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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Oct 15. 2022

서툰 안부

살아남은 예술가에게


미술대학에서 동고동락하던 동문을 졸업 이후에 만나게 되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다. 누군가의 결혼식장에서, 혹은 누군가의 전시회 오프닝에서. 미술대학 졸업자의 구십구 할이 작업을 포기하고, 그렇게 살아남은 일 할 중에서 다시 구십구 할이 결국 작업을 포기하게 되는 현실 속에서, 예술가의 삶을 어떻게든 이어나가는 이들 사이에서는 재난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끼리 공유하는 그것과도 같은 유대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재수를 한 덕분에 동갑내기인 임희조 작가를 한 학번 위의 선배로 만나게 되었는데, 내가 학부시절 내내 작가로서의 삶에 아무런 확신도 하지 못한 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동안 그녀는 인사동에서 근사한 개인전을 열었고, 여러 전시와 공모 이력을 늘려가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작가로서의 경력을 하나둘 쌓아가는 모습은 무척 멋있어 보였고, 그것은 한 편으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러던 중 갑자기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전시 소식이 끊겼다가, 근 몇 년 만에 개인전 소식을 듣게 된 것이 작년이었다. 서울 종로구 창성동의 아담한 한옥 갤러리에서 열렸던 그녀의 개인전은, “내 작업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일이 처음이어서,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라며 작가 스스로 고백했을 정도로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래서인지 컴백 후(?) 두 번째 개인전을 앞둔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난 작품들 속 소녀와 풍경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생기가 넘쳐 보였고, 작업의 고단함 보다는 그 과정에서 작가가 느꼈을 창작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것은, 그 일이 더이상 개인적인 영역에 머물 수 없음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 정의하는 ‘직업’이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결국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고, 그것은 외부의 무수한 평가 속에서 납득 가능하고 타당한 책임을 담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직업인으로서의 예술가의 딜레마는 깊어져만 간다.

임희조 작가가 보냈던 그 몇 년간의 직업적 공백은 거기에 대한 불안과 질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 그 유예의 기간은 그러한 딜레마의 영역 바깥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찾는 일에 대한 짧고도 긴 고단한 여행이었던것 같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작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 중 일부를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능숙해지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의 일이기에 작가는 그것을 ‘서툰 행복’이라고 정의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서툴지만 단단하면서도 연한 마음의 여정에서 비롯된 작업이기에, 거기서 느껴지는 첫사랑과도 같은 풋풋함과 설렘의 느낌이 보는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임희조의 작업에서 결과적으로 무엇을 얻어가기를 바라냐”는, 인터뷰라면 응당 언급 해야 마땅한 재미없고 진부한 질문에 그녀는 무척 당황하며 한참이나 고민을 하더니, “보는 이들 역시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대답을 하고선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은 아직도 이런 종류의 질문이 오글거려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잠을 자다가도 누가 시키기만 하면 벌떡 일어나서 작가노트니 가능성이니 꿈이니 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을 잘도 줄줄 외는 나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서는 그 서툰 대답이 퍽 마음에 들었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행복을 바란다는 그 어색하지만 친절한 대답이, 자신이 느낀 맑은 햇살같은 감정을 선뜻 나누어주고 싶다는 그 대답이 마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의 서툴지만, 그 어느 순간보다 진실한 그것과도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임희조 작가와 나는 ‘살아남자’라는 살벌한 내용의 이야기를 종종 주고받는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작가라는 존재로 끝까지 머물자, 버티자는 얘기다. 그렇기에 작업을 통해 세상을 논하던, 소소한 행복을 논하던 결국 작업은 곧 작가의 존재론적 영역의 자아다. 그래서 임희조 작가에게 글을 부탁 받았을 때, 겉으로는 흔쾌히 수락 했지만 내심 자신이 없었다. 나의 섣부른 판단과 생각이 되려 작가가 세상에 애써 내어놓은 결과물들에 대한 오해나 부담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함께 ‘살아남아’ 온 동료작가에게 글을 부탁하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고마웠고, 덕분에 부족한 글이나마 선뜻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제 곧 포장이 되어 전시장으로 향할 그림들로 가득 찬 작가의 작업실을 떠나기 직전, 그녀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일은 무섭고, 여전히 모든게 서툴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적어도 그녀는 서툰 마음을 다루는 데에는 더없이 능숙해진 것 같다. 임희조 작가의 서툰 행복을 찾아가는 서툰 여정과, 작가로서의 ‘살아남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친구이자 동료작가인 김선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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