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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Dec 06. 2018

무정법사님의 낚시 비법

2.56. 보스-롱-베르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어제 묵었던 트빈데 폭포 캠핑장으로 가 보기로 했다. 거기서 보스 지역의 모든 호수나 강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하루짜리 낚시 라이선스를 파는 것을 보았었기 때문인데 보통 한 군데의 호수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파는 것과 달리 보스 지역의 여러 호수와 강들 아무 곳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였기 때문에 꽤 괜찮다고 생각이 되었다. 


캠핑장 주인에게 라이선스를 산다고 얘기하자 뭔가 뒤적거리며 꺼내더니 종이에다 몇 자 적어주고 이게 라이선스라고 한다. 뭔가 ID 카드 같은 것을 기대했는데 예상 밖의 허접한 종이 쪼가리라서 과연 이걸로 괜찮을까 싶었다. 


낚시를 하다 단속에 걸려서 이걸 내보이면 단속하는 사람이 코웃음을 치며 ‘장난하냐?’ 할 것 같은 완성도였다. 어쨋건 라이선스를 샀으니 홀가분하게 낚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보스에서 처음으로 낚시를 시도한 호수


그런데 보스의 수많은 호수와 강 중에 낚시하기 괜찮은 장소를 찾기 힘들었다. 분명히 낚시를 했을 거 같은 호수들이 있었지만 아무리 던져도 아무 반응이 없고 보스에 면한 큰 호수에도 가봤지만 바람이 너무 불어서 낚시를 할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거금을 들여 라이선스까지 사서 제대로 낚시를 하려고 했지만 내 맘 같지 않다는 생각만 들어서 점심 무렵에 포기하기 캠핑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연히 만난 무정법사님과 함게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스포츠용품점을 발견하고 들르기로 했는데 정차장이 여행 출발할 때 아들 재민이가 아빠에게 사달라고 신신당부한 축구공을 사기 위해서다. 물론 아무 공이나 되는 것은 아니고 최소 이쪽 유명한 프로팀 공 정도는 되어야 했는데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지나온 나라들이 축구에서는 별로 시원찮은 나라 들이어서 공을 살 기회가 없어서 정차장은 아직 공을 못 사고 있었다. 그나마 기회가 있었던 때가 기성용이 한때 뛰었던 셀틱의 연고지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부근을 지날 때였는데 그마저 시간이 안 맞아서 포기했었다. 


스포츠용품점을 이리 저리 둘러봤지만 살만한 공이 없어서 커피만 한잔 마시고 다시 나왔는데 권셰프가 주차장에서 왠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다. 가까이 가 보니 한국인 아주머니와 노르웨이인 남편 그리고 남자애 하나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다. 아주머니가 한국인을 오랜만에 만나신 듯 반갑게 얘기를 나누던 중에 내가 


“그런데 혹시 부근에 낚시 할만한 곳이 어딘지 아세요?”라고 물으니 아주머니가 노르웨이인 남편에게 한국말로,


“여보, 여기 낚시 할만한 곳이 어디지?”라고 묻는 것이다. 


그랬더니 남편이 갑자기 유창한 한국말로 우리에게 낚시 할만한 장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 이 분이 예전에 8년간 경주의 골굴사에서 수행한 적이 있다고 하고 아내 분도 그때 만난 거라고 한다. 


무정법사님이 알려준 포인트. 경치도 뛰어난 곳이다.


골굴사라면 몇 년 전에 와이프 조카들이 프랑스에서 와서 한국문화 체험 한답시고 템플스테이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끝까지 다 못 버티고 중간에 도망친 바로 그 절이었다. 


와이프가 예전 친구들과의 여행 때 너무 좋았던 절이라고 해서 거기로 정했는데 알고 보니 그 절이 한국 선무도의 본산이어서, 다른 절들에서 조용히 차 마시고 참선하며 템플스테이를 할 때 여기서는 무지막지한 동작의 선무도를 생판 첨 해보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마치 해병대 캠프 같은 느낌의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제가 몇 년 전에 골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한 적이 있어요”


“아, 그래요? 제 법명이 무정인데 지금도 무정법사라고 하면 그곳 스님들이 다 알 거예요.”


무정법사님이 반가워 한다. 물론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도망간 얘기는 생략했다. 


드디어 첫 송어를 낚았다


무정법사님은 예전에 티비에도 가끔 나오셨다는 데 나는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이곳 보스에 선센터를 얼마 전에 오픈했다고 했는데, 노르웨이 사람들이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아무쪼록 잘 됐으면 좋겠다. 한참 얘기 중에 무정법사님이 우리에게 


“근데 어떤 미끼를 쓰세요? 노르웨이에서는 이곳 미끼를 써야 해요. 지역마다 물고기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현지에서 쓰는 미끼가 가장 잘 무는 미끼예요.”


라며 직접 우리를 데리고 가게로 가서 미끼를 골라준다. 우리의 낚시는 아일랜드의 낚시꾼 아저씨로부터 시작되어서 노르웨이의 무정법사님으로 완성된 것이다. 무정법사님이 구글맵을 보면서


“여기가 제가 어릴 때 아버지와 낚시했던 곳인데 꽤 잘 잡힐 거예요.” 


라며 위치를 찍어 주어서 그곳에 가서 낚시를 다시 시도해보기로 했다. 무정법사님 가족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불자의 신분인 무정법사님에게 낚시법을 전수받으니 뭔가 묘한 느낌이었지만, 불교에서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니까 어쨋거나 우리의 인연도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잡은 송어들. 내가 아는 한국 송어와는 약간 다른 모습이지만 맛있게 먹었다.


무정법사님이 알려준 곳으로 와서 낚시를 하니 역시나 송어가 낚였다. 지금까지는 피요르드에서 낚은 고기들이라 바닷고기들이었는데 최초로 민물고기를 낚은 셈이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송어 세 마리를 낚는 것으로 마무리 해야 했다. 송어축제에서 낚았던 송어보다는 크기는 작았지만 진정한 자연에서 잡아서 요리해 먹은 송어의 맛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젊었을 때 한 미모 하셨을거 같은 캠핑장 주인 할머니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권셰프에게 아침 거리를 잡아온다고 하고 부근 호수로 가서 낚시를 해봤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어제 시간이 없어서 잠깐 낚시를 했던 곳으로 한참을 달려가서 낚시를 해 보았지만 오늘은 조그마한 놈 한 마리 밖에는 도통 소식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마무리를 하고 돌아와서 짐을 싸서 베르겐을 향해 출발했다. 


내일이 노르웨이를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오늘 마지막으로 실컷 낚시를 하기로 하고 베르겐 옆의 섬 지역으로 이동했다. 섬이라고는 해도 해저 터널과 다리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단 차를 타고 제일 위 쪽으로 올라간 후 내려오면서 낚시를 하기로 하고 경치가 그럴싸해 보이는 아무 곳이나 가서 낚시대를 던졌다. 



첫 번째 장소에서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고 두 번째 장소는 나름 경치도 좋고 왠지 고기가 있을 거 같아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낚시를 시도했는데, 갑자기 내가 던진 낚시에 커다란 고기가 물고 나왔다. 


지난번 피요르드에서 잡았던 명태 비슷하게 생긴 놈인 거 같은데 이번에는 사이즈가 훨씬 커서 대략 50센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일단 고기가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다들 열심히 낚시에 열중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던진 미끼만 물고 나오는 것이다. 


다섯 마리 정도 커다란 놈들을 혼자 낚아 올리니 나머지 둘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비록 낚시 초보이지만 소위 손맛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약간 동네 불량 청소년들처럼 보이는 노르웨이 청소년들이 몇 명이 오길래 괜한 시비에 휘말리기는 싫어서 자리를 뜨기로 했다. 걔들도 낚시를 하려는 거 같은데 우리가 들고 가는 고기를 보더니 눈이 동그래 지는 것을 보니 별로 프로는 아닌 모양이다. 


아래로 좀 내려오다 보니 큰 다리 밑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 것이 보여서 차를 세웠다. 아래 풀숲에서 아저씨들이 올라 오는데 양동이에 가득 손질한 고등어가 담겨있다. 아마도 여기가 유명한 포인트인 거 같았다. 


서둘러 내려가보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 앞 바다가 부글부글 끓는 것이 고등어 떼가 나타난 거 같다. 급하게 낚시대를 조립했는데 또 잘못 조립해서 다시 분해했다가 다시 하느라 한참을 허비한 끝에 낚시대를 던져 보았지만 고기가 물지 않는다. 아마도 고등어가 무는 미끼가 아니라서 그런 거 같다. 


제대로 채비만 준비해 갔으면 우리도 양동이로 잡는 건데… 정차장이 커다란 명태 비슷한 고기를 한 마리 잡는 것으로 낚시를 마무리해야 했다. 다음 번에는 제대로 고등어 미끼를 준비해서 오겠다고 다짐했다. 과연 그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고등어떼를 만난 Rong


베르겐에 도착해서 첫날에 묵었던 캠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정차장과 권셰프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호수에서 낚시를 해 보았지만 더 이상 고기를 잡을 수는 없었다. 사실 이미 잡아온 고기도 엄청 많아서 더 잡아봐야 먹을 수도 없기는 했다. 


잡은 고기들을 튀겨 먹으며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다. 이런 밤에는 술을 한잔 해야 했지만 하필 일요일이라 가게에서 술을 안 팔아서 어쩔 수 없이 차를 마시며 얘기를 하는 것으로 마지막 밤을 보내야 했다. 


여행 막바지라 다들 지쳐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언젠가 다시 한번 기회가 되면 훨씬 더 재미있게 여행을 잘 할거 같다는 얘기를 나누었지만 과연 이런 기회를 다시 가지게 될 지 생각해보면 조금은 우울한 마지막 밤이었다.


드디어 내일은 집으로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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