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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현 Jun 24. 2019

수직 원근법의 전복 가능성

국립현대미술관 [불온한 데이터] 전, 포렌식 아키텍처의 <지상검증자료>

히토 슈타이얼의 <스크린의 추방자들> 첫 장 <자유낙하: 수직 원근법에 대한 사고 실험>에서 그는 근대의 지배적 시각 패러다임인 ‘선형 원근법’이 현대에 와서 항공술의 발달을 기반으로 하는 ‘수직 원근법’으로 변화했다고 말한다.


지난 몇 년간 시각 문화는 공중에서 내려다본 군사 및 엔터테인먼트 이미지들로 포화 상태가 되었다.(위의 책, 28쪽)

선형 원근법이 정지한 상상적 관찰자와 지평선을 설정한 것처럼,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관점도 부유하는 상상적 관찰자와 안정된 상상적 바닥을 상정한다.
 이는 새로운 시각적 정상성을 발생시킨다. 곧 감시 기술과 스크린에 기반을 둔 오락거리로 안전하게 압축된 새로운 주체성이다. ... 이에 따르면 기존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구분은 고도화되고,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향해 위에서 아래로 던지는 일방적인 시선으로 변모한다. 또한 관점의 변위는 기계와 여타 객체로 위탁되어 탈체화되고 원격 조종된 응시를 창출한다.(위의 책, 31쪽)


이 해석에 따르면 수직 원근법, 즉 조감의 시선은 폭력적이며 고도화된 위계를 낳는다. 히와 케이의 <위에서 본 장면>(서울시립미술관, 보이스리스 전) 은 슈타이얼의 수직 원근법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작품은 제도 내에서 난민으로 인정, 보호받기 위해 거주민의 실제 삶의 기억을 지우고 심사관의 시선—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향해 위에서 아래로 던지는 일방적 시선(위의 책, 31쪽)—만을 남긴 ‘M’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글 [히와 케이의 <위에서 본 장면>에 관한 소고] 에서 슈타이얼의 이론과 함께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은 수직적 시선의 폭력성과 삶의 괴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비판한다.


히와 케이, <위에서 본 장면>


반면 국립현대미술관 <불온한 데이터>에서 전시되는 포렌식 아키텍처의 <지상 검증 자료>는 수직적 시점의 단일한 해석을 전복시킨다. 이들은 이스라엘 북부에서 발생한 베두인족의 강제 이주에 저항하기 위해 항공 지상 관측 사진을 수집해 정부가 숨긴 진실을 파헤친다.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는 마을은 사회기반시설의 혜택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새로이 들어설 유대인 정착지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철거’되는데, 이 마을들 역시 <위에서 본 장면>의 M처럼 기록되지 않아 유폐되는 존재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포렌식 아키텍처는 주민들과 함께 풍선에 달린 카메라로 지면을 기록하고 이 데이터는 ‘하나의 특권적 중심점이 없는 사진 환경, 포인트 클라우드를 구축’하며 일종의 사형 선고를 받은 마을을 구해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포렌식 아키텍처, <지상 검증 자료>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히와 케이의 작품에서 권력의 수단으로만 사용되었던 수직적 시점은 포렌식 아키텍처의 작품에서 하나의 중심점을 탈피해 권력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폭력적 제도의 피해 당사자들이 데이터를, 수직적 시선을 어떻게 점유할 것인지에 대한 모범적 답변을 제시한다. 이는 동시에 글의 마지막 결론에서 말하듯 ‘지평선 및 관점의 다변화와 탈선형화를 인정한다면 시각의 새로운 도구들은 분열과 방향 상실의 동시대적 조건을 표현하고 나아가 변경하는 데 또한 쓰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슈타이얼이 말하듯 이 작품은 다수의 중심점을 포용하며 제도화된 권력에 저항하는 ‘응급 고고학’이 되어 생존 가능성을 창출하게 된다.


사라지는 흔적들을 기록하는 것은 일종의 응급 고고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불온한 데이터> 전시장 전경


<지상 검증 자료>는 수직적 시점을 기반으로 했지만 슈타이얼이 결론에서 말하는 ‘콜라주’를 통한 ’관점의 다변화와 탈선형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다초점의 비선형적 이미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각성 내에서는 심연으로의 절망적 추락으로 보였던 것이 실제로 새로운 재현의 자유임이 입증된다.
(위의 책, 36p)


따라서 수직적 시점을 폭력적인 것으로 결론짓고 닫아버리기보다, 작품 <지상 검증 자료>와 같이 그 안에서 다양한 생존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것이 실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산적인 담론 방향이며 우리가 탐구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저 없이 객체를 향하고, 힘과 물질의 세계를 포용하며, 그 어떤 근원적 안정도 없이, 개방의 갑작스런 충격으로 번뜩이는 낙하. 고통스러운 자유, 지극히 탈영토적이며, 따라서 언제나 미지의 대상인 것. 낙하는 폐허와 종말, 사랑과 방치, 열정과 굴복, 쇠퇴와 파국을 뜻한다. 낙하는 타락이자 해방이고 사람이 사물로, 사물이 사람으로 변신하는 상태이다. 낙하는 우리가 견디거나 즐길 만한, 포용할 만하거나 고통스러운, 혹은 간단히 말해 현실이라 받아들일 그 구멍에서 벌어진다.
(위의 책, 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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