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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May 25. 2022

나는 왜 미라클 모닝에 집착할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에 당한 가스 라이팅일까

나는 여러 가지 강박을 안고 있는 예민 형 인간이다. 그중 하나는 '일찍 일어나 시간을 실용적으로 쓰는 생산성 있는 인간이 되자'라는 마음속 구호가 있다. 강박이네 구호네 거창한 단어를 붙인덴 이유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여적 '일찍 일어나 시간을 실용적'으로 못쓰고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각종 시험을 준비했던 수험생 시절에도, 업무가 밀려 터지는 회사에 다녔을 때도 느꼈다. 난 하루 중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 이전 시간이 제일 컨디션이 좋고 몰입도가 높다. '도대체 이 많은 업무를 언제 다 한담..' 이라며 가슴을 꽉 조르는 듯한 강도 높은 업무에도 새벽에 일어나 2~3시간 몰입하면 그날은 늘 퇴근이 빨랐다.


이 확실하고도 명료한 사실을 체감하고 난 뒤, 나는 내 쓸모에 중독이라도 된냥 미라클 모닝을 좇았다.



작은 기척에도 눈이 번쩍 뜰만큼 깊은 수면을 못한 지 몇 년이나 되었다. 뭐 오래 자는 것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 무던한 편이다. 근데 왜 아침에 몸을 일으켜 세우는 일은 매일 정신이 힘들까?


그래도 어찌 일어나 책상에 앉으면 행동은 일사천리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확언 노트도 정리하며 하루를 연 후 빠르게 업무를 쳐나간다. 대게 점심시간이 오기 전 중요한 일과 급한일은 마무리했고, 기저에서 올라오는 충만감을 느끼며 맛있는 점심을 여유로이 먹는다.


"하.. 그렇지. 풍요란 이런 것이지, 많은 돈도 많은 잠도 필요 없고 오롯이 충만감을 느끼는 순간을 늘려 살다 보면 매일이 행복한 것이야"와 같은 낭만적인 감상에 젖는다.




문제는 이토록 좋아하는 기분을 자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분명 새벽 5시 즈음 한번 깼는데 왜 눈뜨면 9시냐고. 눈 뜰 때야 9시지 정신 차리고 일어나면 거진 10시 가까이 된다. 사실 침대에서 더 시간을 게기며 누워있을 수 있지만 새벽 내 배출한 우리 집 강아지 오물 냄새에 못 이겨 몸을 일으킨다. 곧장 베란다로 가 미간을 찌푸리며 강아지의 똥오줌을 치우는 것, 내 하루 일과 첫 번째 업무다.


미라클 모닝에 집착하고 자책하는 나를 지켜보던 가까운 지인이 물은 적이 있다. '그럼 일주일에 몇 번이나 미라클 모닝을 성공하느냐고.' 

마치 미라클 모닝이 나에게 곧 잡힐 듯 말듯한 경지까지는 올라온, 성공의 끝자락에 있는 것 마냥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해결책을 강구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고 한다.

'음..? 한 달에 한두 번이야'라고 머쓱하게 대답했고 2초간 정적이 흘렀고 둘 다 웃음이 터졌다.


그래, 이쯤 되면 미라클 모닝이고 뭐고 포기하는 게 맞다. '일찍 일어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잖아'라며 현실 바이오리듬에 맞춰 시작하던가, 아니면 ‘내 미라클은 오전 10시’라고 재정의를 하던가.

이 방안이 적어도 몇 배는 효율적이라 생각하는데 난 아직도 여적 그리고 오늘도 오전 7시에 일어나지 못했던 나에게 찝찝한 감정을 선사하고 있다. 더욱 적확하게 말하자면 '주입'하고 있다.  





사실 미라클 모닝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난 공허함에 몸무림 치는 것이다.

지난 인생에서 미라클 모닝을 1년가량 넘도록 지속 성공했던 경험이 두어 번 있다. 그 시절엔 단순 일찍 일어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었다. 스스로 간절하기도 했고 타의적인 환경의 강압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자연스레 미라클 모닝이란 것을 지속했던 것이다.


오전 7시에 일어나지 못한 나에게 찝찝함과 함께 '잊지 말라는 경고'의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지금 느끼는 찝찝함엔 "단순 일찍 일어나지 못한 실패가 아니라 네 인생, 하루, 삶 따위가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라고, 맞다면 이렇게 매일 늦게 일어날 수가 없다고."

짧고 굵게 10분 이내로 나를 야단친다. 그리고 넉살 좋게 내일 오전 7시 기상을 기대한다.


어쩌면 나란 예민 형 인간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방안으로 '셀프 혼남'을 택한 거라 해석해도 될까. 이 모양 이어도 어쩌겠나. 저버리지 않는 나에 대한 기대, 내일을 선사하는 자비 그리고 정말 언젠간 성공할지도 몰라라는 희망.


덕분에 오늘 난 오전 10시에 시작하더라도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책도 읽고 일도 잘했다. 나를 저버리지 않는 것은 끊임없는 정신승리 그리고 합리화를 빼놓을 수 없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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