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정식 교육기관에서든, 학원에서든 번역을 배워본 적이 없어 한 번쯤은 배워보고 싶었다. 늘 혼자서 아등바등하는 것이 지겨웠었는데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던 많은 활동이 온라인으로 대체된 덕분에 내게도 기회가 왔던 것이다. 번역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3단계로 된 1년짜리 과정이었는데, 편의상 단계로 설명을 하자면 1단계를 이수해야 2단계를, 2단계를 이수해야 3단계를 수강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도 나름 번역 8년 차라 그런 제약이 못내 불만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큰 기대 없이 1단계에 등록했다가 내가 그동안 해왔던 산업번역과 출판번역이 많이 다름을 깨달았다. 내 생각으로 전자는 자본이 뒷받침되는 산업의 일이라면, 후자는 장인정신이 필요한 학문의 일이었다. 마음이 쪼그라들기도 하고,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 좌절하기도 하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며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수강했다.
3단계 강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줌(Zoom)으로 진행되는 화상 수업의 형식이었다. 사회적 고립 상태의 내가 온라인으로 나마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다니 떨림과 기대가 동시에 밀려왔다. 코로나 기간에 각자 집에서 원하는 음식을 옆에 두고 친구들과 줌 파티를 하는 사람들을 인스타그램에서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저게 재밌을까 하는 의심을 가졌었다. 화상 회의라면 몰라도 친구들과의 온라인 파티가 만족감을 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내가 인간관계가 너무 빈약한 탓이었는지, 번역 공부가 좋았던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알 수는 없으나 화상으로도 수업이 재.밌.었.다. 처음에는 화면에 내 얼굴이 나오고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너무 어색했지만, 한 주씩 거듭하면서 화면에 비치는 내 모습 따위는 신경 쓸 거리가 아니었다.
같은 목적을 지닌 사람들의 공동체에 속해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그 몇 개월은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즐거움에 취했던 나는 모든 게 끝나버린 것이 아쉬워 몇몇 동기들과 줌 모임을 결성했다. 아쉬운 마음에 시작된 그 모임은 혼자의 세계에 살던 내게 함께함의 맛을 보여 주었다. 그간의 소회를 나누기 위한 우리의 첫 모임은 각자 고전 단편을 번역해서 전자책으로 출간하기 위한 스터디 모임으로 바뀌었다가 공동번역을 위한 협업의 장이 되었다. 그때가 올 1월이었다.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하고, 그 작가의 단편들 가운데 원하는 작품을 각자 골라 번역 단편집을 출간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이참에 '학문의 일'을 시도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