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여행을 다녀왔다. 3박 4일, 긴 여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 다녀온 대부분의 여행이 1박 2일, 혹은 2박 3일이었기에, 우리 부부에겐 '비교적 긴' 여름 여행이었다. 덕분에 많이 걷고 푹 쉴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지 3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상으로의 전환이 안 될 정도로.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는 것은 내겐 늘 어려운 일이다. 긴장된 마음으로 마주치는 낯선 환경들, 시선을 돌릴 때마다 보게 되는 색다르고 멋져 보이는 장면들, 하지만 동시에 특별한 의미도 인상적인 느낌도 남지 않는 그렇고 그런 순간들. 전에는 처음 마주한 그 장면들을 짜내어 어떻게라도 조금 멋있는 사진들을 찍어보고 남겨보고 싶었지만, 결국 더 중요한 것은 함께 바라본 시선들을 남기는 것, 함께했던 순간들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수십 수백 장의 겉멋 든 사진들보다 함께 웃으며 찍은 셀카 한 장이 더 소중하고 좋은 사진이라는 것을.
다행히 프로 사진가도 아니고 여행과 사진들에서 무슨 깊은 의미를 찾는 사람도 아니기에, 아내와 함께 일상의 공간이 아닌 곳을 걷고, 헤매고, 가끔 조금씩 투닥거리고, 새로운 곳에서 다른 장면을 바라보며 맥주를 한 잔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이미 여행은 우리에게 충분한 만족을 준다. 이런 나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사진은, 둘이 함께 보낸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한 일종의 메모들에 불과한 게다. 함께한 시간과 장소들을 함께 기억하고, 때론 혼자 있었던 순간들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우리들끼리 찍은 스스로의 사진들을 페이스북 등의 공간에 올리는 것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다. 예전에는 자주 올리곤 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시들해져서 이제는 1년에 한두 번, 한두 장 정도 생존 확인용으로 올리는 정도랄까.
더블린은 걷기 좋은 도시였다. 비교적 넓고 깨끗한 도로, 알기 쉽게 쭉쭉 뻗은 길들, 골목마다 들어선 '아이리쉬 펍'들과 어디에든 북적이는 관광객들. 걸어 다닐만한 넓이의 도시, 걸어 건널만한 폭의 강. 모든 것들이, 뭐랄까, '적당한' 느낌이었던 곳. 반듯한 건물들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이층 버스들이 가득했던 그 거리.
빨강, 주황과 초록의 색들이 무척이나 화려했던 곳이었기에 아내의 로모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더블린 거리 - 어떤 사진들이 나올지 기다려진다. 필름 사진을 이야기할 때 '기다림의 미학'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솔직히 난 기다리는 것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여행을 하는 동안 며칠 기다리는 것은 별 문제없고 별생각 없지만, 여행이 끝난 후, 스캔/현상을 맡기고 기다리는 일은 솔직히 번거로운 일이다. 게다가 아직 다 찍지 못한 필름이 카메라에 들어있어 일부 여행 사진은 아마도 몇 달 후에나 볼 수 있다는 건 더더욱. 필름 카메라를 18년째 들고 다님에도 변하지 않는 생각이니, 딱히 '디지털 세대의 조급함'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불편한 것은 불편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