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6학년, 복학하다
포항공대생의 대학로는 효자시장이다. 낮에는 식당과 카페, 밤에는 노래방과 술집이 차례로 문을 연다. 당구장에 가도, PC방에 가도 낯익은 얼굴 뿐이다. 그러나 복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난 곳은 효자시장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유투’로 불렀다. 길을 조금 헤매고 도착한 그곳은, 분명 지나친 적은 있지만 눈길은 준 적이 없는 평범한 술집이었다.
‘유투’, 그러니까 ‘유강 투다리’는 기숙사에서 걸어서 30분 걸리는 조금 먼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학교 사람들보다는 근처 아파트 주민이 많고, 20대보다는 50대가 많은 술집이다. 효자시장에도 같은 체인점이 있기 때문에 분위기는 익숙하다.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이 첫 번째 안주를 시킨다. 우리가 5년 동안 변함없이 좋아하는 치즈닭갈비다.
편안한 차림으로 나와 남편과, 이웃과 맥주 한 잔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유강에서 자취를 시작한 친구들이 많았고, 자연스레 ‘유투’로 모이게 됐다고 한다. “우리가 모르던 보물 같은 곳이지. 효자시장보다 훨씬 좋아.” 친구가 말했다. “사장님도 엄청 친절하시고, 계란찜도 엄청 많이 주셔.” 사뭇 진지하게 말하니 조금 웃겼지만, 아무렴. 사소해보이지만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했다.
분반장이 말했다. 어찌저찌 9명이 6인석에 옹기종기 끼어 앉았다. 친구들 대부분은 대학원생이 되어 있었다. 교수님에 시달려 토요일 밤에도 나오지 못한 친구가 있었다. 다른 친구는 교수님이 너무 좋다고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연구실에 간 지 한 달 만에 자퇴하고 대기업에 간 친구도 있었다. 대화는 연구실에서 연애로, 연애에서 진로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분명히 학교 근처고, 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있지만, 학부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물론 나야 아직 학부생이지만 무언가 변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스무 살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기뻤던 해, 연애로 웃고 울던 날들, 학점이 나왔다고 왁자지껄했던 시간....... 그 때가 오래된 것도 아니고 사람이 바뀐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조금 더 차분해져 있었다. 여전히 앞으로의 날들은 모르지만, 내가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감을 잡은 사람들의 차분함. 아직 술 마시는 건 좋아하지만, 얼마만큼 마셨을 때 자기가 가장 행복한지 아는 사람들의 안정감. 5년 동안 치즈닭갈비를 시키지만,
“우리 먹태 시키자! 진짜 맛있어.” 한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먹태? 완전 아저씨 같아.” 다른 친구가 핀잔을 줬다. 두 명 말고는 아무도 먹태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먹태를 시켰다. 친구 말대로, 맛있었다.
투다리에서 나오면 늘 그랬듯 마지막은 아이스크림이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쏘고,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하나씩 물고, 우리는 각자 흩어졌다. 이번엔 다같이 들어가는 기숙사가 아니라 각자의 집으로. 여전히 이 친구들이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