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본 기생충. 이 영화, 기억이 나고 생각이 들 때마다 더 불쾌해지는 느낌의 영화다. 사회 문제를 해부하거나 비판적인 시선을 가르쳐줘서는 전혀 아니고, 너무나 쉽게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을 싹 지워버려서.
백번 양보해서 부잣집 아주머니의 경우 트로피 와이프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으니 이래저래 모두 다 그냥 퉁치고 넘어간다 칩시다.
주인공 남자애는 과외한다고 간 첫날 여학생 팔목을 잡고 흔들지를 않나, 여학생과 여학생 엄마는 그거에 반하지를 않나,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엄마는 젊고 심플한 사람으로 표현되고 여학생은 대학생 오빠 과외 선생만 보면 반해서 연애하는 아이로 나오고.끊임없이 대학생 오빠 꼬시는 캐릭터인 이 여학생은 급기야는 뇌진탕에 쓰러진 주인공 남자애를 업고 뛰어가지요.
전에 일하던 아주머니와 주인공 가족 엄마 모두, 결국 팔 걷어붙이고 맞서고 있는 건 이 두 여성이지만 각각의 남편은 그저 남편이라는 이유로 세상 무게 다 짊어지고 있어도 전혀 문제도 비난의 거리도 되지 않고. 자기 욕먹기 전까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무계획이 짱이라며 허허허 허허허. 체육관 장면에서는 내가 짜증 나서 아들이 들고 있던 짱돌 뺏어 내려 찍을 뻔...
그 와중에 지하실에 숨어 살던 아저씨 올라왔을 때, 어디선가 (아마도 사채업자들에게) 쥐어터지고 온 아주머니는 아저씨 등에 올라타서 안마를 해주고 있고 (물론 제일 먼저 죽는 건 이 아주머니).
위조 입학증 만들어 준 것도, 검색과 눈썰미를 통해 부잣집 아주머니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것도, 나중에 지하실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려고 해 본 것도 딸이지만, 칼 맞아 죽음. 짱돌로 머리 두 번 제대로 내려 찍힌 주인공 아드님은 죽지도 않고 멀쩡해지더마.하긴, 이 아드님은 자기한테 반한 여고생이 업고 뛰어서 구조되었나 보군요. 정말 잘난 다른 대학생 오빠 짝사랑하던 누이는 칼 맞고 과다출혈로 엄마 품에서 죽고 있는 동안.
심지어 파국이 지난 후 에필로그에선 주인공 어머니는 살아있음에도 존재 완전 사라짐. 피자 박스 잘 접은 것도, 동영상 찍혀서 포로로 잡혀 있을 때 과감히 몸을 날려 전세를 뒤집은 것도 아주머니이고 지하실 아저씨 꼬챙이로 낑군 것도 아주머니이지만알게 뭡니까. 썩은 사회에 분노를 터뜨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두 남편들 뿐인데.
지렁이 꿈틀은 아빠들만 하는 겁니다. 아빠는 엄마에게 너 지금 사돈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팬티 빨아주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엄마가 아빠에게 너 바퀴벌레처럼 도망갈 거라고 하면 엄마는 멱살 잡히는 거지요.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역시 "아들아"로 시작하는 편지와 "아버지"로 시작하는 답장. 상상 속 장면에서도 어머니는 그 와중에 정원 구석에 가서 쭈그려 앉아 꽃 사진 찍고 있어요. 아버지는 모진 고생을 견뎌내고 왕의 귀환을 하는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