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태 Nov 06. 2018

한밤중의 목소리

2.39. 킬라니 국립공원-모허 절벽

캐리 순환도로의 한 부분에는 킬라니 국립공원이 있는데 우리로 치면 설악산 국립공원처럼 산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꼭대기에 기막힌 절경의 호수 지대가 있다.


차에서 내려 넋을 잃고 보다보니 어디선가 백파이프 소리가 들린다. 이런 멋진 곳에는 항상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모를 백파이프를 부는 아저씨들이 멋진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백파이프는 스코틀랜드 악기인줄 알았는데 아일랜드에서도 꽤나 자주 보인다.


킬라니 국립공원 


킬라니 국립공원을 지나 한참을 가다 보니 길 옆에 조그마한 호수가 있었는데, 낚시 하고 있는 아저씨 한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드디어 오랫동안 기다리던 낚시를 시작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하고 차를 세워서 낚시꾼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마음 좋게 생긴 아일랜드 아저씨가 낚시를 하고 있는데 송어를 몇 마리 낚았다고 한다. 우리도 낚시를 해 보기로 하고 처박아 두었던 장비를 꺼내왔는데, 여행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장비 조립법과 사용법을 봐뒀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일랜드 낚시꾼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낚시를 시도한 호수


옆에서 지켜보기가 딱했는지 아일랜드 아저씨가 낚시대 조립하는 방법과 사용법을 설명해줬는데, 아이리쉬 사투리가 강해서 우리가 잘 못 알아 듣자 답답한지 아저씨가 직접 다 조립해 주었다. 미리 제대로 준비해올 걸 괜히 아일랜드 낚시꾼의 시간을 뺏어서 미안한 마음이었다. 


우리 같은 초짜들이 옆에서 귀찮게 하면 싫은 기색을 보일 만도 한데 우리의 낚시꾼 아저씨는 별다른 불평 없이 우리 셋의 낚시대를 다 조립해주고 방법도 몸소 시범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지쳤는지 우리에게 행운을 빈다고 얘기하고는 차를 타고 가버렸다. 


킬라니 국립공원에서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Lady’s View


아일랜드 낚시꾼 아저씨로부터 속성 강좌를 듣고 나서 본격적으로 낚시대를 던져 보았지만 한참을 지나도 고기를 잡을 수 없었다. 아저씨도 몇 마리 못 낚은 거 같은데 우리 같은 초짜가 잡기는 쉽지 않으리라. 두어 시간쯤 시도한 후에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다시 길을 떠났다.



저녁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모허 절벽에 도착했다. 다섯 시가 넘었기 때문에 따로 입장료를 낼 필요가 없어서 좋았는데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다가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부는 바람에 옆에 서있던 차 옆구리를 콕 찍고 말았다. 


젊은 여자 하나가 타고 있었는데 날씨 때문에 나와 보기가 귀찮았는지 우리보고 괜찮냐고 물어서 우리는 괜찮다고 하고는 얼른 자리를 떴다. 사실 옆구리가 약간 패였기 때문에 좀 걱정이 되기는 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백파이프 연주자


모허 절벽은 거대한 절벽이 커튼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는데 그 압도적인 장엄한 광경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200미터 높이의 거대한 절벽이 8km나 늘어서서 대서양의 거센 파도와 맞서 싸우고 있는 곳인데 바다에서 수직으로 곧장 솟아 올라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절벽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서 비를 피해서 한참 동안 서 있어야 했다. 


압도적 스케일로 경외감을 주는 모허 절벽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잘 곳을 찾아야 했는데 생각 같아서는 절벽 위에 멋있게 텐트를 치고 자고 싶었지만 비바람과 낮은 기온 때문에 엄두가 안 났고 무엇보다도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잘못하면 자다가 200미터 절벽 아래로 떨어져서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하기로 했다. 해변을 따라서 이동하다가 적당한 곳이 있으면 텐트를 치기로 하고 일단 차를 출발했다. 



영국이나 아일랜드는 얼핏 보면 드넓은 초원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서 아무데서나 텐트를 펴고 잘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왔지만 실상은 그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초원은 주인이 있는 사유지여서 땅 경계선에 펜스를 쳐 놓았기 때문에 들어가기가 꺼려졌고 국립공원이나 산 같은 곳은 펜스가 없었지만, 이곳 모허 절벽 부근은 거의 바위로 이루어진 지형이고 바람을 피할 곳이 없어서 마땅한 곳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몇 군데 괜찮겠다 싶은 곳이 있었지만 좀더 가면 더 괜찮은 곳이 있겠지 싶어서 계속 가다 보니 어느덧 열 시가 넘어 한밤중이 되어 버렸다. 


초조한 마음으로 계속 가다가 권셰프가 길 옆에 폐가 비슷한 장소를 봤다고 해서 차를 돌려서 가보니 짓고 있는 도중의 집이었다. 집은 다 지은 거 같았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지 내부는 비어있는 곳이어서 앞마당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그 짧은 순간에 보다니 역시 권셰프의 눈썰미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겨우 텐트칠만한 장소를 찾았다.


비가 왔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텐트를 치고 식사 준비를 위해 물을 끓이고 있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뭐 하는 거요?”


집주인인듯한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 묻는데 아저씨가 엽총이라도 하나 들고 왔으면 잘못하면 총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불쌍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잘 곳을 찾을 수가 없어서 여기에 텐트를 쳤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날께요.”


다행히 총 같은 건 없는 거 같았고 아저씨가 우리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별로 위험한 놈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텐트를 치는 건 좋은데 옆에 소들 있는 곳에 전기 펜스로 되어있으니 조심하시오.” 


라고 얘기하고는 떠났다. 알고 보니 집 주인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였다. 낯선 불빛이 보이니 소도둑이 아닌가 싶어서 나왔나 보다. 아저씨가 가고 나니 이제 정식으로 허락을 받은 셈이라 맘 편히 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길 옆이라 누군가 와서 해꼬지하지 않을까 좀 걱정되기는 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길 옆이라 좀 시끄러운 게 흠이었다.


비 오고 날씨도 춥고 너무 피곤해서 저녁을 해먹을 엄두가 안 나서 만일에 대비해 가져온 전투식량으로 대충 저녁을 먹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정차장 코고는 소리 때문에 권셰프랑 내가 같은 텐트에서 자기로 했는데 여행 내내 정차장은 코고는 덕분에 혼자 텐트를 썼다. 정차장도 코 고는 게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폐허로 남은 이름모를 성과 사슴들


매거진의 이전글 400번째 King Puck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