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사로 알아보는 인생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추천
우린 마음의 감기를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성인 4명중 1명은 평생의 한번 이상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겪는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 별로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못한 ‘정신병원’에 상담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특별하고 어떤 특정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흔히 존재하며, 또 그 존재가 나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기사였다.
오늘 내가 소개하고 싶은 드라마는 '괜찮아 사랑이야’이다.
개인적으로 방영할 때 본 드라마가 아니라, 누군가의 추천으로 우연히 접하게 된 드라마였는데, 나의 인생드라마 세손가락에 들만큼 좋아하게 된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정신질환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트라우마들을 하나 둘씩 가지고 있는 나 혹은 우리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조그만 상처가 나거나, 감기라도 걸리면 병원에 빨리 가거나 응급처치를 신속하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마음의 병에 대해서는 병원을 찾기보다는 꾹 참는다 거나 말하지 않고 견뎌내려고 한다.
하지만 몸의 건강만큼이나 중요한 건 마음의 건강인데, 우리는 마음의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을 자꾸 무시한다. 마음은 위험하다고 소리치고 있는데 말이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리는 정신의 건강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자세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감기를 낫게 하는 하나의 묘약을 선사한다.
캐릭터 분석들 : 너무나 매력적인, 그러나 너무나 ‘우리’ 같은
여주인공 지해수(공효진)의 캐릭터가 나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매력적이고 통통 튄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정신과의사, 말로만 들으면 정신과 의사는 우리에게 마치 ‘마음의 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있고, 관계 속에서도 상처받지 않는 온전한 사람일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왜? 의사니까! 그것도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하지만, 지해수는 그러한 착각을 완전히 깨트리는 인물이기도 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본인 역시 엄마가 바람 피는 장면을 목격하는 그 순간부터 발생된 트라우마(섹스, 관계에 대한 불안증과 공포) 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개인 이었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인 장재열 역시 마찬가지다. 키도 훤칠하고, 젊고, 잘생기고, 돈 많고, 밝고 긍정적이며, 심지어 자신의 친구와 애인이 배신하는 그 순간까지도 쿨하게 떨쳐버리는 모습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 역시 의붓아버지의 폭행으로부터 늘 도망치다가 생긴, ‘화장실’이외에는 잘 수 없는 다소 충격적인 모습부터, 빨강, 노랑, 파랑, 검정, 흰색 등 색깔과 깨끗함에 대한 강박은 물론 결국에는 환시를 보는 ‘정신분열증’까지 앓고 있는 캐릭터다. 언뜻 보면 완벽해 보이는 이 캐릭터에도, 수많은 단점들과 아픔들 그리고 상처가 내재해 있다.
여기에 중심으로 나오는 남주와, 여주를 제외하더라도 나오는 모든 사람들(지해수의 룸메이트들부터, 환자들, 친구들, 가족들에 이르기까지)은 다들 한두가지 이상의 크고 작은 상처들로 뒤덮여있고, 그 상처들을 가리기 위해서, 혹은 드러냄으로써 흔히 말하는 ‘방어기제’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 완벽하지 않고 불완전하며,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상처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이 스토리가 무엇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완벽한 왕자 같은 ‘남자’에게 부족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닌, 모두가 부족하고 또 안타까운, 치명적인 단점을 다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캐릭터들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도 감기를 한번도 안 걸리거나 몸에 작은 상처 하나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과 비정상 : 과연 우리가 그 잣대를 나눌 수 있는가?
정신병과 정신의학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우리가 정상/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얼마나 형편없으며 그 기준으로 얼마나 세상을 차별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었는 지를 따끔히 비판한다. 나 역시도 일단 ‘정신병원’ 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정신병’을 가진 사람은 치료가 불가하거나 ‘미친 사람’ 으로 보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제로 드라마에 나왔던 사람들의 증상들은 어떤 원인 없는 미친 행동이 아닌, 대부분 상처와 아픔을 숨기기 위해서, 혹은 그것이 두려워서 발현하는 증상이었다.
동민 : 암이다. 다리가 잘린 환자다. 그런 환자들이나 장애인들은 동정이나 위로를 받는데. 정신증 환자들은 사람들이 죄다 이상하게 봐. 꼭 못 볼 벌레 보듯이. 큰 스트레스 연타 세 방이면 너 나 할 것없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게 정신증 인데.
지들은 죽어도 안 걸릴 것처럼
우리가 흔히 비정상이라고 단정짓던 사람들의 내면사정을 알지 못한 채, 우린 쉽게 그 사람의 반응을 이상한 행동으로 결정 지어 버린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긴 것이 각기 다르듯, 상처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며, 드라마는 조금씩 우리 안에 편견을 깨나간다.
‘사랑’에서 나오는 고민들에 대한 명쾌한 해답들: 사랑의 속성
나 혹은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흔히 고민하고 궁금해했던 질문들에 대해서, 이 드라마는 때론 명쾌한 해답을 선사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랑하는 관계에서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약자라는 말을 흔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수광 역시 물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수광 : 사랑하는 관계에서 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이 있잖아. 나 이번에는 약자가 되기 싫은 데, 강자가 되는 방법 혹시 알아?
재열 : 더 많이 사랑해서 약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약자가 되는 거야
수광 : 마음의 여유?
재열 : 내가 준 것을 받으려고 하는 조바심. 나는 사랑했으므로 행복하다. 괜찮다. 그게 여유지
우리는 흔히, 사랑에서도 “내가 저 사람이 날 좋아하는 것보다 많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조바심을 갖는 경향이 크다. 나 역시 꼭 연인과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그냥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흔히 느꼈던 감정이었다. 내가 저 사람을 아끼는 만큼, 저 사람이 날 안 아낀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손해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재열은,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준 것을 받으려는 편협하고, 이해 타산적인 감정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더 많이 줘도 상관없다는 더 큰 배려의 감정임을 깨닫게 해준다.
또한 해수가 엄마에 대한 증오심과 엄마는 무조건 자식과 남편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해, 섹스와 키스, 스킨쉽등 ‘남녀간의 관계’에 대한 공포심과 불안장애를 안고 있는데, 그녀는 자신이 평생 진정한 ‘사랑’이란 것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한다. 자신에게 그런 사랑이 올지도 모르겠고, 잠자리나 남녀 간의 사랑하는 모습을 그릴때는 항상 계획해야 하고, 결심해야만 된다고 말하자 재열은 이렇게 답한다.
재열 : 옛날에 어떤 마을에 깊고 깊은 동굴이 하나 있었어.
그 동굴에는 천년 동안 단 한번도 빛이 든 적이 없었지.
천년의 어둠이 쌓은 깊은 동굴. 사람들은 그 어둠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지 지금 너처럼.
사람들은 모두 천년의 어둠을 걷어 내기 위해서는 천년의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어.
(라이터를 키며) 하지만 빛이 드는 건 지금처럼 한 순간이야.
니가 30년동안 사랑을 못했다고 해도 300일 동안 공들인 사랑이 끝났다 해도 사실,
사랑을 느끼는 건 한 순간 일테니까. 친구.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노희경 작가의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 이 얼마나 통찰력이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계획’이나 ‘결심’을 하고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자기 자신도 모른 채 어느덧 ‘사랑’이라는 감정은 스며들어 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저 사람에게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다고 할지라도, 혹은 저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우리 맘대로 계획대로, 의지대로,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의 하나의 큰 속성이자 우리가 ‘사랑’을 특별하게 부를 수 있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 인간에 대한 따뜻한 성찰들
<괜찮아 사랑이야>는 특히 인간에 대한 따뜻한 성찰들이 돋보이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인간이 완벽하고 완전한 존재가 아닌, 불완전하고 실수투성이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이 불완전한 속성들이 마냥 안타깝고 고쳐주고 싶은 느낌이 아닌, 나와 참 비슷하다는 ‘동질감’과 동시에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해서 주는 상처는 없는지 돌아보게 하며 ‘잔잔한 울림’을 선사한다.
지해수는 자꾸 ‘성기’만 그리는 남자아이에 대해서 장재열에게 고민을 토로하며 그 아이의 어머니는 굉장히 착하고 자식에게 애정도 많은 엄마이기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사람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재열은 오히려 반문한다.
재열: 성실하고 착한 사람은 자식한테 상처 안줘? 천사 같은 우리 엄마도 가끔 나한테 상처 주는데?
이 대사에서는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가까운 사람이니까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당장 나만해도 별로 친하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과한 배려를 할 때도 많은데, 막상 나의 부모님에게는 퉁명스럽게 대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과하게 ‘첫인상’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왠지 태도나 품행이 불량스러워 보이는 사람은 ‘좋지 않은’ 사람으로 쉽게 판단해버리고, 누구에게나 친절해 보이는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반대로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누구나 첫인상과 똑같지도 않을 뿐더러, 첫인상과 정반대인 사람도 세상에는 많이 존재한다. 우리가 그동안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사람을 쉽게 판단해 버린 적은 없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조금은 아쉬운 것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이 드라마에 다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도 이 드라마를 처음 볼때에는 잘 접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정신과의사들에게는 꽤나 논란거리가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바로 ‘환자의 비밀누설’이다. 극중 지해수는 환자에 대한 고민들(성기만 자꾸 그리는 남자아이, SM성향을 가진 남편)을 장재열에게 털어놓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정신과의사에게 ‘비밀유지’는 거의 목숨과도 같은 중요한 의료 윤리 중 하나다. 물론 극중의 어쩔 수 없는 장치였다고 하더라도, 종종 나타나는 이 장면들이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으면, 누군가에게 누설될 수 도 있다는 불안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지적들이 드라마 방영시 나왔던 지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괜찮아 사랑이니까.’
해수 : 너도 사랑 지상주의자니? 사랑은 언제나 행복과 기쁨과 설렘과 용기만을 줄 거라고?
재열 :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 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 정도는 돼야 사랑이지
사랑. 우린 보통 사랑에 대한 이미지를 그릴 때, 달콤함, 행복, 기쁨 이런 것들을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사랑이 반드시 그런 것 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사랑해서 오히려 아프기도 하고, 사랑해서 오히려 상처주기도 한다. 사랑은 긍정적인 속성 뿐 아니라 부정적인 속성도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그 모든 부정적인 속성 마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이 대사는 나에게 큰 감동을 준 대사였다. 우리는 끊임없이 트라우마들과 싸우고, 상처를 주고 또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상처들을 감싸 안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사랑’ 때문이 아닐까?
옛날에 내가 모든 것은 ‘사랑이 부족해서’ 싸우고 다투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혹시 우리가 관계 속에서, 혹은 마음의 상처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이유가 ‘사랑이 아직 부족해서’는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이 드라마는 말한다. 그 마음의 감기를 치유하고 낫게 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사랑’이라고.
사랑이면 정말 괜찮느냐고? 그래. 사랑이라면 정말 괜찮다.
그러니까 괜찮아, 사랑이야.
마음이 망가져있다면, 지금 많이 우울하다면 이 드라마를 한번쯤 정주행해보기를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