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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 Jan 15. 2022

바다의 숲이 채워주는 오늘

가을이 무르익는 갯골

 

 짧은 근무시간이지만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배려로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환경으로는 최고의 근무지인 갯골. 넓게 펼쳐진 풍경은 보기만 해도 마음속 깊은 곳까지 뻥 뚫어준다. 짧고 굵게 갯골을 즐기기엔 생태체험장이 딱이다. 소금창고 옆 언덕을 넘어가면 데크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갯골의 골짜기 한 자락을 훑어보고 올 수 있다. 농게, 방게가 지은 집도 보고 진득한 갯벌에서 피어나는 풀과 꽃 구경도 할 수 있다.


 갈대와 억새가 팝콘 터지듯 뽀얗게 피어오르면 갯골의 가을은 점점 더 무르익는다. 물이 빠진 갯골엔 바닷물 대신에 갈대가 가득 차 있다. 솨아아 솨아아 갈대의 꽃잎과 잎사귀들이 서로를 간질이며 내는 소리가 밀려온다. 마치 철썩철썩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살랑이는 갈대들 사이로 빛이 내려앉은 자리엔 그 빛깔을 흡수한 듯 무지개가 둥둥 떠오른다. 고요한 갯골을 잔잔히 채워주는 소리와 빛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잠시 멈춰서서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세차게 부는 바람을 함께 견디는 갈대와 바람이 함께 만드는 물결을 바라봤다.



 

 어디를 봐도 아름다운 이곳. 눈길이 가는 곳곳을 찜해두며 차곡차곡 간직해둔다. 유난히 높고 파란 하늘을 하얗게 수놓는 갈대와 억새. 포인트 컬러로 자줏빛 붉은 점을 콕콕 찍는 칠면초와 나문재. 그리고  모든 풍경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담아내는 염전의 물결이 사랑스럽다.


 

 안녕, 안녕 손을 흔드는 억새 무리. 어느 때보다 안녕이라는 글자가 진하고 무겁게 다가온다. 동글동글한 글자의 생김새도, 부드럽게 읽히는 발음도,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이라는 뜻도 마음에 콕 박힌다. 새삼 곱고 아름답다.


 갈대와 억새를 구분할 줄 몰랐는데, 매일 갯골을 다니면서 이제 확실히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갈대는 꽃차례가 원뿔 모양이고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도 한다. 반면 억새는 꽃차례가 부채 모양으로 갈라지고 한 번 갈라진 이후에는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지지 않는다. 갈대는 연한 황색 빛이 돌고 억세는 꽃이 하얀빛이 돈다. 갈대는 부스스하고 자유로운 느낌이라면  억새가 깔끔하고 직선적인 느낌이다.



“이게 무슨 열매인지 알아요?”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소금창고로 돌아가는 길, 해설사 선생님께서 깜짝 퀴즈를 내셨다. 그럼요, 알죠! 해당화 열매잖아요. 예전에 공모전 그림 제출하러 국립생물자원관에 갔을 때 본 적이 있어 알고 있다.


“맞아요. 여기가 바닷가 근처라 많아요.”


  ‘아, 해당화의 해가 바다 해였구나!’ 어쩐지 왜 여기에 해당화가 만발했는지 알겠다. 갯골로 출근할 때만 해도 자줏빛 해당화가 활짝 피어있었는데 그새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혔다. 열매가 익어가면서 색깔도 점점 진해지는데 때마다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설익은 해당화를 아작 씹으면 파프리카 맛이 나고, 익어갈수록 새콤달콤한 맛이 난단다. 탱글탱글한 질감과 싱그러운 주홍빛이 영롱하다.




 잊고 지내다가도 외출하기 전에 마스크를 챙겼는지 확인하면서, 개찰구를 통과하며 들려오는 ‘마스크를 꼭 착용해주세요.’란 알림에, 그리고 소금창고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체온 측정을 할 때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를 새삼 알아챈다. 잃어버린 게 더 많이 생각나는 날들이지만 그 안에서도 분명 채워진 게 있을 테니 내게 주어진 것들을 먼저 기억하자고 다짐한다.


  초록빛이었던 이파리들이 황금색으로 변해 눈부시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잎사귀 색깔의 변화. 색이 더 아름답게 드러나도록 도와주는 따스한 빛. 물결 한자락 없이 고요한 수면 위로 그려지는 구름과 하늘이 채워주는 오늘을 소중히 담아본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 모두가 평안하길, 모두가 건강하길, 조금만 더 함께 버텨주길. 결국엔 다 지나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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