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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23 지하생활자의 후기

 나의 성장 과정을 반추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나의 현재에 피어오르는 고약한 냄새는 그 발원지를 찾아 자꾸 고개를 돌아보게 했다. 우울에 빠진 어느 밤, 그러니까 거의 모든 밤에 나는 어둠속에서 혼자 내가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보잘 것 없는 현재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지 생각했다. 방법은 대부분 현실적이지 않았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었다. 가난과 사회성의 부족, 건강하지 않은 심리를 안은 내게 삶의 문제들은 다가왔다. 사람을 사귀어야 했고 사랑을 해야 했고 공부를 해야 했고 취업을 해야 했다. 대부분은 서툴게 발버둥치다가 스스로 파국을 만드는 것으로 결론났다.


 세상은 가난에 대해, 우울에 대해, 열등함과 나약함과 같은 요소들에 대해 관대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발설하거나 인정하는 순간 세상은 나를 도태시켰다. 세상은 괴롭고 우울하고 무거운 주제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긍정과 노력, 발전과 성공을 요구했다. 매일을 우울에 시달리는 내게 그것들은 너무나 멀어 보였다.     


 나의 우울증을 인정하고 병원 문을 열기까지 15년이 걸렸다. 정신병을 앓으며 병원에 다니던 나의 큰누나에게 쏟아지던 저주의 말들 중에는 나의 말도 섞여 있었다. 정신병원은 내게 오랫동안 금기였다. 알 수 없는 지저분한 감정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망가뜨리면서도, 매일 밤 우울에 시달리며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가 우울증이 아니라고 믿었다. 아니 우겼다. 병원에서 우울의 치료를 시도하는 일은 지독한 수치를 의미했다.     


 병원에서의 처방이 기적적으로 우울을 낫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담을 하다가 목놓아 울어버리고, ADHD약을 먹고 처음 느껴보는 안정감에 인생을 허비한 것 같은 허탈감으로 목놓아 울어버리고, 혼자 밥을 먹다가 우울증에 걸린 큰누나에게 물건을 집어던지던 나의 열 네 살이 떠올라 울어버리고, 약을 먹고 기분이 나아졌어도 작은 집과 비전 없는 현재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울어버렸어도, 나는 내 우울증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세상은 가난에 대해, 우울에 대해, 처절한 열등감과 나약함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을 체험한 자들은 아직도 그것을 겪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협소한 운명에 부대끼 지쳐버린 그들은 힘이 없다. 그래서 세상에 그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가난과 우울을 체험하지 않는다. 세상은 행복과 성공의 이야기를 채우기에도 좁아보인다.


 체험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가난을, 우울한 성장기를, 지독한 우울증을, 자살의 시도를 체험했지만 아직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꾸역꾸역 적어나갈수는 있다. 이것은 18살의 봄, 내가 처음 죽기로 결심하고 집을 떠나 어느 여관에서 적었던 노트의 후속작이다.


그리고 세상 어느 곳에 나와 닮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위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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