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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17. 2021

부자 노인의 일대기

운명처럼 나를 깨워 준 할아버지는

"명심하게. 삶에서 가치 있는 것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이라네. 다 내던진 후에야 찾아오는 것이지."


                                        

 그날 나는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들었다.     



 할아버지의 부모는 이북에서 몸만 내려왔다. 부산에 자리 잡은 가족은 난전에서 물건을 팔며 생활했는데, 온 식구가 나서 장사에 나서도 변변찮았단다. 배고프고 가난해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돈 벌 곳이 많다는 서울로 상경한다. 그때가 열일곱 살이란다.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하루 15시간 동안 기계를 돌린다. 하숙집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공장으로 향한다. 청계천에 있던 그 공장 근처에서 누가 분신을 하기도 했는데 그는 전태일이었다. 중노동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던 어느 날, 같은 라인의 동료가 프레스에 눌려 죽고 말았단다. 어제까지 같이 일하던 동료의 시체를 짐짝 치우듯 치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지금까지 모은 돈을 들고 다시 가족 곁으로 내려가려 했단다. 매일을 중노동에 시달린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같은 결론을 내린 동료가 있었다.


 서울역 근처 여인숙에 묵고 동료와 술을 마시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꼭 성공해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동료는 사라졌다. 그리고 3년 동안 모은 돈도 함께 사라졌다. 어이가 없어 눈물도 나오지 않더란다. 


 갈 곳이 없었다. 그는 한강 다리에 갔다. 흐르는 물을 보며 뛰어들려 했다. 그러나 도저히 죽을 수는 없었단다. 다시 서울역으로 갔다. 얼마간 노숙을 했다. 동냥도 했다. 품도 팔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스님이나 될까 하고 고향 근처에 있는 절에 들어갔다. 


 그 절 스님에게 배웠다. 명상을 하고 수련을 했다. 공부하겠다고 들어온 고시생들의 책을 빌려 읽었다. 밤낮으로 불경을 읽었다. 그 절에는 성공한 사업가들이 총총 찾아왔단다. 사업가가 절에 찾아오면 하나라도 듣기 위해 수발을 들었다. 성공한 사업가들은 시주하듯 초록 머리의 젊은이에게 세상을 알려주었다. 경전 공부와 귓동냥과 어깨너머 책을 읽으며 세상을, 인생을, 우주를 배웠다. 속으로는 칼을 갈며, 매일을 알 수 없는 열정과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시달리며, 그렇게 수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한다.     


 스님께 큰 절을 올리고 환속한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이제 직관과 운명의 힘을 알고 있었단다. 사업과 성공, 행복의 원리를 짐작하고 있었단다. 그 해 교복자율화가 시행되었다. 그 소식은 하나의 계시처럼 들렸다. 그는 곧장 동대문으로 갔다. 날품으로 시작해 옷감을 다루었다. 학생들이 교복 대신 사복을 입게 되자, 오늘 쌓아 둔 옷감은 다음 날 두 배로 쌓아두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단다. 날품으로 시작한 동대문 생활은 불과 1년 만에 대박이 난다. 그리고 명동으로 진출한다. 명동에 매장을 낸다. 옷감부터 옷까지 다루는 의류사업가가 된다. 결혼을 하고 집을 산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올림픽이 개최된다. 그의 직감과 세상을 향한 통찰은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정부 정책을 보아하니 부동산에 노다지가 있었다. 여윳돈으로 분양하는 아파트를 붙잡는다. 붙잡고 있으면 올랐다. 하루가 지나면 값이 뛰었다. 전날 세 명에게 연락 오면 다음날이면 이십 명에게 연락이 왔단다. 사람들이 제발 팔아달라고 아우성칠 때 높은 가격에 털고 나왔다. 그때 이미 그의 재산은 3대가 평생을 안락하게 지낼 만큼 쌓였다 한다.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직감. 재산의 증식은 거기서 멈춘다. 본인의 그릇은 거기까지라고 했다. 그 이후의 삶은 보너스처럼 살았다 한다. 아주 조용히. 그러나 그는 부지불식간에 알짜배기 상가건물과 토지를 챙겨두었다.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대단한 풍요를 쌓아두었다.     



부인과 자녀들은 미국에 있다. 할아버지는 종종 미국에 들를지언정 미국 생활은 맞지 않는다 한다. 그곳에서는 사색을 놓친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거실에 크게 걸려있는 가족사진은 행복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모습이다.           




나는 물어보았다.     



 "그날 제 등을 때리고 이렇게 가르침을 주시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난다고 믿는다네. 그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죽박죽 얽힌 채 드러나지. 그것을 알아채느냐, 알아채지 못하느냐는 그 사람의 의식에 달려 있네. 나는 징조를 놓치지 않아.     


 죽으려던 자네 모습에서 젊은 시절 나를 보았네. 자네를 도와야만 운명이 완성된다는 말이지. 말하자면, 고리 같은 것. 나는 고리의 이음새를 보았고 그냥 지나치면 안 되었지.     


 기억하게. 이제 자네도 징조를 알아차리게 될 거야. 놓치지 말게나."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결국에 알게 되었다.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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