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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18. 2021

헛 짓 말고 먹는 일부터 다스려라

섭식의 중요함

노인은 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음으로 꺼낸 주제는 바로 섭식, 먹는 일이었다.




 사람이 삶의 통제력을 잃어버리면 먹는 일부터 이상해진다. 혹은 먹는 일이 이상해지면 삶도 이상해진다. 증상은 흔히 폭식이나 거식, 계획적이지 않은 섭식, 과도한 음주와 같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폭식은 상실감과 연결되어 있다.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그것이 일으키는 감정을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우리의 내면은 결핍을 호소하는데, 이때 몸이 이 신호를 잘못 읽으면 상실한 무언가를 음식으로 대체된다. 균형을 잃고 마구 먹기 시작한다. 아무리 먹어도 상실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거식은 통제력을 잃어버릴 때 일어난다. 삶에서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을 때,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삶을 실감하는 것이 어려울 때 우리는 우리가 작용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영역에서 잃어버린 통제력 찾기를 시도한다. 거식은 무언가 해야 한다는 느낌은 있지만 명료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하고 즉각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먹는 일을 억제하는 것이다. 나의 섭취를 내가 가로막는 것이다. 


 자기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수치스럽고 죄스러운 자신을 벌한다.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분을 나아지게 한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차라리 혼이 난 다음에 마음이 편해지듯 안심이 되는 마음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음식의 섭취가 필수적이다. 이제 어긋난 마음이 명령하는 거식과 몸이 원하는 폭식이 반복된다. 거식과 폭식이 반복되는 나의 섭식을 내가 바라본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더욱 깊어진다. 나의 존재에 대한 애정과 통제력은 점점 더 사라져 간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통제력이 사라지면, 우리는 기어코 힘을 내어 무엇이든 통제하려 한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영역을 통제하려 한다. 바로 삶 그 자체, 목숨이다. 통제력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시도이다. 극심한 우울을 오래도록 겪고 삶을 저버릴 마음을 먹어갈 때 섭식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어도 희망은 있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통제력을 되찾고자 하는 시도가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통제력을 되찾기 위한 조금의 힘도 없다면 목숨을 통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삶이라는 질병에 자신의 모든 걸 내어준다.


 모든 증상 중에서 거식증은 가장 위험하다.





 섭식은 우리 몸과 외부 세계를 잇는 중요한 의식이자 가장 기본적인 통로다. 우리는 섭식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우리 몸을 기능하게 한다. 삶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저조함을 느낄 때, 삶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슬프고 우울할 때, 모든 것이 엉망이 된 기분이 들 때, 즐거움을 잃어버렸을 때,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섭식이라는 지름길을 통해 내면을 채울 수 있다.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된다. 되는대로 먹으면 되는대로 살게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람이 어렵다는 핑계로, 돈이 없다는 핑계로,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하루를 설계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로, 갑자기 먹고 싶다는 이유로 아무거나 되는대로 먹어선 안된다. 이것은 상황이 휘두르는 대로 살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다. 상황에 얽매이는 내면은 힘을 잃고 만다. 저조함에 다다르는 길에는 언제나 섭식의 문제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먹는다. 되는대로 먹는다. 배달음식을 먹는다. 함께 먹을 사람이 없다. 요리하는 일은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고 설거지는 귀찮고 번거로우므로. 토스트 하나로 식사를 해결한다. 김밥 한 줄로 주말 아침을 해결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저렴한 음식에 술을 먹고 되는대로 잠드는 하루가 많아진다. 바쁜 하루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섭식을 소홀히 한 날 밤은 허기를 이기지 못해 충동적으로 야식을 시켜 먹는다. 치킨, 피자, 족발, 탕수육을 밤 열 시에 시켜 먹는다. 술을 함께 먹는다. 하루를 게워내듯 잠이 든다. 이러면 다음날 아침은 토사물처럼 느껴진다.


 섭식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결핍이 생기면 아무렇게나 겨우 채운다.’ 섭식에 대한 이 같은 태도는 삶의 많은 영역으로 번져나간다.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먹어도 살아지는데 왜 굳이 고생하는 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한다.





  섭식을 통제하기 시작하면 삶의 여러 영역이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내 몸에 좋은 것을 제 때 먹고 충동적으로 먹지 않으며 내 몸에 좋지 않은 것을 피한다.’라는 섭식의 원칙이 삶의 여러 영역으로 번져나간다. 우리의 구성요소는 연결되어 있다. 섭식을 관리하게 되면 삶을 관리하게 된다. 여러 소음 속에서 내게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은 닭가슴살, 계란, 야채, 신선한 해산물과 함께 싸구려 공산품, 질 나쁜 탄수화물과 기름덩어리 음식, 썩은 음식, 독버섯이 함께 있는 밥상과 같다. 제 멋대로 차려진 밥상 앞에서 우리는 명료함과 지혜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아무렇게나 먹어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우리 삶의 문제는 그때그때 기분과 상황에 따라 예쁘게 생긴 독버섯을 먹어버리는 일에서 발생한다. 


 자신의 의도에 따라 섭식을 관리하는 것은 자신에게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을 물리치는 일이다. 우리의 욕망과 충동, 본능을 계획 있게 관리하는 일이다. 섭식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여러 영역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을 수 있다.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고 느낄 때면 먹는 것을 관리하라. 우리는 현실이 고장 나고 망가졌다고 생각이 들면 그것을 붙잡고 늘어진다. 현실 논리에 휩싸인 우리의 에고, 습관이 만들어놓은 이성과 논리가 그렇게 시킨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진다. 이것은 오히려 당신의 통제력을 고갈시킨다. 절망과 좌절을 불러온다. 


 문제를 완전히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집에 물이 샌다고 한강에 가서 물을 떠내는 일이다. 고집대로 계속할수록 당신은 지치고 망가지게 된다.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당신이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섭식만큼은 당신이 통제할 수 있다.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며 생명을 소진할 것인가,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보살피며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인가?


 규칙적이고 건강한 섭식은 당신을 바꿀 수 있다. 원칙은 간단하다. 당신에게 좋은 것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좋지 않은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요컨대 좋은 음식을 제 때 먹는 것이다. 계획해서 실행하라. 섭식을 관리하라. 섭식에 대한 태도가 삶의 여러 영역으로 번져나가게 된다. 섭식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다 명료하게 수용할 수 있다.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좋지 않은 것을 물리치는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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