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하는 삶에서 계획하는 삶으로
노인은 섭식에 대한 이야기 끝에 내게 과제 하나를 주었다.
그것은 이틀 동안, 48시간 동안 단식을 해 보라는 것이었다.
삶을 바꾸려는데 웬 단식인가 싶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노인은 단식 이야기를 계속했다.
당신의 삶이 저조한 이유는 상황에 반응하며 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에, 감정에, 욕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살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말하고 아무렇게나 생각하며 아무렇게나 행동한다. 그저 살아온 방식과 습관으로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산다. 내일도 마찬가지다. 삶은 그대로 흘러간다. 이게 아니라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삶을 겪어낸다. 상황에 얽매인 채로, 결핍이 가득한 채로, 무엇인가 해소하며 사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낼 뿐이다. 반응하는 삶은 모양새가 대체로 비슷하고 뻔하다. 삶을 ‘연기’한다.
이런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하는 삶이다. 계획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의도를 분명히 하고 목표를 정확히 세우며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자기 자신이 통제력을 갖겠다는 선언이다. 반응하는 삶의 방식을 멈추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겠다는 의지이다.
이틀이라는 시간은 적당히 어렵고,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시간을 뺄 만하다. 평일도 좋지만 아무런 약속이 없는 주말 이틀을 추천한다.
단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은, 섭식이라는 삶의 기초적인 행동을 설계하겠다는 시도이다. 먹는 일은 우리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는 행동이다. 삶의 기초를 이루는 섭식은 부지불식간에 습관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먹는 일을 섬세하게 계획하는 일은 늘 바쁜 우리에게 성가신 일이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먹어버린다. 그때그때의 상황과 욕구에 그저 반응하며 살아버린 것이다.
단식은 반응하는 삶에서 벗어나 계획하고 통제하는 삶을 연습하는 것이다. 단식이 이 연습에 유용한 이유는 알아차리기 쉬운 식욕이라는 욕구를 다루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든 시도할 수 있으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단식을 하면 다양한 생각과 감정과 욕구와 충동을 겪는다. 당신은 단식의 성공을 위해 욕구, 생각, 감정을 맞닥뜨려야만 한다. 먹고 싶다는 욕구에 반응하는 순간 단식은 실패한다. 당신은 그것을 알아차리되 반응하지 않아야만 한다. 단식을 통한 '반응하지 않는 연습'은 당신에게 통제력을 가져다준다.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력은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 느낌을 깨닫게 한다.
단식하는 동안 평소 자네가 욕구와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아라.
먼저, 반응을 미루는 방법을 익혀라.
단식을 하다 보면 먹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난다. 불과 한 시간 만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튿날쯤에 강한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제 이것에 반응하는 것을 유보해야 한다. 반응했다면 이미 치킨이나 족발을 배달시키거나 초콜릿 케이크 한 접시를 비워버릴 테지만 48시간의 단식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욕구들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유보해야만 한다. 자신의 욕구와 충동으로부터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적절히 관리하며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내적 대화를 점검하라.
이때 당신이 당신에게 하는 말을 알아차려야 한다. 즉, 자동적인 내적 대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식욕이 일어날 때 이를 어떻게 다스리는가? 욕구를 억압하는가? 회피하는가? 긍정하고 수용하는가?
당신이 스스로를 억압하는 성향이라면 식욕을 느끼는 자신에게 모진 말을 하거나,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자신에게 열등감이나 수치심을 불러일으킬만한 태도로 욕구를 대할 것이다. 가학적인 성향이라면 허기를 겪는 자신을 보며 오히려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다. 회피하는 성향이라면 욕구를 피해 다닐 것이다. 알아차리지 못하게 영화를 보거나 딴짓을 하는 등 자신의 욕구로부터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릴 것이다.
단식을 통해 연습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욕구와 충동을 긍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식욕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를 받아들인다. 자신을 보듬는다. 계획과 목표를 되새긴다. 자신을 설득한다. 식욕 자체에 대해 어떠한 판단이나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인다. 그러나 반응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멈춘다.
마지막으로, 생각과 감정을 좋은 길로 인도하라
단식을 하는 동안 일어나는 생각을 살펴보라. 생각은 알아차리기 쉽다. 언어의 형식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걸 왜 하고 있지'부터 '단식에 꼭 성공하고 싶다'까지. 범위를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생각이 드러날 것이다. 그것들은 타당한가? 그것들은 당신에게 힘을 주는가? 그것들은 당신이 원하는 생각인가? 어떤 생각들이 일어났든, 그것이 당신이 삶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알아차려야 한다.
감정을 살펴본다. 단식의 과정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무력감? 분노? 좌절감? 성취감? 당신 내면의 힘이 약하다면 분노나 무력감, 슬픔을 느꼈을 것이고 당신 내면에 힘이 있다면 성취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당신이 내면의 힘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고 그저 그랬던 대로 고요할 것이다.
행복한 삶은 자신의 내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삶이다. 그러나 외부의 상황에 끝없이 반응하며 살게 되면 내면은 숨어버리고 만다. 삶의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런 상태에 놓여있다면 통제력을 되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단식은 삶의 통제력을 되찾는 연습이다. 단식을 하며 반응을 유보하고 욕구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한다. 생각과 감정을 점검한다. 식욕을 대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과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확인한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귀한 손님처럼 대접하라.
단식에 성공했다면, 당신은 의도를 분명히 하고 목표를 정확히 세우며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은 것이다. 반응하는 삶의 방식을 잠시 멈추고 계획한 대로 삶을 살았다. 당신은 삶에 대한 통제력을 경험했다. 용기가 생긴다.
삶을 다시 쓰고 싶은가? 반응하는 삶에서 계획하는 삶으로 건너가라.
계획하는 힘을, 삶을 향한 통제력을 기르고 싶은가?
48시간의 단식에 도전하라.
밑바닥까지 떨어진 내게 노인은 몸을 들여다보라는 충고와 48시간의 단식이라는 과제를 주었다. 도대체 삶을 끌어올리는 것과 호흡, 먹는 일, 단식이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그러나 나는 절박했고 노인은 그런 나를 도우려 하고 있었다.
"가치 있는 모든 것은 쉽게 얻을 수 없어"
"모두 내던져야 겨우 가질 수 있다네"
나는 노인의 말을 되새겼다. 노인의 가르침을 빠뜨리지 않고 실행하기로 다짐했다. 어짜피 밑져야 본전 아니던가.
과제는 나였다. 나를 향한 도전이었다. 소소하지만 어려운 도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