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뒀더라?' 사회보장카드의 사본을 보내달라는 이메일을 확인하고는 그 카드가 있을 만한 곳을 떠올려보았다. 여권을 보관하는 서랍에 있겠지. 명함 크기의 종이 카드라서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어 그 서랍을 꼼꼼히 뒤졌지만, 거기에 없었다. 그다음으로 청구서 따위를 넣어두는 서랍을 뒤져봤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팬데믹 때문에 카드 재발급에 빨라도 이삼 주는 족히 걸릴 테고, 그러면 거래가 무산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지난 삼사 개월 동안 별별 서류를 다 달라는 요청에도 어떻게든 제출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 작은 카드 하나에 무너지나 싶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여기 없으면 분실이 확실하다는 생각으로 세 번째로 있을 만한 곳을 뒤졌다. 지난 10년간 방치해 둔 서류 더미였다. 거기 왜 있을까 싶었지만, 벼룩 잡듯이 온 집안을 다 뒤져야 할 판이니 뭐라도 해야 했다. 먼지가 펄펄 날리는 서류를 하나씩 넘겨가며 두 시간여를 뒤진 끝에 어느 편지 봉투 안에 납작하게 숨어 있는 그 작은 카드를 발견했다. 안도감이 차오르며 불안감이 사그라들었지만, 언제든 이런 일이 또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몇 개월째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여행이나 가자고 했다. 우리가 할 일은 다했으니 결과를 기다리자고 했다. 은행에서 원래는 한 달 정도면 끝나는 일이었으나 팬데믹 탓에 두 달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그런데 두 달이 다 되어 가던 때에 판매자도, 구매자도, 그들의 에이전트들도, 은행도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생겨 거래가 무산될 뻔하다가 서류 심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아찔한 경험에 불안도가 한층 높아진 상태로 두 달여가 더 흘렀다. 그러니까 총 네 달가량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내던 중이었다. 어서 승인이 되기만을 기다리던 터라 여행도 썩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여행을 가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또 은행에서 보낸 이메일이 있었다. 승인 이메일이어도 모자랄 판에 또 다른 서류를 보내달라니 짜증이 확 치밀었지만, 내 머리는 이미 그 서류가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었다. 호텔 방에 도착해 보니 창문 너머 저 멀리에 아름다운 로키 산맥이 보였다. 여행을 오지 않았더라면 요청한 서류를 재깍 보내줬을 거란 생각에 그 장관마저도 원망스러웠다. 그 서류가 집에 있는 게 분명했고 집에 돌아가서 보내주면 됐지만, 요청한 서류를 보내지 않은 채 여행을 즐길 자신이 없었다. 이번에는 내 이메일 계정들과 구글 드라이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밤이 늦도록 몇 시간을 뒤졌다.
크고 작은 고비를 넘기며 두 달이면 될 거란 말을 듣고 시작했던 일이 네 달이나 걸렸지만, 드디어 내일이면 거래가 완료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오늘은 오전에 송금하고 공항에 가면 됐고, 내일은 멀리 떨어진 그 도시의 어느 사무실에서 각종 서류에 서명하면 끝이었다. 남들은 그 정도 시점이었다면 성취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을까. 은행에 간 나는 행여나 실수로 송금 오류가 발생해 내일 거래를 마무리할 수 없을까 봐 불안했다. 얼마나 긴장되던지 계좌번호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확인하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그 사무실을 나서는 길에는 나도 기뻤다. 드디어 해냈구나 싶어 스스로 대견했다. 내게 주는 선물로 실크 스카프도 한 개 샀다. 쇼핑몰을 한창 돌아다닐 때는 마냥 즐겁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일이 잘한 일일까?' 우여곡절을 겪고 성취를 이룬 끝에 새로운 불안이 일다니, 내 안에 불안이 끊이질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아마 당연하겠지만 크고 작은 인생의 성취 뒤에는 자신감과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차 올랐었는데, 이번에는 왜 불안이 앞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