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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번역가 Jun 01. 2023

아름다움의 한가운데서 깊은 외로움을 느끼다

추수감사절 연휴에 남편이 한국에 가고 없는 틈에 강아지 봄이와 단 둘이 캠핑을 나섰다. 캠퍼를 뒤에 달고 일고여덟 시간을 열심히 달려 도착한 그곳은 입구부터 아름다웠다. 소수의 캠핑 생활자에게만 허락된 듯 입구에는 캠프장 안내원 한 명과 두서너 대의 캠퍼가 체크인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을 한 뒤 무성한 소나무숲 사이로 깨끗하게 닦인 포장도로를 따라 우리 사이트로 가는 길에는 감탄이 절로 났다. 이런 캠프장도 있구나. 가는 길에 산책하는 사람 한두 명 정도만 보일 뿐 인적도 드물었다. 미국 캠프장이 비교적 한적한 편이기는 해도 보통 옆 사이트의 사람들이 보이거나 소리가 들리거나 하는데 이 캠프장은 사이트 간격도 넓어 옆에 아무도 없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캠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적응하는 중이라 장비 셋업, 그것도 혼자 하느라 힘들었지만 캠프장이 너무 맘에 들어 그런 번거로운 일이 드물게 귀찮지 않았다. 캠퍼의 수평을 맞추고, 수도와 전기를 연결하고, 밖에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고, 모닥불용으로 화력이 좋은 솔방울도 주웠다. 먼 길 오느라 수고한 봄이를 데리고 산책도 했다. 산책 중에 매우 간간이 마주치는 사람들만이 봄이와 내가 이곳을 전세 낸 게 아니란 사실을 일깨워줄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다는 점이 다르고 조용하고 한적함의 정도가 좀 더 깊을 뿐 생활은 집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원래 집에서 하던 대로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고, 밥 먹고, 일하고, 넷플릭스 보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을 며칠 보내다가 사오일쯤 되던 날 밤에 '내가 지금 여기에서 혼자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는 깊은 외로움이 몰려왔다.

지금 사는 곳도 조용한 곳이라 이웃의 차가 드나드는 소리만 들릴 뿐 말소리가 나면 귀를 쫑긋하게 될 정도다. 그런 환경에서 며칠을 혼자 지내도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런지 외롭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데, 이번에는 외로움이 느껴졌고 그 강도는 전에 경험하지 못한 정도였다. 도시 외곽의 한적한 동네에서 나와 한층 더 한적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있자니 유체이탈을 한 듯 사회적으로 고립된 내가 보였다. 자발적으로 들어간 무인도에 갇힌 사람 같았다. 그 사람의 외로움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회적 고립감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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