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UBUD_day6
오늘은 6시, 한국 시간으로 7시에 눈이 떠졌다.
알람이 왜 필요해요?
정확히 출근 시간. 게으름 좀 피우고 싶어도 영 안 되는 나는 K직장인.
발리에는 정말 많은 바이크가 있다. 상상초월이다. 그만큼 공기도 더럽고 운전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나는 보통 고젝 바이크를 타고 다녔는데 지나가다 보면 바이크를 rent 한 용감한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어떻게 이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운전할 생각을 하지? 뭐, 며칠째 바이크를 타고 다니다 보니 무질서 속에 질서가 조금은 보이는 것도 같다.
내가 운전을 하기로 결심한 건 남자친구와 이별한 직후였다. 더 이상의 만남은 의미 없겠다 생각하고 이별을 고한 건 나였는데,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만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란 더더욱 쉽지 않을 텐데 생각하니 갈대 같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럴 땐 뭐든 집중할 다른 것을 찾는 게 좋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운전. 나는 서울 한복판, 집에서 5분 거리에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모두를 끼고 있는 최적의 장소에 살고 있었는데도 충동적으로(!) 오랜 숙원이던 차를 사기로 한 것이다. 얼마나 충동적이었던지 나의 첫차는 서울 시내를 지나다가 우연히 본 차가 ‘귀엽고 예쁜데 많이 못 봤다’는 이유로 선택되었다. 곧 차는 그런 이유로 사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지만.
차는 예약을 걸어 놓고 연수부터 시작했다. 이 큰 차를 내가 움직이다니 경이롭고 두려워 처음 강변북로에 올라탄 날은 다리가 덜덜 떨렸다.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덜덜덜 액셀을 밟는 내 다리가 떨리는 게 느껴져서 더 떨렸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운전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초보 시절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은 차를 버리고 걸어가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스스로에게 미션을 줬다. 치즈버거 사 오기, 마트 가서 장 봐오기 등.
미션을 하나씩 달성할 때마다 어찌나 뿌듯하던지 마침내 출퇴근도 운전해서 다녀 보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차선을 못 바꾸면 임진각까지 가게 될 수도 있으므로(다소 극단적인 상상) 8시 출근 시간에 맞춰 6시에 출발했다. 이게 얼마나 비장하고도 귀여운 계획인지, 지금은 빠르면 15분 늦어도 30분이 넘지 않는 거리다. 물론 첫날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아 회사에 도착했다.
그렇게 시작한 운전 경력도 어느새 n년차. 고속도로를 숱하게 오르고 복잡한 홍대, 연남동도 제법 잘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젠 차 없는 삶은 생각도 못하겠다. 아무리 그래도 내 실력으로 발리에서 운전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발리는 교통이 불편해 차보다는 바이크로 움직이는 게 낫다. 제법 멀리 나와도 3천 원 안팎이라 어지간하면 바이크 이용. 보통 자기 소유의 바이크를 가지고 영업(?)하는 모양인데 헬멧은 먼저 주기도, 안 주기도 하므로 안 주면 달라고 하면 된다.
우붓까지 올 때 이용했던 클룩 기사에게 발리 사람들은 죄다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 것 같다고 하니 17살부터 운전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자세히 보면 얼굴이 모두 앳될 거라고. 실제로 우붓 센터에는 바이크가 많다. 어딜 가든 바이크. 여성분들도 예쁘게 차려입고 핸드백을 메고(!) 바이크를 탄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오늘은 작정하고(!) 센터에만 있을 예정이다. 셔틀을 타고 우붓 왕궁 앞에 내리자마자 커피 맛이 좋다는 seniman coffee로 향했다.
매우 독특한 외관의 카페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일하기에 좋아 보였다. 난 디지털 노마드도 아닌 데다가 에어컨 못 잃어서 실내에 있기로.
흔들의자에 앉아 글을 좀 쓰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간다. 여기선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이 참 잘 간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꽤 많은 걸 한 것처럼 진이 빠져. 이참에 살도 빠지면 좋으련만.
오늘 가려던 신씨화로(두 번째 방문!) 오픈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투키스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냥 멍 때리고 앉아만 있어도 잘 가는 시간.
점심은 또 한식이다. 촌스러운 나라서 미안해. 이런 나라도 괜찮겠어요?
두 번째 방문인 신씨화로에서 양념 갈빗살에 된장찌개까지 배부르게 먹고 우붓 마켓에 가기로 했다.
우붓 아트 마켓은 스타벅스 바로 옆길에 이어진 시장이다. 쭉 길을 따라가면서 우붓 기념품, 나무나 라탄 제품, 가벼운 옷들을 구경할 수 있다.
여행하다 보니 잔뜩 챙겨 온 치마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라(특히 고젝 바이크 탈 때!) 바지 몇 벌을 살 겸 들렀다.
나는 흥정에 별 어려움이 없는 냉철한 소비자로서, 다소 마음 약해지는 순간이 없진 않았으나 몇 군데를 돌며 대강의 시세를 이미 파악해 뒀다.
딱 봐도 세탁기에 들어간 순간 걸레가 돼서 나올 것이 뻔한 바지를 150,000(대략 1만 3천 원)루피아를 부르면 too expensive~부터 시작. 180,000루피아를 부르는 상인도 있는데 그럼 한껏 할리우드 액션을 더해 ‘c’mon~’해 준다. 그러면 ’원하는 가격 말해 맞춰 줄게.‘ ’옆가게는 50,000 부르던데용?‘ ’오~ 너무 싸. 80,000은 줘야지.‘ 하면 다시 ’그럼 됐어요.‘ 하고 간다. 뒤에서 부르는 ’오케이 오케이 50,000‘ 하면 낙찰. 가끔 너무 마음에 들면 60,000까지는 넘어가 줬다. 그래 봐야 한국 돈으로 5,000원대.
그렇게 아라비안 나이트를 생각하게 하는 바지 두 개와 민소매 티셔츠를 샀다. 그중 마음에 쏙 드는 바지를 60,000에 판 아저씨가 ‘너무해!’라는 표정을 짓길래 ‘smile, please.’ 하니 익살스럽게 웃는다. 그래도 다른 데보다 10,000 더 드렸어요!
내일은 이거 입고 조금 더 현지인스럽게 보낼 수 있겠다. (그래 봐야 누가 봐도 여행객1)
엄마랑 주변에 조금 돌릴까 싶어 유명한 그레놀라 몇 개 사고 셔틀 시간에 맞춰 돌아왔다. 오늘도 수영하고 자야지.
시간 참 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