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장면을 자주 상상한다.
아주 어렸을 때는 엄마의 삶이 싫다고 생각했고, 조금 더 큰 후에는 슬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엄마 같은 삶을 살 자신이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삶을 물은 적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역사가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다른 삶을 사는 우리지만, 결국에는 같은 뿌리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내게 "네가 좀 배웠다고 나를 무시하냐"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괜히 이상한 꼬투리를 잡는다고 생각했다. 엄마처럼 살기 싫으면 공부하라고 했으면서, 이제는 배웠다고 무시한다니,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에게 "아니, 그걸 왜 그렇게 받아들여?"라고 되물었다. 대게는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느 날, 엄마의 이름이 적힌 공책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걸 펼쳐 보니 엄마가 그린 자신의 인생 곡선이 있었다. ‘살아갈 힘이 없었는데 애들 때문에 살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다음 장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엄마는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고 적었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얼른 공책을 닫았다.
자식에게서 살아갈 힘을 얻는 기분을 상상해본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내 아이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엄마는 단 한 번도 엄마가 짊어진 짐을 나에게 주려 한 적이 없었다. 엄마의 역사가 나에게 온 순간, 나는 엄마의 삶을 존경하게 되었다. 엄마는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나를 선택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선택받은 아이였고, 사랑받은 존재였다.
엄마가 내게 가장 중요한 뿌리를 물려주었다. 오만 가지 폭력으로부터 사랑을 지켜내는 일 . 자신을 무시하고, 히스테리만 부렸던 못된 딸을 엄마는 매번 최대한으로 사랑했다. 부서지고 무시당해도 다시 사랑을 했다. 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분명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내 삶의 뿌리는 엄마로부터 왔음을 느낀다.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에 절망할 때마다, 나는 엄마의 역사를 떠올린다. 그러면 나의 어딘가에는 분명 사랑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어"로 시작하는 장면은 "엄마 같은 삶을 살 자신이 없어"로 끝이 난다. 엄마 같은 삶, 그 경이로운 삶을 살 자신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