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Judgement)’
숫자 20.
아주 조용한 순간에
갑자기 또렷해지는 게 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는 감각.
심판 카드는
바로 그 순간을 가리킨다.
하늘에서 나팔이 울린다.
사람들은 관에서 몸을 일으킨다.
억지로 끌려 나오지 않는다.
도망치지도 않는다.
그저
이제는 누워 있을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아는 표정이다.
심판은 벌이 아니다.
이 카드는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느끼게 한다.
이대로는 더 갈 수 없구나.
태양이 모든 걸 환하게 드러냈다면,
심판은 그 장면을 보고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카드다.
이미 상황은 충분히 보였고,
이미 결과도 나와 있다.
이제 남은 건
모르는 척할지,
아니면 움직일지다.
심판의 핵심은
새로운 걸 아는 게 아니다.
이미 알고 있던 걸 인정하는 일이다.
이 관계가 나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이 일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계속 이렇게 가면 어떤 결말이 오는지
이제는 감이 아니라
확실한 이해의 단계에 와 있다.
그래서 심판은 선택의 카드다.
하지만 가볍지 않다.
“해볼까?”가 아니라
“이제는 결정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 카드를 만나면 미루는 게 제일 어렵다.
핑계를 대기도 어렵다.
스스로에게 너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카드 속 관은
죽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건 오래 버텨온 방식,
익숙했지만 불편했던 자리,
‘그냥 이렇게 살던 나’의 모습이다.
심판은 그 자리를 부순다기보다
거기서 일어나게 만든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의 한마디 때문도 아니고,
큰 사건 때문도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이 삶의 방향이
나를 더 소모시키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걸 알고 나니
예전처럼 살 수는 없었다.
결심했다기보다
이미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심판 이후의 길은
가볍지 않다.
하지만 분명하다.
이제는 남 탓으로 돌리기 어렵고,
“몰랐다”고 말할 수도 없다.
대신 내가 선택한 삶을 내가 살아가게 된다.
심판은 말하지 않는다.
소리 높이지도 않는다.
다만 조용히 울린다.
지금, 일어날 시간이라고.
지금의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카드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그치지도 않습니다.
그저 묻습니다.
이제, 움직일 것인가.
그 질문이 들렸다면,
이미 준비는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