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결정

by 유광형

“여보…”

“아빠…”

“들어가. 신희지 너도 들어가.”

희지가 먼저 방에 들어가고 나서 희성도 이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당신 왜 그랬어… 이 정도로 화낼 일 아니었잖아… 응?”

“미안…하아. 너무 놀라서… 아니 흥분해서. 미안해 내…내가 요즘 조금 예민한 것 같아.”

“사과는 나한테 하지 말고 희성이한테 해야지. 오늘은 말고 내일 사과해 희성이한테. 당신 이러는 거 나 처음 봐서 너무 놀랐잖아.”


세현은 방으로 들어가며 광훈을 몇 번씩 뒤돌아봤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전 매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뺨을 때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광훈은 혼자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희성을 때렸던 바로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희성이 말할까 봐, 가족들에게 그가 이식자라는 것이 들킬까 봐 그게 두려워서 희성을 때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희성은 말을 끝맺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제 발 저려 희성을 때렸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가 마음에 걸려 희지와 말다툼했던 희성이 자신을 얼마나 한심하고 초라하게 볼지 생각했다. ‘어른스럽고 본받고 싶은 부모는 못 될지언정 부끄러운 부모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자기 살기 급급해 자식을 때리는 부모라니… 죄책감이 온몸을 짓눌러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광훈은 끝내 희성의 방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출근했다.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는 사이 세현이 꼭 사과하고 가라며 손짓을 해댔지만 문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을 희성의 얼굴을 마주하기 두려웠다. 사무실에 앉는 순간부터 퇴근하는 순간까지 광훈의 머릿속은 온전치 못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가족들에게 감추려고 해왔던 노력이 오히려 가족에게 상처를 남겼다는 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광훈은 이제 식사 부적합 단계의 마지막인 육류 거부단계까지 경험했다. 일반고기도 먹지 못하고 어떤 음식이든 인육 또는 사람의 피가 포함된 음식이어야 먹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 주말이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 전 가족들과 함께 웃으면서 식사했던 기억 옆에 식사를 마치고 음식을 게워내려 화장실에 들어서는 기억이 겹쳤다.


퇴근길, 지하철 역사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투표 수거함이 광훈의 시선에 걸렸다. 어제 토론회에서 온건파 이식자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저희는 움직여야 합니다. 사회가 어떻고 시선이 어떻든 저희는 저희 살길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아직 투표하지 않으신 이식자분들이 계신다면 꼭 투표 부탁드립니다.’


투표 수거함 옆에 아직 서명란이 비어 있는 이식자 전용 성명서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가장 윗장에는 빨간 글씨로 휘갈겨 쓴 욕들이 성명서를 뒤덮고 있었다. 좀비 새끼들 꺼져라, 역겹다 등등 놀이공원에 가면 대기줄 옆 벽면에 무수히 적힌 낙서들처럼 한 장 가득 욕으로 차 있었다. 광훈은 윗장을 드러내고 조심스레 두 번째 장을 빼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중 몇몇은 옆 사람 귀에 대고 무언가 중얼거렸다. 누군가는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 누군가는 도망치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명서 위에 펜촉을 두고 광훈은 한참 펜을 만지작거렸다. 이 성명서에 서명하는 순간 본인이 이식자라고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명란을 채우는 광훈의 손이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각오는 했지만, 주변의 시선들을 모른 척 하는 것은 힘들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면서 떠드는 소리조차 그에게는 바로 등 뒤에서 어깨너머로 성명서를 내려다보며 욕하는 소리로 들렸다. 지글지글한 글씨체로 서명을 마친 광훈은 성명서를 고이 접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일평생 눈칫밥으로 살아온 그가 가장 잘하는 것. 내가 이 일을 잘하고 있는 건지 혹은 주변에서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보는지가 궁금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몇몇을 시선으로 흘려보내고 다시 수거함으로 시선을 돌릴 때쯤 광훈의 눈에 무언가 걸렸다.


퇴근하는 사람들의 머리 무더기 사이로 보이는 세현과 희지. 둘은 팔짱을 낀 채 광훈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광훈은 아직 자신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하게 성명서를 수거함으로 가져갔다. 수거함의 검은 투입구 위에서 광훈의 손은 멈췄다. 지금 이 성명서를 넣으면 다가오고 있는 세현과 희지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지만, 성명서가 쉽게 손에서 놓아지지 않았다. 더 숨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들키게 될 것 아닌가? 더 숨기면 나중에 더 큰 상처를 주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이 세현과 희지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이식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가족들과 함께 웃으며 볼 수 있을까?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질문과 가설들이 광훈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세현과 희지가 가까워졌다. 고개만 돌아보면 언제든 광훈을 발견할 수 있는 거리다. 광훈은 아직 성명서를 놓지 못했다. 주먹을 꽉 쥔 왼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시장에서 희성을 만났을 때처럼, 머리는 성명서를 놓으라고 말했지만 그럴수록 오른손은 성명서를 더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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