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 ILLUSTRATOR Feb 13. 2024

신데렐라가 되겠다.

내 인생을 바꿀 계획


내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왔다. 나도 백마 탄 왕자 뒤에 앉아 그의 성으로 들어가겠다. 인생 한 번뿐인데 여태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걸 못 봤다. 한데 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더라. 어떻게 그 사람들은 그런 인생을 살게 되는 걸까. 난 오랜 시간 동안 끌어당김의 법칙에 관한 영상을 보고, 뇌과학에 관한 책도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 계발서를 찾아 읽었다. 그들이 말하는 용어들을 찾아보고 이해하고, 실천도 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내 돈을 떡하니 떼어간 집주인이 항상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하고 이해해 보려 해도 그놈의 인생이 내 것보다 나은 것 같다. 남의 돈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쓰고 돌려주지도 않는 그 인간은 너무 잘 살고 있다. 내가 구정 때 미안한 마음으로 가족들을 대할 때, 어처구니없이 그 인간은 제대로 된 부모 노릇 해가며 두둑한 배를 두드리고 있을 모습이 너무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법 앞에서도 꿈쩍하지 않는 그의 행동의 근원은 어디서 나온 걸까, 대체 어디서 그런 뻔뻔함과 세상을 우습게 보는 태도가 나온 걸까. 부도덕하고 비양심적인 인간들이 판을 치는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나는 힘없고 멍청한 이로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결정했다, 나도 반 미쳐 살기로. 제정신에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니 자신만 너무 피폐해지는 것 같다. 적절하게 *페르소나를 씌우며 사는 게 낫겠다. 나는 신데렐라가 되겠다. 나의 왕자님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당신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금 이 신데렐라의 프로파일은 이렇다.

나이 40에 무직, 이혼했고 아이의 양육권과 친권 모두 남편에게 있다. 경력 단절은 물론 제대로 일 해 본 경험도 없다.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다행히 빚도 없다. 얼마 전 서빙 알바로 번 100만 원만 내 통장에 있다. 정말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백지다. 십여 년 전에 한 라섹수술의 부작용으로 왼쪽 시력을 거의 잃어 각막이식이 필요한 상태다. 그나마 주어진 능력이 그림인 내게 이는 치명타다. 이 신데렐라에게는 원수가 있다. 집주인과 모니카. 집주인은 내 전세금을 떼먹은 노삼일. 모니카는 내 그림을 떡하니 가져가서 책을 두 권 출판하고도 내게 아무런 수입을 주지 않은 캐나다인, 작가이다. 어쩜 혼자 독립하겠다고 제주도로 가서 해낸 일이 저 두 가지인가.


왕자님 나라에 가서 내가 이룰 일은 몇 가지가 있다.

1. 각막이식 수술

2. 비자

3. 돈

4. 명예회복


왕자님의 나라에서 나는 많은 걸 감수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언어도 배우고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고 모아서 아들의 학자금을 대주고 싶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고, 내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정말 솔직히 말하건대, 인생 밑바닥을 찍은 느낌이다. 더 내려갈 곳이 없어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인생을 너무 어렵게 살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착하게, 양심적으로, 세상을 좋게 보고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살았더니 내게 남은 건 없다. 어차피 한 번 살다 갈 인생, 어렵게 헤쳐가지만 말고 즐겁게 누리고 사는 법을 알아야겠다.


내일부터 나는 신데렐라다.





* 페르소나: 가면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개인이 사회적 요구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밖으로 표출하는 공적 얼굴이다. 특히, 실제 성격과는 다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