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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 Jan 17. 2022

비오는 날에 이불 밖도 괜찮아

비오는 날 바다의 숲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이 회색빛으로 뿌옇다. 자욱하게 앉은 안개 사이로 빗방울이 내렸다. 뉴스를 확인해보니 한 달여 만에 내리는 가을비란다. 쏴아아 -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가 어쩐지 반갑더라니! 출근하는 동안 비는 잠시도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캐 묵은 갈증을 말끔히 씻어주려는 듯 쉬지 않고 내렸다.


 투둑 툭, 소금창고의 슬레이트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정겹다. 어렸을 적에 살았던 낡은 집도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우리가 사는 작은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큰집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에는 투명한 슬레이트 지붕이 얹어져 있었다. 오르락내리락 물결모양으로 굽이치는 투명한 굴곡 사이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두둑 울리면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왠지 정수리에 빗방울이 도독 똑! 하고 떨어질 것만 같아 다섯 걸음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후다닥 달려 작은 입구로 몸을 들이밀곤 했다. 어차피 비는 움푹한 투명 골짜기를 따라 바깥으로 흘러갈 텐데.


 

 슬레이트 지붕이 우렁차게 울릴 때 부리나케 뛰어다니는 이들이 또 있다. 비 오는 날이면 알람처럼 깨우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소금창고 밖으로 뛰쳐나오셨을 소금밭 일꾼님들. 애지중지 걷어놓은 소금이 물에 녹아버리지 않도록 염전으로 나와 거둔 소금을 창고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잠자는 순간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귀를 쫑긋 열어두어야 하는 고된 직업이다. 비가 오는 걸 알아채야 해서 일부러 소금창고의 지붕을 슬레이트 소재로 만들었다고 한다. 염전에서는 소금이 제일 중요하고, 또 그만큼 소금이 귀했던 시절이라 그렇다지만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귀한 소금을 다루는 염부들에 대한 대우는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니까. 요즘 상황을 비춰보아도 비단 그 시절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해 더 씁쓸해진다.


 함께 근무하는 해설사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비 오는 날의 갯골을 즐겼다. 선생님께서 강수량이 적은 갯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며 휴대폰을 꺼내 드셨다. 선생님을 따라 나도 바다의 숲에 비 오는 날을 담아본다. 비가 와서 괜히 기분이 처지기도 하고 은근슬쩍 날씨 탓을 하며 게으름을 피우고 싶기도 했는데 비 오는 날의 풍경도 소중히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번져 기분 좋게 시간을 보냈다.




  퇴근 무렵이 되어서야 온종일 내리던 비가 그쳤다. 오랜만에 찾아온 단비 덕분에 여유롭게 근무를 마치고 돌아간다. 칠면초 열매 사이사이, 나문재 열매 사이사이에 빗방울이 방울방울 맺혔다. 안 그래도 아름다운 아이들이 물방울 덕을 보니 보석처럼 빛난다. 비가 와야만 볼 수 있는, 아니 지금, 이 순간에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비 오면 무조건 집콕이 철칙인 집순이의 마음 완전히 홀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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