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왔다.
얼마 전까지 안산에서 지내던 그 루틴 그대로를 흐트러 트리지 않고 이곳에 와서도 죽 이어가고 있다. 일찍 나와 일부러 아침 햇살을 받으려고 해가 난 쪽을 따라 걷는다. 에어팟을 끼우고 자기 계발 유튜브 영상을 들으며 나름 여기서도 다르지 않게 지내려고 하고 있다. 다행이다 햇살은 어디서든 똑같이 반가워서... 난 7시간의 시차도 하루 만에 적응했다. 사실 여기엔 꼼수가 있는데, 공항으로 가는 날 아침 눈뜨고부터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잠을 못 잤다. 도착한 날, 현지 시각으로 아침 7시였고 잠을 꾸역꾸역 참다가 저녁 시간에 잠을 잤더니 바로 시차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아들과는 매일 통화하고 있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그저 무탈하게 지내라는 부모님과는 도착한 날 빼곤 여태 딱히 연락 없이 지내고 있다.
참... 만약에 내가 십 년 더 젊었더라면, 그 나이에 이 생활을 접했더라면 난 이곳에서 조금 더 발랄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아쉬운 점이 뭐냐 하면, 호기심이 크게 발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변한 걸 꺼 아님 이미 벌써 이곳에 적응해 버린 걸까. 좀 쓸쓸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 정말 솔직하지 못하다. 사실 여기서 훨씬 더 잘 지내고 있으면서 자존심 내세우고 있다.
안산에선 이랬다.
내방이 따로 없어 거실 바닥에서 자야 했던 나는 아침 일찍 굳이 혼자서 늘 밥을 차려드시는 아빠 덕에 잠이 깨곤 했다. 이따금 다시 잠에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늘도 다 잤다 마음먹고 이불을 개고 일찌감치 밖으로 나갔다. 동네 저수지를 저녁마다 운동 겸 언니와 함께 나갔지만 아침에는 솔직히 잠도 다 깼는데 거실에 앉아 티브이 보기도 싫고 해서 밖에 나왔다. 우리 집은 거실에서 티브이 보는 것 아니면 딱히 할 게 없어 뒤숭숭해진다. 한 시간 반정도 걷고 돌아와서는 씻고 도시락을 챙겨 자전거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페에 갔다. 늘 똑같은 자리에 앉아 기본 5시간은 죽치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카페에라도 오면 어디 나가는 기분도 들고 집에서보다 정신이 바로 잡혔다. 무엇보다도 테이블이 있어 편했다. 접이식 간이 테이블을 사서 베란다에 두고 꺼내 쓰기도 했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종일 집에 있는 아빠와 마주치는 게 많이 불편했다.
그에 비하면 사실 이곳에서 나는 호화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의 잘 사는 모습을 상상하며 버텨온 몸에 박힌 그 버릇이 여기 와서도 굳이 발현되고 있다. 비로소 이곳에 와서야 내 삶이 편해졌다고 인정하면 내 본래의 모습이 지질해지는 거 같으니까.
자유로움에 더 자신 있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