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데스리가
잠시 주춤했다. 지난 시즌엔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만이 나 홀로 분데스리거였다. 분데스리가 열기가 식는 듯했다. 2015-16시즌엔 5명의 코리안 분데스리거(구자철, 김진수, 박주호, 지동원, 홍정호)가 활약하기도 했으나 구자철, 지동원을 제외한 3명이 모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사이 지동원이 임대(다름슈타트·분데스리가 2)를 마치고 분데스리가로 다시 돌아왔다. 1부 리그엔 구자철과 지동원 여전히 둘 뿐이지만, 분데스리가 2로 새 바람이 불어왔다. 한국 선수들의 '무대'가 달라진 것이다. 월드컵 흐름을 타고 홀슈타인 킬로 이적한 이재성을 필두로 황희찬은 함부르크 SV, 이청용은 Vfl 보쿰으로 새 둥지를 틀었다. 첫 스타트를 잘 끊은 이재성(8경기 1골 4어시스트) 덕분에 황희찬과 이청용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둘의 목표는 분명하다. 분데스리거, 나아가 '비상(飛上)'이다.
최근까지 두 선수 모두 크고 작은 시련을 맛봤다. 이청용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엔트리 선발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잉글랜드 무대서 활약하며 214경기(잉글랜드 2부 챔피언십 포함)에 출전해 18골 34도움을 기록한 베테랑급 프리미어리거였다. 그러나 2015년 볼턴 원더러스에서 크리스털 팰리스로 이적한 뒤 4시즌 동안 소화한 경기는 50경기(컵 대회 포함)에 불과했다. 리그 경기 선발 출전은 단 10경기뿐이었다. 교체 출전까지 포함한 리그 4시즌 총 출전 시간을 보면 1068분이다. 풀타임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다면 4년간 약 12경기를 출전한 셈이다. 대기 명단에는 꾸준히 이름을 올렸지만, 절대적인 '출전' 시간이 부족했다.
신태용호 월드컵 예비 엔트리에 뽑혔을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청용의 실전 감각에 의구심을 품었다. 충분히 예견된 반응이었다. 신태용 감독은 이청용의 두 번의 월드컵(2010, 2014) 경험을 높이 샀다. 5월 28일 월드컵을 앞두고 치러진 온두라스 평가전에서 이청용을 우측 미드필더로 선발 기용했다. 이청용 스스로가 논란을 잠재워야 했다. 몸놀림이 나쁘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안정적이었다. 오히려 같은 공격 자원으로 평가받던 이승우에게 시선이 쏠렸다. 안정적이었던 이청용에 비해 이승우는 위협적이고, 빠르며 패기 넘쳤다. 설상가상으로 이청용은 전, 후반 두 차례 볼 경합 과정에서 엉덩이 쪽에 경미한 부상을 입어 후반 51분에 교체 아웃 됐다. 이후 보스니아 전에 결장하며 이청용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신 감독은 이청용 대신 이승우와 문선민을 발탁했다. 온두라스전을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이청용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황희찬은 아시안 게임을 치르는 동안 성장통을 겪었다. 황희찬은 나상호, 이승우, 손흥민, 황의조와 함께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김학범호의 공격진을 이끌었다. 우즈베크와의 8강전 페널티킥 골과 일본과의 결승전서 귀중한 헤딩골을 터뜨리며 우승에 일조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진했다'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아시안 게임 내내 적극성은 돋보였지만, 볼 컨트롤이 다소 투박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조별리그에서 아쉬웠다. 황희찬은 첫 경기인 바레인전서 후반 교체 투입되며 프리킥 골을 기록했으나 말레이시아 전엔 침묵했다. 전반전 한차례 김정민과 2:1 월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좋은 찬스를 만들었지만 결정짓지 못했다. 이날 대한민국은 약체 말레이시아에 덜미를 잡히며 2:1로 석패했다.
황희찬의 태도 논란이 있었다. 말레이시아전 직후였다. 경기 종료 뒤엔 양 팀 선수들이 센터서클서 악수를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승패를 떠나 서로 악수를 나누며 예의를 표시하기 위함이다. 황희찬은 악수 교환을 거부한 채 곧바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16강으로 가는 중요한 경기였기에 패배가 더욱 뼈아팠을 것이다. 공격수로서 득점을 하지 못한 개인적인 실망감도 컸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분명히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키르기스스탄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상대방을 조롱하는 의미가 섞인 '사포'를 시도했고, 우즈베크와의 8강전에선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상의 탈의'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축구 경기 중 자신감을 드러내는 '사포'도 '상의 탈의' 세리머니도 나올 수 있다. 다만, 시기가 적절치 못했다는 비난이 많았다. 대회 내내 논란을 몰고 다녔던 황희찬은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한 성장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적 소식을 먼저 전한 건 황희찬이었다. 이적시장 마지막 날인 8월 31일, 함부르크가 황희찬의 임대 영입을 알렸다. 그는 아시안게임 대표로 차출돼 인도네시아에서 9월 1일 일본과의 결승전을 준비 중이었다. 함부르크는 황희찬 영입에 앞서 자이로 삼페리오(26)를 라스 팔마스(스페인 2부 프리메라리가)에서 영입했다. 그러나 리그 개막 2경기 만에 무릎 부상을 당하며 대체 자원으로 황희찬을 급하게 영입했다. 황희찬은 지난 시즌까지 RB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1부 분데스리가) 소속으로 통산 37경기를 소화하며 13골 4도움을 기록했다.
뒤이어 이청용이 자유계약 선수(FA) 신분으로 보훔 품에 안겼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한차례 이적을 모색했지만, 크리스털 팰리스는 부상자가 많다는 이유로 이청용의 이적을 막았다. 올여름 볼턴 원더러스 이적을 계획했다. 그러나 한국 피파랭킹이 50위 밖으로 밀려나 워크퍼밋이 해결되지 않았다. 볼턴 이적마저 불발됐다. 다시 이적시장에 나와야 했다. 반전이 필요했다. 크리스털 팰리스와 계약이 만료되었던 이청용은 가까스로 보훔과 계약에 성공하며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무대에서의 도전이지만 마음만은 홀가분하다.이청용은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탈출'했고, 황희찬은 '병역 문제'를 해결하며 큰 제한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청용의 상황이 여의치만은 않았다. 잉글랜드 잔류를 원했지만 여러 팀들이 이미 스쿼드 보강을 마친 상태였다.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터키를 비롯해 유럽 내 여러 구단을 물색했다. 러시아 월드컵 기간에는 한국에 머무르며 K리그 복귀를 고려하기도 했다. 막바지 보훔이 관심을 보이며 이청용이 바라던 유럽 내 이적이 이뤄졌다. 황희찬은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하며 군문제에서 자유로워졌다. 그의 나이는 아직 22세에 불과하다. 발전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있다. 러시아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을 통해 성인 무대 경험도 쌓았다. 일찌감치 해외로 진출했던 황희찬은 새로운 독일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일만 남았다.
Vfl 보훔과 함부르크 SV, 두 팀이 한국 선수를 영입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Vfl 보훔은 1992년 '아시아의 삼손' 김주성을 부산 대우로얄즈(현 부산아이파크)로부터임대 영입한 적이 있다. 김주성은 이적 첫 시즌(1992-93)부터 보훔이 16위를 기록하며 2부 리그 강등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듬해 1993-94시즌 10월엔 '분데스리가 2부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팀의 2부 리그 우승과 승격을 도왔다. 1992년 7월부터 2년간 보훔에서 활약한 뒤 친정팀인 부산 대우로얄즈로 복귀했다. 김주성은 분데스리가 통산 34경기에 출전해 4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함부르크는 손흥민의 분데스리가 친정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손흥민은 2008년, FC 서울 유스팀인 동북고 재학 중에 함부르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대한 축구 협회의 '우수 선수 국외 유학프로그램'에 선발돼 함부르크 유스팀에서 유학했으며, 이듬해 11월에 함부르크 유스 U-17팀에 정식 입단했다. 이후 2010년, 함부르크에서 프로로 데뷔한 손흥민은 함부르크 선수로 78경기에 출전해 20골 3도움을 기록했다. 손흥민은 함부르크에서의 활약으로 2013년 7월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나아가 2015년 8월, 현재 소속팀인 영국의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했다. 함부르크는 사실상 지금의 손흥민이 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준 팀이다.
보훔은 지난 2017-18 시즌을 6위로 마감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시즌 초반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3번의 감독 교체가 있었다. 3부 리그(Sportfreunde Lotte)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던 이스마일 아탈란(38) 감독이 지난여름 첫 지휘봉을 잡았지만, 9라운드까지 3승 1무 5패를 거두며 선임된지 8주 만에 경질이 됐다. 4부를 거쳐 이제 막 3부 리그에서 올라온 감독에겐 선수단을 파악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중앙 공격수' 활용에 실패했다. 원톱부터 쓰리톱까지 여러 공격 전술을 실험했지만 결과는 미미했다. 2016-17시즌 8골 8도움으로 활약했던 공격수 요하네스 부어츠(현 다름슈타트)와 새로 영입했던 공격수 루카스 힌터세어가 공존하지 못했다. 9라운드까지 디아만타코스(현 St. 장크트 파울리)를 비롯해 세 명의 중앙 공격수진에서 나온 골은 3골이 전부였다. 빈공에 시달렸던 보훔은 고정적인 선발 포메이션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보훔의 U-19 감독 옌스 라지예프스키에게 다음 지휘봉을 넘겨줘야만 했다.
이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라지예프스키 감독 대행으로 치른 7경기에서 2승 4무 1패를 거두며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이후 내리 4패를 기록해 또 한 번의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그나마 이 기간 동안 공격형 미드필더 케빈 슈퇴거(현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윙 로비 크루제, 중앙 공격수로서 힌터세어 활용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23 라운드부터 현재 보훔 감독인 로빈 두트가 새로 선임되며 보훔의 반등이 시작됐다. 전반기 내내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보훔은 두트 감독 투입 이후 7승 4무 2패를 기록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변화는 '고정된 선발 포메이션'으로부터 시작됐다. 시즌 초, 감독 교체로 경기마다 상이했던 포메이션은 팀의 조직력 하락을 불러왔다. 두트 감독은 확고했다. 포메이션과 선발 선수를 고정시켰다. 원톱 힌터세어를 중심으로 공격형 미드필더엔 케빈 슈퇴거, 좌·우측 윙 로비 크루제와 시드니 샘과 함께 4-2-3-1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14골 3도움을 올린 힌터세어가 돋보였다. 후반기 보훔의 확실한 원톱으로 발돋움했다. 후반기 27R 카이저슬라우테른 전 헤트트릭과 더불어 7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힌터세어 활약 이면에는 슈퇴거와 크루제 콤비가 있었다. 빠르고 창의적이었던 슈퇴거는 보훔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크루제 또한 상대 뒷공간을 영리하게 파고들어 직접 해결하거나 힌터세어에게 연결하는 모습이 많았다. 후반기 공격진들이 두트 감독 전술에 녹아들면서 지난 시즌을 6위로 마감할 수 있었다.
함부르크는 지난 2017-18시즌 17위를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창설 이후 55년 만에 첫 강등을 당했다. 이로써 홈구장 폴크스파크 슈타디온에 걸려 있는 분데스리가 생존 시계가 55년에서 다시 0으로 돌아갔다. 후반기 14R부턴 15경기 연속 단 1승도 거두지 못할 만큼 경기력이 좋지 못했다. 시즌 막바지였던 29라운드부터 남은 6경기 중 4승을 거둬 잔류 희망의 불씨를 살렸지만 역부족이었다.
함부르크 또한 지난 시즌 3명의 감독 교체가 있었다. 2016-17 시즌부터 지휘봉을 잡았던 마르쿠스 기스돌은 당시에도 강등권이었던 함부르크를 한차례 구해낸 전력이 있다. 지난 시즌엔 19R까지 단 4경기에서만 승리를 거두며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기스돌 감독은 시즌 초반 생긴 '공격진 부재'를 이겨내지 못했다. 16-17 시즌 5골 7도움으로 활약했던 니콜라이 뮬러(현 프랑크푸르트)가 개막전에서 부상당하며 일찌감치 팀 전력에서 이탈했다. '에이스' 루이스 홀트비마저 부상으로 반 시즌 가량 출전할 수 없었고, 필립 코스티치 또한 근육 파열로 전반 4경기를 쉬었다. 빈자리를 채웠어야 할 공격수들도 부진했다. 보비 우드(현 하노버)는 전반기 단 1골을 기록하며 중앙 공격수 답지 못한 결정력을 보여줬다. 확실한 찬스에서 쉽게 득점하지 못하는 모습이 많았다. 안드레 한(현 아우크스부르크) 역시 전반기 2골을 포함해 시즌 총 3골에 그쳤다. 후반기 부상에서 복귀한 홀트비가 보여준 활약(8경기 5골)때문에 전반기 그의 부재가 더욱 아쉬움으로 남았다.
기스돌 감독 경질 이후 지휘봉을 잡은 건 베언트 홀러바흐 감독이었다. 홀러바흐 감독은 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함부르크의 수비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2014-15시즌 4부 리그였던 뷔어츠부르크 키커스를 3년 만에 2부 리그로 승격시키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강등권에 있는 팀을 구출해 내기엔 '1부 리그의 벽'이 높았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왈라스(현 하노버96)와 기데온 융을 홀딩형 미드필더로 배치하고, 5백을 구사하며 강도 높은 수비 전략으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바이에른, 도르트문트, 라이프치히와 레버쿠젠까지 강팀과 대결에서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함부르크는 20R부터 7경기 동안 3무 4패를 기록하며 또 한 번의 감독 교체를 해야만 했다.
마지막 소방수로 함부르크SV U-17팀과 2군 감독을 지낸 크리스티안 티츠 감독이 투입됐다. 함부르크 뿌리 팀을 거친 티츠 감독은 유스 자원들을 적극 활용했다. 4-1-4-1 포메이션을 활용했던 티츠 감독은 홀딩 미드필더에 마티 슈타인만(23)을 2군에서 콜업해 시즌 마지막까지 기용했고, 28R 슈투트가르트 전엔 18살의 신예 슈테판 암브로시어스를 센터백으로 선발 투입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인 유망주 서영재(현 뒤스부르크)와 더불어 바실리에 얀지치(18) 요슈아 바그노만(17)까지 벤치 멤버로 두며 '강등권 탈출 압박' 속에서도 과감하게 유스 자원을 실험했다.
티츠 감독 투입에도 강등은 피할 수 없었다. 부상에서 돌아온 홀트비가 8경기 5골을 넣으며 활약했지만 결국 볼프스부르크에 승점 2점을 뒤져 17위로 강등을 확정 지었다. 함부르크 구단 역사상 최초의 강등이었다. 뼈아팠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작게나마 '유스 자원 활용' 이라는 수확을 얻은 게 위안이 됐다. 공격수 타츠야 이토(21)와 얀-피테 아프(17), 미드필더 마티 슈타인만(23), 바실리에 얀지치, 요슈아 바그노만과 수비수 암브로시어스(18)라는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티츠 감독은 선수단 재편성도 고려해야만 했다. 강등 확정과 동시에 주전급 선수들의 팀 이탈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안드레 한(아우크르부르크)과 필립 코스티치(프랑크푸르트), 발트슈미트(SC프라이부르크), 보비 우드(하노버 96, 임대)까지 공격진의 대거 이탈이 있었지만 고토쿠 사카이, 더글라스 산토스, 아론 헌트, 루이스 홀트비 등 나머지 중심 선수들의 이탈을 막으며 2부 리그에서의 새 시즌을 준비할 수 있었다.
지난 16일, 이청용은 리그 5R 잉골슈타트전 후반 76분에 투입되며 독일에서의 첫 데뷔 무대를 가졌다. 6R 홀슈타인 킬과의 경기에 결장하며 이재성과의 첫 맞대결이 성사되지 않았지만, 7R 디나모 드레스덴전 후반전 투입되며 45분을 소화했다. 8R 하이덴하임전에선 90분 풀타임을 뛰었지만 팀은 아쉽게 3:2로 패배했다.
보훔에서의 전망은 나쁘지 않다. 다만 이청용은 이적시장 종료 후 추가로 영입(자유계약) 된 선수였기 때문에 이번 시즌 보훔의 스쿼드에 미리 계획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므로 이청용의 활약 여부에 따라 출전 시간을 점차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청용에겐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보훔에서도 주전 경쟁은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 시즌 좌·우측 윙으로 활약한 시드니 샘과 로비 크루제, 바이에른 뮌헨 2군에서 새로 영입된 밀로스 판토비치와 하노버에서 영입된 세바스티안 마이어가 이청용의 주전 경쟁자들이다. 그중 판토비치는 지난 4R 파더보른전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해 일찌감치 시즌 아웃이 됐다. 지난 시즌 좌, 우측 윙어 자리에 샘과 크루즈가 서로 스위칭 돼 출전하는 모습이 많았다. 고정된 포지션이 없는 만큼 이청용이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우측 윙어 자리에 충분히 선발로도 중용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또한 이청용은 지난 5R 잉골슈타드와의 경기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투입돼 플레이메이커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황희찬은 지난 15일, 4R 하이덴하임 전에서 스트라이커 자리에 선발로 출전하며 독일 무대에 데뷔했다. 자신감이 넘쳤다. 데뷔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비수를 상대로 저돌적인 돌파를 수차례 시도했다. 황희찬의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퍼스트 터치 또한 매끄러웠다. 전반 25분 동료의 전진 패스를 이어받은 황희찬은 볼의 흐름을 그대로 살리는 트래핑 이후 슈팅까지 가져가는 기술적인 모습을 보였다.
예열을 마친 황희찬에게 데뷔 골은 시간문제였다. 5R 드레스덴 전 후반 68분, 그림 같은 중거리 슛을 성공시키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팀 동료 오렐 망갈라가 상대 수비와 볼 경합을 펼치다 흘러나온 볼을 황희찬이 오른발로 감아 차며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6R에선 얀 레겐스부르크를 상대로 90분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팀이 무너지며 5:0으로 대패했다. 7R 그로이터 퓌르트 전에는 후반 62분 투입돼 결정적인 찬스를 두, 세 차례 만들었다. 후반 88분에는 상대 페널티 박스까지 수비수 4명을 제치며 위협적인 돌파를 시도했다. 지난 30일 펼쳐진 8R St 장크트 파울리 전에는 65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아직 1골에 그치고 있지만, 황희찬은 꾸준히 '그라운드'를 밟고 있다. 스트라이커부터 좌, 우측 윙을 가리지 않고 투입되고 있다. 경쟁자에 타츠야 이토, 2골을 기록한 칼리드 나라이가 있지만 황희찬의 전망을 밝다. 공격 상황에서 빠른 스피드로 공을 운반하고, 수비진을 휘저을 수 있는 돌파력은 지난 함부르크의 5경기에서 이미 검증 되었다. 돌파 후 세밀하게 마무리까지 짓는 능력을 더 가다듬는다면, 향후 함부르크 공격을 책임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청용과 황희찬 모두 새로운 독일 무대에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이청용은 다시금 '그라운드'를 밟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다. 황희찬 또한 전 소속팀(RB 잘츠부르크)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출전 시간을 부여받지 못 했던 게 사실이지만 함부르크 이적 후엔 결장 없이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시련이 있었지만, 이제 0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청용은 다시 피치를 밟기 위해 2부 리그로 보금자리를 옮겼고, 황희찬은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독일 무대 도전을 선택했다. 소속팀 보훔에서 활약한다면 분데스리가 1부 리그는 물론, 국가대표팀에서의 이청용을 머지않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안 게임을 통해 성장통의 겪은 황희찬은 함부르크에서의 활약으로 지난 실수의 논란을 어느 정도 잠재웠다. 그러나 실수는 실수이고, 실력은 실력이다. 분명 별개의 개념이다. 발전하는 기량과 함께 지난 실수를 자양분 삼아 더욱 성숙하고,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다행인 것은 둘 모두 소속팀에서의 출발이 좋다. 그들이 꿈꾸는 '비상(飛上)'이 그리 멀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