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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가? 작금의 미래는 더 외로울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과 성장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Growing old is mandatory, growing up is optional.
(나이를 먹는 건 필수, 성장하는 것은 선택이다.)
이끌던가 따르던가 비키던가


근래 강연이나 드라마에서 본 글귀다.


앞으로는 사람을 대할 때, 즉

나 외의 사람(가족, 지인 그 누구에게도)

그것도 요청할 경우에만...

기술적 경험의 전문가/숙련가의 톤 앤 매너로만 접근하고,

자신의 서사적 경험적 사적 삶의 접근은 개나 줘버려라.

(여담이지만, 그래서 반려동물 키우는 1인가구가 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나 없다.

만약 누군가 내 삶을 궁금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자기애가 지나친 사람, 혹은 공감력이 낮은 사람이다.

진짜 내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당신은 진심 고마워해라!

당신의 고독사를 예방해줄 유일한 사람일테니까...

(혹자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이에 의문이 든다면, 묻겠다.

지금 당신은 누군가의 삶이 궁금한가?

유명 셀럽이나 연예인 빼고 말이다.

3초 안에 답하지 못한다면,,,

끝까지 이 글을 읽기 바란다.

그럼, 적어도 앞으로 원인모를 외로움은 없을 것이다.


굳이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다면 글로 남겨라.

그것이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최선이다.


최소한 내가 10분 말했으면,

상대방의 말도 10분 이상 들어라!

그 조차도 함께하겠다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나이가 반백살이상을 넘긴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나의 삶이 역사와 함께하였는데

들을 가치가 없다는 것은 너무한 거 아닌가?


답은, 너무한 것이 아니다.

이유는 너무 많지만, 딱 두 가지만 꼽겠다.


첫째, 시간은 돈이다.

당신이 얘기를 하고 싶다면, 돈을 지불하고 하라!

카운슬러나 정신과 의사 기타 유사 직업인에게 말이다.


둘째, 이미 모두의 손바닥 안에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웬만한 카테고리별 정보는

손바닥 안에 있는 스마트폰에 우주생성 시부터 지금까지

빅데이터로 다 들어있고, 그것을 요약해서 읊어줄 챗봇도 있다.


그런데도 당신의 서사적 이야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가?!


먼저 태어나, 나이를 먹고, 경험을 한다는 것이

자산이고 실력이고 능력인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유사하게 흘러간다고 믿던 시절이다.

지금은 작년, 지난달 아니 지난주, 어제의 공부, 연구, 경험이 무용지물이 되는

초스피드, 초연결, 초지능, 초실감 시대다.


앞으로 더욱더,

소구력 있는 콘텐츠가 아닌 주저리 서사적 경험은

들어줄 사람도 시간도 없다.

당신의 지인은 물론이고,

가족, 친구조차도... 말이다.

이를 무시하고 자식이나 제자, 부하직원에게 계속

라떼(나때)는 하고 말하는 것은 이제 학대이고 고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외롭게 늙어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럼 나의 경험은 뭔가?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기술적 숙련도에 대한 노하우는
당연히 희소성이 높을수록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하게 되는
대다수의 것들은 이제 노이즈로 취급된다.
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26177241567188231/

자식, 제자, 후배, 부하직원...

그들의 표정을 보고,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노이즈인지 아닌지 재빨리 판단해야 한다.


이에 둔감하다면,

사이코패스던가 아니면,

홀로 외롭게 늙어 죽던가 둘 중에 하나밖에 없다.


당신이 외롭다면, 입은 열고 눈치와 귀는 닫은 본인 탓이다.


때로 화제를 던지는 것은 중요할 수 있지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요청할 때만 중요시된다.

묻지도 않는 말을 하는 것은,

시쳇말로 TMI(Too Much Information)이고

노이즈(Noise)다.


결국 앞으로는 듣는 사람의 선택권이 중요하다.
멍하니 바라보는 식의 청취자는 없다.
지상파 광고 가치가 낮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쪽같은 시간을 내서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필요에 의해서 들을 정보는 이미 넘쳐난다.

예전처럼 정보를 얻기 위해 인내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냥 다운로드하거나 스트리밍으로 보면 된다.

그것에 익숙한 세대고 시대다.


자~ 지금 당신의 주변에 귀를 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축복이고, 없다면 당연한 거다.


아직도 외로운가?!


4차 산업혁명은 자아실현의 시대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필자의 글, '4차 산업혁명 쉽게 이해하기' https://brunch.co.kr/@2lab/41 참조)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살아온 소중한 삶의 기억은 글이나 SNS로 남기고,

지금 당장 외롭지 않고 초대받는 사람으로 기억되고자 한다면,

그 어떤 누구와도 기존의 사회적 관계의 틀을 깨고...

(부모 자식,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직원, 선배와 후배, 업주와 고객 등등)

수평적 관계에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은퇴 완료형 꼰대에서 자아실현을 위해
 죽는 그날까지 노력하는 진행형 인간으로서
미래를 맞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vOpMBFGxf5s
누구나 늙고 죽지만,
그 마지막까지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가짐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태도다.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


https://www.koreatimes.net/ArticleViewer/Article/150327

<2023년 1월 2일 한국일보 기사>


올해 연초부터 나온 기사다. 기사 제목처럼 40대도 위태롭다.
예전 정년퇴직한 아버지처럼 은퇴 후 낚시나 등산 다니면서
 노후를 맞았다가는 100세 시대에 50년을 백수로 지내게 된다.
그래서 죽는 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고수가 되어,
사람들이 나를 찾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외롭지도, 어렵지도 않게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당신은...
완료형 인간으로 살 것인가? 진행형 인간으로 살 것인가? 

(필자의 글, https://brunch.co.kr/@2lab/183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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