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나는 매사에 ‘그게 될까' 내지는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부터 하고 있었고,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내가 도전정신도 있고 문제해결도 꽤 즐기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왜 매사에 생각만 거듭하며 행동하기를 주저하며 사소한 문제라도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의아했다. 좀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회적 고립과 불안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차고 넘쳤다. 사회적 고립이 불안의 원인이자 증상이라고 했다.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불안이 심해지지만, 불안해서 스스로 고립시키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You don't want to go to the restroom with us, do you?"
내가 뭘 들은 거지?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나올 법한 이 말을 들은 건 유학생활을 막 시작한 20대 초반이었고, 이 말을 한 건 도서관에서 함께 아르바이트하던 여학생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가 일본의 어느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터라 일본인 여학생들이 꽤 많았는데, 도서관 아르바이트 자리도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었던지 대부분 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내 학창 시절 반 아이들이 화장실이나 매점에 몰려다녔던 것처럼 이 여대생들도 화장실이나 휴게실에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녔다. 그 여학생도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가는 게 미안해서 그렇게 말을 했을 테지만, 나는 초등 교실에서든, 대학 도서관에서든 무리 지어 다니는 일이 별로 없었고,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는 거지 왜들 그렇게 몰려다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중2 때 라디오에 눈을 뜬 후로 등하굣길에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보다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뭔가를 듣는 것을 더 즐겼고, 사회에 나와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늘 갈구했다.
"넌 우리랑 같이 화장실 안 갈 거지?"는 그녀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반영돼 나온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앞서 언급된 그 깊은 외로움이 매우 낯설 정도로 외로움을 모른 채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만 내향적으로 태어났고, 번역가가 되기 원했으며 조직생활이 안 맞아 프리랜서가 되었고,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가족 외에는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은 결과가 사회적 고립 상태임을 각성하고 나니 다소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의 불안이 사회적 고립과 상관관계가 있다니 말이다.
불안을 달고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저 사납게 생긴 개가 목줄을 끊고 우리 봄이에게 달려들면 어떡하지' 하는 사소한 불안부터 한 번의 실패에도 나는 영영 안 될지 모른다는 묵직한 불안까지 늘 시달리다 보면 일상이 야금야금 혹은 뭉텅뭉텅 갉아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각성이 내 안에서 문제의식을 일깨웠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