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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 Apr 15. 2019

나이가 들어도 말해보고픈 '나'라는 사람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순천 할머니들






얘, 너 어릴적에 돌아가신 네 할아버지가 나를 어찌나 괴롭게 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있다가 문득 슬플때면, 찔레꽃 피고 지이는~ 남쪽 나라 내 고향~ 하면서, 찔레꽃이나 이렇게 부르면서 이제나 저제나 세월이 어떻게 가나 했다.



우리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찔레꽃입니다. 우리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6.25때 북쪽에서 왔습니다. 할머니가 한 음식 중 가장 맛있는 건 이북음식인 가자미 식혜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손바닥만한 후라이팬에 숟가락으로 달달달 부쳐주셨던 계란후라이입니다. 


우리 할머니는 식당을 하면서 술을 많이 드시고 병환을 앓았던 할아버지와 네명의 아들 딸들을 챙겼습니다. 우리 할머니 왼쪽 눈썹에는 큼지막한 점이 있었는데, 점쟁이는 그게 복점이라고 늘그막까지 돈 있고 사랑받을 팔자라고 해서 할머니가 늘 자랑했습니다. 


할머니는 서울 아파트에 살면서 미용실에 다녀온 날이면 아줌마는 그 연세에도 어쩜 그렇게 주름도 없냐는 말을 들었다면서 어린애처럼 좋아하곤 했습니다. 할머니 생신이 되면 우리 손주들은 손편지를 썼습니다. 아무리 비싼 선물을 해드려도 할머니는 손편지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늘 가족들앞에서 큰 소리로 편지를 읽었습니다. 우리는 할머니를 기쁘게 해주려고 나이가 들어서도 손편지를 썼습니다. 마지막 말은 항상 ‘할머니, 사랑해요. 오래오래 사세요!’로 맺었습니다. 


특히나 할머니의 손을 기억합니다. 두 손이 어찌나 통통하고 맨들맨들한지 한번 잡으면 도무지 놓을 수 없었습니다. 손가락 끝은 뭉툭하고 더러 굳은 살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마디가 아닌 곳에 큼지막한 주름이 가득한데도 이상하게도 아가 손보다 더 부드러웠습니다. 손톱은 깔끔한 그 성격대로 늘 단정하게 깎여 있었습니다. 잘 빚어낸 쫄깃한 찹쌀떡같은 그 손은 움켜쥘 때마다 적당히 온기가 있고 절대 식지 않았습니다. 그 손이 스치면 모든 음식은 감칠맛이 살아나고 모든 등허리는 따뜻해졌지요.


할머니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맬 적에 저는 그 귀중한 손에 제멋대로 자란 손톱을 깎고 보드라운 로션을 바르며 언제까지로 그 손을 만지작거렸습니다. 간간이 정신을 차리면 우리 할머니는 '우리 손주 놈이 내 손톱을 깎았다'며 몇 번이고 자랑을 했습니다.


우리는 할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고 할머니는 여든 일곱까지 사셨습니다. 할머니가 종종 “나는 복받은 노인네다.”하고 말하며 웃으면, 발간 볼이 동그랗게 솟아 예뻤습니다. 


꼭 우리 할머니같은 순천 할머니들이 시를 썼습니다. 그림도 그렸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감정은 변하지 않고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자신을 잊고 살았다면 되찾고 싶어합니다. 몇 살이 되었든 보여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시와 그림으로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덤덤한 이야기들이 마음을 울립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선 속에, 줄 속에 애닳게 보냈던 할머니들의 인생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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