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게이랑거 피요르드
게이랑거 피요르드 가까이로 다가가자 기온도 확연하게 올라가고 사방이 둘러싸인 포근한 마을이 나타났다. 플람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조그마한 마을인데 거대한 크루즈선이 몇 척이나 정박해 있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게이랑거 피요르드를 떠나 아이즈달(Eidsdal)로 페리를 타러 갔으나 시간이 늦어서 캠핑을 하기로 하고 캠핑장을 찾았으나 프라이빗 캠핑장이라고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아마도 정해진 사람들만 쓸 수 있는 캠핑장인 것 같아서 일단 나온 후 부근에 잘만한 곳을 찾아 피요르드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캠핑에 적당한 장소가 나온다. 도로에서 살짝 들어간 장소여서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바람도 막을 수 있는 곳인데 이미 누군가 캠핑을 했던 듯 불을 피운 흔적도 있어서 여기다 텐트를 치기로 했다.
우리 사이트에서 길 건너편 피요르드 쪽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조그마한 공터가 있었는데 우리가 텐트를 다 칠 때쯤 캠핑카가 한대 와서 선다. 젊은 부부가 갓난 아기와 시커먼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여행 중이었는데 이 곳이 맘에 들었는지 하루 자고 가려는 모양이다. 개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낯선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짖어대는 데 주인이 한마디 하면 바로 조용해졌다.
텐트 치기를 끝낸 후 낚시를 하기로 하고 장소를 찾아 아래 피요르드로 내려가 보니 아마도 연어 같아 보이는 커다란 물고기 뼈가 있다. 잘 하면 연어도 낚을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어서 다들 열심히 낚시를 던져 보았지만 별로 소득이 없다. 오늘도 허탕치나 싶었는데 갑자기 정차장이
“오, 낚았다!”
하며 고기를 낚았다고 소리를 지른다. 깜짝 놀라서 뛰어가다가 미끄러져서 크게 다칠 뻔 했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뛰어 가보니 진짜로 커다란 고기가 낚여 있었다. 한 30센티는 되어 보였는데 우리나라에선 본 적 없는 고기라 뭔 고기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낚시하는 것을 구경하던 캠핑카 주인은
“흠, 아마도 Pollack인 거 같은데요?”
라고 말한다. 그게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Pollack이 바로 명태였다. 우리나라 명태랑은 조금 다른 모양인 거 같긴 했지만 나중에 맛을 보니 확실히 같은 종류는 맞는 것 같았다. 한때 우리나라 바다에 몇만 톤씩 잡혔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춰서 정부에서 복원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귀한 명태를 우리는 노르웨이에서 마구 잡아들인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정차장에 이어서 내 낚시대에도 고기들이 물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 지난 겨울에 송어낚시용으로 산 피라미 닮은 싸구려 실리콘 미끼에 노르웨이 고기들이 환장한다는 것이다. 어두워질 때까지 커다란 놈으로 네 마리 정도 낚았는데 정차장이 고기를 많이 잡을 줄 알고 두 마리를 캠핑카 가족에게 준 다음에는 더 이상 잡히지 않아서 모두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드디어 스코틀랜드에서부터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우리가 직접 잡은 고기로 피시앤칩스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권셰프는 낚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구경만 했지만 잡은 고기로 맛있는 피시앤칩스를 만들어주었다. 직접 잡아서 그런지 무알콜 맥주에 곁들여 먹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피요르드산 물고기로 만든 피시앤칩스는 꿀맛이었다. 여행 오기전부터 우리가 노래 불렀던 꿈이 이루어진 행복한 밤이었다.
정차장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음날 눈 뜨자마자 일어나서 다시 낚시를 시작했는데, 어제와는 달리 고기 한 마리를 낚긴 했지만 영 입질이 없었다. 우리 앞으로 노르웨이 아저씨들이 낚시보트를 타고 지나가며 손을 흔드는데, 왠 아시아 사람들이 피요르드 한구석에서 낚시하고 있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우리도 낚시에 방해되니 빨리 다른 쪽으로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줬다.
영 조과가 시원찮아서 철수하기로 하고 낚시대를 분해해서 접고 있는데 갑자기 정차장이 난리가 났다.
“우와, 저것 좀 봐요”
앞을 보니까 갈매기들이 물위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고 물은 끓는 것처럼 부글거리고 있다. 물고기 떼가 나타난 것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차장이 고기를 마구 낚아 올리기 시작한다. 나도 다시 급하게 낚시대를 조립했지만 마음만 급했지 엇그제 새로 산 낚시대가 조립하기가 까다로워서 허둥대며 겨우 조립하고 보니 릴을 잘못 결합해서 분해해서 다시 조립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정차장은 연신 고기를 낚아 올리고 있었다.
겨우 낚시대를 결합해서 나도 고기를 낚을 수가 있었는데 어제 잡았던 명태 비슷한 놈들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등 푸른 생선들, 그리고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빨간색 고기까지 순식간에 20여 마리의 커다란 물고기들을 낚았다.
정차장은 마지막에 커다란 고등어를 낚아 올리다 마지막 순간에 줄이 끊어져서 놓치고는 엄청나게 아쉬워한다. 한참 뒤에 물 속에서 물개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이번에도 물개가 고기를 몰아다 준 듯하다. 정녕 물개는 낚시꾼들의 친구인 것인가? 물개뿐만 아니라 돌고래들도 뛰어 놀고 있었다. 아름다운 피요르드의 풍경이다.
물고기 손질을 위해 선착장 쪽으로 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물을 쓸 수 있는 곳은 유료 화장실 한 군데 밖에 없었기에 동전 하나로 셋이 들어가서 잡아온 물고기를 깨끗하게 손질했다. 다시 돌아와서 점심까지 피시앤칩스를 해먹고 나니 남아있는 물고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애써서 잡은 고기를 버릴 수는 없어서 어떻게든 다 먹어 치우기로 했지만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궁리끝에 차 뒷유리 아래에 고기를 늘어놓고 말리면서 이동하기로 했다.
차 뒷유리에 생선들을 늘어놓고 말리는 광경이 웃겼는지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이 보고 웃었다. 페리를 타려고 줄 서 있으니 뒤차의 아줌마가 킥킥대고 페리 안에 차를 세워놨더니 위층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웃고 사진 찍고 난리 났다. 아우디와 말린 생선은 별로 안 어울리는 조합인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