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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현 Dec 08. 2023

대리운전 중 껍데기 속에 있는 나를 봅니다.

그래도 고가의 외제차는 힘도 좋고 안정감도 좋고... 


요 며칠 유난히 고가의 외제차 대리운전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외제차만 운전했을 정도니까요. 도요타부터 아우디, 벤츠에 BMW까지 웬만한 외제차는 다 몰아본 것 같습니다. 


맨 처음 외제차를 몰 때는 평소 국내차를 몰 때와 다른 환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차가 좋고 나쁘고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차를 운전하는 가에 따라 나를 대하는 다른 운전자들의 태도도 변합니다 가령 내가 가는 차선에서 다른 차선으로 변경할라치면 뒤의 차들이 알아서 양보합니다. 갑자기 차선변경을 하며 새치기를 하려던 차도 자기 뒤에 있는 외제차 엠블럼을 보고는 흠칫 놀라며 자기 차선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외제차를 운전할 때면 나도 모르게 의기양양하게 운전대를 잡습니다. 앞뒤좌우의 차들이 조심해서 운전하는 게 느껴지니 나도 외제차급이 된 것처럼 으쓱해집니다. 차선을 변경하려고 끼어드는 차에게는 레이저 빔(?) 한방을 날려줘서 옆차선으로 비키게 만듭니다.


외제차라는 껍데기를 두르고 나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만일 내가 외제차보다 더 화려한 껍데기, 더 부유한 껍데기, 더 강력한 껍데기를 두르면 어떻게 될까요? 자유를 넘어 방종을 탐닉하게 되고 공존을 거부하고 군림을 추종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그러다 보면 평범한 다수 속에 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보이려고 몸부림치게 되진 않을까요?


껍데기 속 나, 나라는 존재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껍데기는 허상에 불과함을 알게 됩니다. 그 속에 숨은 본질로서의 나를 볼 때 비로소 허상을 벗어던지고 착각을 바로 잡게 되는 것입니다. 외제차라는 껍데기를 두른 나의 본질은 대리기사이며 나를 고용한 고객의 본질은 대리기사라는 껍데기에 의존하는 무기력한 취객입니다. 누구도 우월할 수 없고 누구도 평범할 수 없는 것이지요.


껍데기 밖의 나, 외제차에서 내린 뒤 추운 바람을 맞아가며 새로운 콜을 기다리는 대리기사로 돌아오니 정신이 바짝 듭니다. 콜을 기다리며 걷는 순간은 마치 손가락이 얼어버리고 귓불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이 고통스럽습니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지요. 그러다 발길을 멈추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두른 대리기사라는 껍데기 안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껍데기에 껍데기를 벗겨나가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나'일 것인데... 차분히 생각해 볼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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