자가 계속 귀에 꽂혔다. 매번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는 부분이지만 오늘따라 크고 진하게 다가왔다. 수업 시작은 늘 호흡 연습부터 한다.
처음엔 조금 의아했다. 호흡도 연습이 필요한가? 우선 양손을 갈비뼈로 가져간다. 손바닥을 펼쳐 엄지는 갈비뼈 뒤쪽을, 나머지 손가락은 갈비뼈 앞쪽을 감싸듯이 얹는다. 여기까지는 쉽다. 이다음이 문제다.
어깨는 끌어내리고 아랫배가 판판해지게 힘을 준 상태에서 갈비뼈가 옆으로 늘어나는 느낌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텍스트로는 완벽한데, 내 몸은 매번 다 따로 논다. 어깨를 누르면 아랫배에 힘이 풀리고, 갈비뼈를 옆으로 늘리면 어깨와 가슴이 들썩인다. 숨 쉬는 게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 가장 먼저 배워서 30여 년이 넘도록 해왔는데 할 때마다 낯설고 어렵다.
요즘은 특히나 마스크를 쓰고 있어 호흡을 크게 크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지 않으면 호흡이 속에서 맴돌아 어지러울 수 있다고. 더 의식해서 크으-게 들이마시고 기-일게 내뱉으며 호흡에 집중했다.
숲으로 들어와 근무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호흡에 집중했다. 마스크를 한 번 걸러 들어오는 공기라 숲의 공기를 그대로 마실 수는 없지만, 최대한 내 몸 곳곳에 숲의 좋은 공기가 닿기를 바라면서. 코를 통해 스읍 한껏 들이 마신 후 입으로 가늘고 길게 후우우우 내뱉는다. 안 좋은 것들이 날숨과 함께 몸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굳이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내 몸이 알아서 숨을 쉴 테지만, 가끔은 그 자연스러운 것에 시선을 두고 마음을 담으면 새삼 감사함과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숲도 호흡할까? 모든 생명체는 호흡을 하니, 당연히 숲도 호흡한다.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뿜어내어 우리에게 이로운 공기를 선사한다.
‘근데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이건 광합성이잖아.’
광합성의 과정에 호흡이 포함되어 있었던가? 광합성이랑 호흡이랑 다른 거였나? 헷갈리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 들고 급하게 검색을 했다. 찾아보니 식물은 광합성도 하고, 호흡도 한단다. 둘은 별개의 과정인 거다.
광합성은 나무가 에너지를 얻기 위한 것으로, 물과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삼아 햇빛의 도움을 얻어 산소와 포도당 그리고 물을 만들어 내는 활동을 말한다. 포도당은 나무의 영양분이 되고 산소는 나무가 호흡하는 데 쓰인다. 광합성을 위해선 햇빛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해가 있는 낮에 활발하게 일어난다. 사람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하루에 세 끼니를 나누어 먹지만, 나무는 해가 비추는 동안 부지런히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낮에만 일어나는 광합성과 다르게 호흡은 밤낮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 그런데 그럼 나무가 사람에게 산소를 공급해주는 게 아닌 거 아니야? 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은 활동량이 많아 호흡량도 많지만, 나무는 움직이지 않기에 호흡량이 적다. 그리고 나무는 호흡으로 뱉은 이산화탄소를 광합성 하는 데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의 일생을 놓고 봤을 때 호흡 양보다 광합성 양이 많아 이산화탄소보다 산소를 더 만들어낸다.
사실 나무가 만드는 산소의 양이 적다고 하더라도 호흡으로 내뱉는 이산화탄소도 모자라 온전히 자기만의 편리함을 위해 여러 가지로 이산화탄소를 뿌려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선 할 말이 없다.
고개를 젖히고 시원스레 뻗은 소나무 가지와 잎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내어주는 숲에게 ‘고맙다.’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숲의 곳곳을 정돈해본다.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에 숲이 뒤돌아서지 않도록 진심이라는 마음의 산소를 뿜어본다. 모두가 함께 조화롭게 살 수 있게 우리의 호흡도 너희와 나란히 맞춰보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