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18살의 봄이었다. 삼월 이십일쯤으로 기억한다. 금요일이었나 토요일이었나. 아무렴 중요하지 않다. 그때 나는 온몸이 피와 진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내 삶이 나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가득했다. 수업 중이었나. 아무런 희망도 없는 미래를 위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수업을 듣고 있을 때, 나는 이 짓을 그만두거나 이 생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짓을 그만두기보다 쉬워 보이는 것을 택했다. 집에 와서 실행에 옮겼다. 그때 우리 집은 전세 만기가 되어 다시 낡고 조그만 집으로 막 이사를 하려던 참이었고 내 방은 버려져 있었다. 지혜가 없는 부모들은 자신들의 협소한 운명에 부딪혀 가며 싸구려 세간을 챙기고 있었다. 나도 몇 가지를 챙겼다. 모아둔 용돈 얼마와 옷가지와 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집을 나서며 엄마에게 인사를 했지만 그때고 지금이고 영영 어린 나는 끝에 그만 울먹이고 말았다. 도망치듯 집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디론가 떠나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나는 그 길로 나가 가본 적 없는 도시로 가서 죽을 생각이었다. 집 앞 버스 정류장이었다. 놀라서 달려 나온 엄마는 쓰레빠를 한 짝만 신고 있었다. 울먹이며 나를 붙잡는 엄마.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힐끗힐끗 쳐다보았다.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엄마는 정말이지 어쩔 줄 몰라 울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엄마의 간절함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는 상황이 주는 곤혹스러움도 얼마간 영향을 주었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풍경은 나의 삶에서 몇 번 반복되곤 했었다.
한 숨 고른 다음날 나는 가방에 짐을 챙겼다. 버스 터미널로 갔다. 그리고 가본 적 없는 도시로 갔다. 버스 터미널로 왔다. 근처의 여관에 숙소를 잡았다. 2만원이었다. 숙소 주인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담배를 샀다. 담배를 피웠다. 하염없이 걸어다녔다. 평일의 대낮에 낯선 거리를 걸어다니는 고3은 나뿐이었다. 택시를 타기도 했다. 혼자서는 처음 타보는 택시였다. 밤이되자 여관에 들어왔다. 눈물이 났다. 죽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노트에 글을 썼다. 죽으려는 나와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는 내가 노트에 허접한 글을 쓰는 풍경은 나의 삶에서 몇 번 반복되곤 했었다.
어느 날은 가본 적 없는 도시의 산에 올랐다. 올라 간 그곳에서 큰 소리로 외쳐보려 했다. 내가 생각한 문장은 '주눅들지 말자'였다. 주눅들지 말자. 6년 간 잔뜩 주눅들어 살아왔었기 때문이다. 적당한 곳을 찾아서 소리를 지르려 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소리치는 내 목소리를 나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읖조렸다. '주눅들지.. 말자..' 두 번 세 번 말해도 목소리는 커지지 않았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서둘러 산을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나의 낡고 좁은 집으로 돌아왔다.
우울한 사람은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뿌리 깊은 우울함과 근간을 이루는 수치심, 패배감 따위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찾으려 한다. 이유를 알면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시절 나도 그랬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울한 사람의 통찰은 엉망이라서 우울의 이유를 정확히 찾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답은 간단하다. 그때 내 삶의 조건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유를 찾으려 했다. 다들 비슷하게 사는 줄 알았다. 기운 넘치는 친구들의 표정을 보며 나의 성격에, 신체에,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냥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수치스러운 가난,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우울, 누나의 조현병, 이것이 펼쳐지는 좁은 집에서 온 몸을 긁어대는 나. 건강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고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18살의 겨울이었다. 나는 그토록 바라던 탈출에 성공했다. 대학 입학이 결정되고 그 지옥같은 집을 떠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벗어나기만 하면 괜찮아 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새로운 삶의 문제들에 직면해야 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사회와 격리된 채 자라난 늑대소년처럼 어리석게 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