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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생 Aug 22. 2020

요요가 온 내 인생

요요가 와서 요요한 인생

제목 그대로다. 내 몸뚱이는 아주 제대로 요요를 맞았다. 요요가 뭐가 좋다고 이리 자주 몸에 들어앉게 하는지. 참 정직한 몸이다.


갑자기 왜 요요 이야기를 하고 싶었냐 하면 얼마 전에 '요요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돼서다. 장미의 빛깔이 요요하다는데 내가 아는 '요요'로는 해석이 안되었다. 미천한 어휘 수준이 드러난 것 같아 살짝 부끄럽지만 아무튼간에 나는 국어사전에 '요요하다'를 검색했다. 11개의 뜻풀이가 나오는데 절반은 밝고, 절반은 어둡다. 한 단어가 쓰임에 따라 이리 상반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갑자기 한글이 마구 좋아지고 이 '요요하다'를 어디에 써먹을까 하며 설레었다. 요요하다, 요요하다 속으로 계속 되풀이하는데 왜 자꾸 그 많은 11가지 뜻을 제치고 요요가 온 내 몸뚱이만 생각나는지. 그래서 요요가 온 내 인생에 대해 써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고등학교 때 아침, 간식, 점심, 간식, 저녁, 간식, 야식 한시도 쉬지 않고 입에 음식물을 집어넣고 통 움직이지를 않으니 10kg이 아주 쉽게 불었다. 나는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라 공부하려고 먹는 것이다! 어차피 대학 가면 다 빠질 거다!라고 외치며 아이스크림 봉지를 뜯었다. 수능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몸뚱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불만보다 약간의 즐거움이 있었다. 나도 드디어 살을 뺄 수 있겠구나! 하는 작은 희열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나의 첫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엄마에게 이제 수능도 끝났으니 온몸에 붙어 있는 지방들과 작별해야겠다고 더 이상 나에게 음식물을 주지 말라고 선언했다. 엄마는 이 말을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살 빼는 기가 막힌 방법을 안다며 나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자고 했다. 나는 뭣도 모르고 엄마를 따라나섰고 어느 아파트 가정집에 도착했다. 그 집에는 황토찜질방처럼 생긴 기계가 있었고 같은 이름을 가진 화장품들이 여러 종류 있었으며 유산균이나 버섯물과 같은 것들이 사방에 있었다. 일단 나는 수건을 들고 황토찜질방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서 치지직 거리는 라디오를 들으며 30분가량 땀을 뻘뻘 흘렸다.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낸 나에게 몸에 독소가 쌓이면 살이 안 빠진다며 관장을 하자고 했다. 오 마이 갓. 나는 혼자서도 관장을 해본 적이 없는데, 하물며 모르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바지를 벗고 내장을 맡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엄마를 슬쩍 불러 이건 좀 아닌 거 같다고 했지만 엄마는 일단 해보라며 나를 설득했다. 나도 사실 살이 빠진다는 말에 혹했던 상태라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아줌마에게 내장을 맡겼고 이상한 물을 냅다 마시고 화장실에서 방방 뛰었다. 아줌마는 내 몸에 독소가 아주 잘 빠졌으니 이제부터 5일 동안 야채주스만 마시고 그 후에 다시 장청소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서비스 마사지라며 나를 눕히고 종아리나 팔뚝 같은 부위를 마구 밟았다. 그것도 독소를 빼는 것이라 했다. 아무튼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엄마와 양배추와 토마토, 양파 같은 채소들을 샀고 집에 돌아와 그것들을 한 솥에 모두 넣어 팔팔 끓였다. 색이 오묘한 것이 꼭 썩은 채소즙 같았는데 맛이 아주 고역이었다. 그래도 독소를 빼야 한다고 하니 나는 그것을 아침에 한잔, 점심에 한잔, 저녁에 한잔 먹는 것으로 하루 식사를 끝냈다. 한 이틀 정도는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삼일째가 되니 배가 고파 돌아버릴 것 같았다. 점심에만 삶은 달걀을 추가로 먹었는데 더 배고팠다. 배가 고프니 아줌마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쳤다. 4일째가 되던 날, 나는 엄마에게 더 이상 독소 빼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고 치킨을 시켰다. 단식원에 들어가 30일 동안 물과 소금만 먹는 사람도 있다는데 일주일 해독주스 먹는 게 별거냐고 생각했었다. 에라이, 나는 단식원에 가면 하루 만에 가방 싸서 뛰쳐나올 사람 중 하나였다. 아무튼 그 후로 그 아줌마 집에는 가지 않았다. 해독주스로 빠진 3kg은 금세 다시 돌아왔고 나는 다시 천천히 빼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학에 가서 확실히 먹는 양을 줄이고 많이 움직이니 살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 하도 많이 먹었어서 아침, 점심, 저녁만 먹어도 살이 빠졌다. 밤에 자주 오래 산책을 하며 운동을 했고 술은 잘 마시지 않아서 야식 먹을 일도 별로 없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될 때까지 6kg 정도가 빠졌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살이 빠지니 기분이 좋아 더 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때부터는 의도적으로 탄수화물을 줄이기 시작했고 매일 밤마다 1시간씩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방학 동안 또 3kg 정도를 뺐고 1학년이 끝날 때까지 그 무게를 유지했다. 어느 정도 빠지고 나는 더는 살이 빠지지 않아 새로운 방법을 찾기로 했다. 항상 걷기나 뛰기로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좀 더 강도 높은 운동을 하면 살이 더 잘 빠질 것 같았다. 그래서 헬스장 GX프로그램을 3개월 끊고 스피닝(자전거 운동)을 타야겠다고 다짐했다. 스피닝 룸에 처음 들어갔는데 귀가 터질 것 같은 노래와 화려한 조명에 기가 눌렸고 페발 밟기도 버거워하는 내 앞에서 팔을 이리저리 흔드는 아주머니들을 보며 2차로 기가 눌렸다. 처음 탄 다음날은 무릎이 나갈 것 같았는데 또 막상 자전거에 올라타니 이상하게 다리가 안 아팠다. 페달도 못 굴리던 나는 5개월 만에 '에이스'라고 불릴 만큼 스피닝을 잘 타게 되었다.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헬스장을 그만두었고 코로나가 발발하여 다른 헬스장에 가기도 껄끄러워 운동을 그만두었다. 집에 계속 있다 보니 시시때때로 음식에 손이 가고 움직임은 몇 배로 줄었으니 제대로 요요 직격탄을 맞았다.


스피닝을 탈 때는 운동한 게 아까워서 조금이라도 덜 먹으려 했다. 특히 쌀밥은 3숟가락씩만 먹었고 고기는 단백질이라고 또 왕창 먹었다. 점심도 항상 고구마나 계란 같은 것만 먹으려 했고 밥 약속이 싫어 바쁜 척한 적이 많았다. 근데 또 괜히 열심히 덜 먹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을 남들에게 별로 들키고 싶지 않아 '태어날 때부터 마른 애'처럼 굴었다. 스스로도 그런 내가 만족스러웠고, 나는 정말 우주 최강 관리녀라고 속으로 얼마나 우쭐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민망할 정도이다. 아무튼 나는 그 우주 최강 관리법으로 1년간 저체중으로 살며 생리가 끊겼고 손발톱의 색이 까매졌으며 눈 밑에 항상 검은 줄을 달고 사는 축축 처지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아 근데 스피닝은 정말 재밌었다. 나는 원래 시끄러운 곳에 가면 숨이 막히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스피닝을 탈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페달을 굴렸다. 그냥 잘 먹고 잘 운동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뭐가 그리 아깝다고 그 유난을 떨었는지.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고향에 내려와 긴장이 싹 풀리고 먹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부수다 보니까 어느샌가 몸이 무거워졌다. 약간의 위기감을 느껴 옷을 입으려면 살을 빼야 한다고 스스로를 어르고 달랬지만 터진 입은 멈출 줄 모르고 어차피 만날 사람도 없는데 옷 입을 일이 뭐 있냐며 폭주했다. 처음에는 스스로 폭식증을 의심할 정도로 많이 먹었는데 아마 몸이 정상체중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발버둥 쳤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살이 붙고 나니 식욕이 잠잠해졌고 인스턴트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더 먹거나 덜 먹어야 한다는 생각도 안 들고 정말 먹고 싶은 만큼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몸보다는 마음을 채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타향살이로 힘들었다는 응석을 그런 식으로 부린 게 아니었나 싶다.


전에는 1kg만 쪄도 세상이 무너질 것 같고 너무 뚱뚱해졌다며 짜증을 내며 음식을 덜 먹었고 또 배고파서 짜증이 나면 1kg이나 쪄버린 내가 싫었다. 솔직히 나는 내가 몸에 이렇게까지 집착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좀 더 빼보겠다는 욕심이 커져 가뜩이나 애매한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하나의 강박으로 자리 잡았다. 더군다나 외로움도 크고 인생에 별 의미를 못 찾던 때라 더더욱 거울 속 나에게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고향에 내려와서 다시 가족들과 함께 살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채우니 나에 대한 이상한 집착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지금은 1kg이 찌든 빠지든 별 신경 안 쓰고 먹고 싶은 음식은 그 날 바로 먹고 움직이고 싶을 때만 움직인다. 먼 과거보다는 덜 나가고 가까운 과거보다는 더 나가는 지금의 상태가 나는 가장 적당한 것 같다. 빼는 법만 알았던 과거보다 채울 줄도 아는 지금이 훨씬 좋은 것은 단순히 몸무게뿐만은 아닐 것이다.


요요 하다에서 시작한 요요 이야기가 꽤나 길어졌다. 이야기를 시작하게 해 준 '요요하다'에게 매우 고마우니 그 11가지의 뜻을 모두 적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1. 눈치가 빠르고 똑똑하다.

2. 나이가 젊고 아름답다.

3. 아주 어여쁘고 아리땁다.

4. 맵시가 있고 날씬하다.

5. 자꾸 흔들리고, 또는 자꾸 흔들다.

6. 고요하고 쓸쓸하다.

7. 매우 멀고 아득하다.

8. 몹시 위태롭다.

9. 물건 따위가 자꾸 흔들려 어지럽다.

10. 뒤숭숭하고 어수선하다.

11. 빛이 비쳐 밝다.


한 단어에 상반된 의미가 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또 무언가는 없다는 것이고 그게 반복되다 보면 적당히 있고 적당히 없는 딱 적당한 상태가 되지 않을까. '요요하다'의 뜻풀이만 보아도 그렇다. '맵시 있고 날씬한 젊고 아름다운 사람은 멀고 아득한 미래를 향해 뒤숭숭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위태로운 발걸음을 쓸쓸히 내딛는다.' 상반된 풀이들을 붙여 뭔가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내 능력이 좋은 탓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적당하기를 바라는 세상의 뜻이 작은 단어 하나에도 깃들여져 있는 탓이다. 내가 20년을 넘게 모르고 살았던 '요요하다'라는 단어조차 그러한데 하물며 20년을 넘게 데리고 사는 내 몸은 얼마나 더 그러하겠는가. 앞으로 몇십 년은 더 함께 해야 할 내 몸뚱이에게 요요하라고 그렇게 세상의 이치대로 살라고 듣기 좋은 덕담이나 하나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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