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송네피요르드-롬-달스니바
노르웨이에서는 기온의 변화가 대단히 심했다. 바닷가나 피요르드 부근 저지대와 피요르드에서 보이는 절벽 위는 기온이 거의 10도 가까이 차이 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한여름이지만 두꺼운 옷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정차장은 얇은 옷만 입고 항상 춥다고 투덜거렸다.
여행 오기 전에 정차장 와이프가 아는 사람이 노르웨이에서는 6월에도 거의 반팔만 입고 다닐 수 있을 정도 따뜻해서 두꺼운 옷이 필요 없다고 얘기했다고 얇은 옷만 챙겨줘서 그렇게 된거라고 한다. 아마도 정차장 와이프 아는 사람은 높은 곳은 안가고 피요르드 물 근처에만 있었나 보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에 나오는 곳과 비슷한 그림 같은 경치의 냇물들이 나온다. 왠지 낚시를 해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던 차에 완전 낚시 복장을 하고 걸어가는 낚시꾼 아저씨를 발견해서 물어보니, 이 부근에서 농어(Seabath)가 잡힌다고 하면서 잡는 요령을 대충 알려준다.
이번에야말로 우리도 뭐라도 낚을 수 있을 거 같아서 한참 동안 낚시를 해 봤지만, 이번에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뿐 아니라 바닥에 걸린 낚시대를 무리하게 당기다가 내 낚시대만 분질러 먹고 말았다. 정녕 우리에게 낚시는 결코 허락될 수 없는 사치란 말인지 갑자기 급 우울해졌다.
낚시대가 부러지고 나니 모든 의욕이 사라진 것 같아서 근처 호숫가의 캠핑장에서 일찍 캠핑하기로 했다. 여기 캠핑장 주인은 철물점도 겸해서 장사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이 아저씨 역시 어딘가 모르게 괴팍한 성격인 거 같다.
호수에서 낚시를 해도 되냐고 물으니 각종 라이선스를 사야 하는데 꽤 비싼 값이라고 하고 조금 걸어가서 피요르드에서 하면 공짜란다. 캠핑장에 면한 호수에서 물이 흘러나가서 송네 피요르드와 연결되는 곳이므로 사실상 호수나 피요르드나 같은 물이지만 피요르드는 바다로 치고 호수는 민물로 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호기심으로 피요르드 물 맛을 본 적이 있는데 밍밍한 소금물 맛이어서 바닷물도 아니고 민물도 아닌 중간 정도의 느낌이었다.
호숫가에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구워먹는데 연기가 많이 난다. 아저씨가 차 타고 오길래 연기 때문인가 싶었는데 와서 텐트가 하나라고 하지 않았냐고 나에게 묻는다.
내가 언제 그런 얘기했냐고 항의하니까 농담이라며 웃으며, 퇴근하기 전에 한번 둘러보고 가는 거라고 얘기하고 간다. 노르웨이 아저씨들의 유머 코드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호숫가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습기가 차 있다. 습기 때문에 잠도 잘 못 자고 피로한 느낌인데 권셰프는 아침부터 자다가 벌에 쏘였다고 투덜대고 있다. 뭔가 많이 처지는 느낌의 아침이다.
근처 낚시 가게에서 어제 부러진 낚시대를 대체할 새로운 낚시대를 샀다. 워낙 물가가 비싼 곳이라 낚시대도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데 잘 안 팔리는 제품인지 반값에 파는 게 있어서 얼른 샀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비싼 가격이지만 뭔가 특이하기도 하고 품질도 좋아서 여행 끝나고 한국에서도 잘 사용한 낚시대였다.
63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258번 내셔널 루트로 갔다. 길을 따라 빙하 녹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빙하가 녹은 물은 대부분 아름다운 옥색이다.
주변의 관목들을 자세히 보면 블루베리나 산딸기 같은 베리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몇 개 따먹어 봤는데 새콤하고 달콤한 것이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르웨이나 핀란드 등 북유럽 요리에는 베리를 함께 곁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지천에 널린 야생 베리류를 따서 요리에 많이 이용했던 거 같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는데 마침 빙하 지형을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어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노르웨이의 여러 뷰포인트에는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와 식탁을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은데 주로 노출 콘크리트 재질로 북유럽 스타일로 깔끔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주변의 경치와 잘 어울린다.
비록 점심 메뉴라고는 생선 알로 만든 마요네즈를 빵에 발라먹는 것 밖에 없지만 그 어떤 노천카페보다 멋진 풍경이 있어서 풍요로운 점심 시간이었다.
오래된 바이킹의 목조 교회인 스타브교회로 유명한 롬에 도착했다. 스타브(stave)는 통널이라는 뜻으로 못을 쓰지 않고 스칸디나비아 전통 방식으로 통널을 짜맞춰서 만들어졌다는 이 교회는 바이킹 시대인 12세기에 만들어져서 오늘날까지 버티고 서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13세기 정도에 지어졌으니 그보다 백 년 정도 더 오래된 건물인 셈이다. 소박하고 단순한 외관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성당이라고도 불리었다는 교회에서는 지금도 경건한 예배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롬 교회는 불에 탄 자국인지 불에 타지 않게 뭔가 칠한 것인지 군데군데 시커멓게 된 부분이 많았고 특이하게 교회 주변이 전부 묘지로 둘러 쌓여 있었다.
교회나 성당의 일부가 묘지로 사용되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이렇게 묘지로 전부 둘러 쌓인 교회는 처음 본 것 같다.
산 위에 펼쳐진 내셔널루트를 따라 갔다. 빙하와 빙하 녹은 물로 이루어진 호수, 그리고 이끼로 뒤덮인 황무지가 거칠게 펼쳐진 곳이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소떼가 길을 막고 있다. 양이나 염소는 금방 길을 비켜줬는데 이놈들은 덩치를 믿는 건지 한참을 꾸물대고서야 비켜준다. 그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덩치 큰 숫놈은 괜히 위협적으로 길 옆 연석에다가 머리를 박는다. 자해 공갈단인가?
높은 산 위에 만들어져 있어서 최고의 피요르드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달스니바 전망대로 갔다.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길을 힘들게 올라가서 도달한 전망대는 짙은 구름에 싸여 있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실망스러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좀 기다려봤는데, 다행스럽게도 잠시 후에 구름이 걷히면서 장관이 드러났다.
딜스바나 전망대는 사방으로 절벽과 피요르드를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경관을 자랑하는데 특히 멀리 보이는 게이랑거 피요르드의 모습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기념품 가게를 들어가는 문 옆을 트롤이 지키고 있는데, 아무리 노르웨이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어딜 가나 있는 트롤 조각은 지독히도 못생겼다. 북유럽의 디자인 감각은 유독 트롤상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법으로 정하기라도 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