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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현 Nov 08. 2021

사회를 통제 대상으로 보는 K-방역

통제 선진국 대한민국

 사물에도 성씨를 붙이는 시대다. K-팝, K-드라마, K-뷰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지난 몇 년간 K-가문의 영광을 가장 빛낸 것은 K-방역이다. 코로나 펜더믹 초기, 확진자 검사와 추적에 힘을 쏟아 바이러스 전파를 효과적으로 통제했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에서 성공한 방역 모델로 평가하고 벤치마킹까지 했었다.


현재 K-방역은 명예롭게 은퇴할 준비를 한다. 지난 10월 27일, 성인 백신 접종률 71%를 달성하자 11월 1일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 들어섰다.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에 백신을 추대하고 물러나는 모양새다. 임승관(경기도 의료원 안성 병원장)의 말을 빌리면 과로서 위드 코로나다.


 과로서 위드 코로나. 마치 "2년간 인내해서 고난을 극복한 끝에 다다르게 된 성공 서사의 결말(21.11.02 <시사 IN>, 27P)"처럼 들린다. '위드 코로나'는 말 그대로 코로나와 공존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즉, 일정 정도의 위험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K-방역은 이런 준비를 마치고 물러나는 것일까?




 사실 K-방역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가진다. 확진자 검사와 추적에 많은 자원과 인력을 투입하지만, 정작 환자를 관리하는 데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지난 3차 유행(2020.12-2021.01), 병상을 확보하지 못해 병원을 통째로 격리시켜버리는 조치(코호트 격리)로 부천, 강릉, 부산, 울산 등 각지에서 100명이 넘는 확진자를 발생시켰다. 치료받지 못하고 죽은 사망자도 속출했다. 그럴수록 시민들은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이를 자양분 삼아 정부는 방역을 더욱 조였다.


 위험을 틀어쥘수록 위험을 수용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사실, 대부분의 시민은 코로나를 간접 경험할 뿐이다. 한국의 누적 확진율은 약 0.6% 정도다. "이게 묘한 숫자인데, 160명 중 1명, 본인 혹은 가족이나 친구가 감염되었다기 보단 지인의 지인이 확진된 얘기를 전해 듣는 정도다.(같은 책,  29P)"


 반면 유럽, 특히 스웨덴처럼 집단 면역 체제를 도입한 나라는 대 유행을 겪으면서 위험의 실체를 경험했다. 어린이나 청년은 감기 앓듯 지나가지만, 노인은 위험하니 좀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처럼 코로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스웨덴은 K-방역이 샅샅이 뒤지는 무증상 감염자나 경증 확진자 보단, 환자에 집중하여 병상 확보와 의료자원 획득에 힘쓰고 있다. 진정한 위드 코로나 준비를 해온 것이다. 말하자면 과정으로서 위드 코로나다.

 

 싱가포르는 우리보다 더한 방역 모범국이다. 지난 8월까지 확지자 40명 선으로 공적 관리를 해왔다. 그러나, 충분한 백신 접종률을 달성하고 방역을 조금 느슨하게 풀자 10월 19일 기준 3200명까지 확진자가 증가했다. 인구 대비로 따져 보았을 때, 우리나라로 치면 2만 5000명이 확진되는 꼴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위험 수용능력이 없는 사회는 조그마한 위협에도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보조바퀴 없이 자전거도 못하게 하던 부모님이 자녀가 성인이 되자 갑자기 외발 자전거타라고 말하는 꼴이다. 유래 없이 확산되는 바이러스를 목격한 시민들은 실제 위험보다 더 큰 불안에 빠져 병상의 수요가 포화 치를 넘을 수도 있다. 3차 유행이 반복되는 것이다. 환자에 대한 혐오와 공포는 언급할 필요 없이 당연하다. 공동체는 더욱 삭막해지지 않을까?


 즉, K-방역은 제대로 된 인수인계 없이 백신에게 뒤처리 하는 무책임한 사수와 같다. 백신만 등장하면 알아서 해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백신도 전능한 해결사는 아니었다. 그 효과 60세 이상 고령자들로부터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실정이다.

 

물론, K-방역의 초기 성과는 무시할 수 없다. 코로나19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보수적인 통제 방식이 유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통제가 약 2년간 지속된 현재에도 같은 위상을 지닐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과정으로서 위드 코로나'를 실천한 스웨덴은 초기에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집단면역 실험하느냐는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실험이 '위드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너도 나도 찾고 있다. 당시 스웨덴 정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록 다운(통제)이 유행에 효과적이라는 점을 안다. 그러나 처음엔 시민들이 수긍할 것이지만, 두 번째부터는 절대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 파도는 한 번에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받아들 일 수 있는 행동양식 아래에서 길을 찾겠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 들어와서 옳다고 받아들여진다.


 결과론적인 해석일까? 중요한 것은 '위드 코로나 체제가 옳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 스웨덴 정부는 사회를 온전히 통제될 수 없는 대상으로 보았다. 사회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공동체이고, 사람은 규칙대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각자의 개성을 지닌 존재들이 모인 집단의 행동양식을 칼 자르듯 분리시킬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이상적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처음에 술 먹지 말고 클럽 가지 말라고 말했을 땐 잘 지켰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통제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지하의 지하로, 창고의 창고를 향해 은밀한 자유를 향유한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통제를 유지해왔다. 

  

 규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비난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언제나 규칙은 예외가 존재했고 사람은 꼭 규칙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은 인간에 관한 기본적인 지혜다. 정부는(변이를 제외한) 유행의 원인을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은 탓'에서 찾고 있다. 이태원 클럽, 핼러윈, 명절 같은 이벤트가 그랬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약속한 민주적인 규칙까지 방역의 적으로 본다. 8.15 집회나 민주노총 집회가 그렇다. 우리나라 위정자들에게서 인문학적 지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주장에는 다음 반박이 항상 붙는다. '당장 생명이 위급한데 나머지 가치들은 희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명은 참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에 가린 위협들도 있다. 통제 조치의 연장으로 문 닫은 자영업자들도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급식소가 문을 닫아 그대로 굶어버린 노숙자도 있다. 양로원과 쉼터가 코로나로 폐쇄되어 여름과 겨울, 냉방과 난방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죽은 노인들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지 못해 덮친 우울증은 덤이다.

 간접적인 위협들도 있다. 지난 8월에는 기초수급을 받지 못해 사망한 장애인과 노숙자가 있었다. 이들의 처우를 호소하려고 기자회견을 하니, 공공기관은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다고 폐지 계고장을 보냈다. 어린이들의 학습권은 이미 격차가 너무 크다. 수십 년 후 어떤 간극이 나타날지 예상이 가지 않는다. 바이러스의 위협에 밀려 사람이 처한 또 다른 실체적 위협은 간과되고 있다.


 사회는 잘랐다 붙인다고 이전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는다. 애초에 자른다고 제대로 잘리지도 않는다. 정부는 K-방역 기조를 유지한 나머지 위드 코로나 준비에 꼭 필요한 병상과 의료자원 확보에는 미진했다. 잘라 놓은 상태를 전제한 기조를 다시 붙이기로 한 지금 시점까지 유지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코로나와 공존하는 주체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사람을 고려한 준비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임승관은 위드 코로나 체제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실이라고 말한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인용했다. 그는 덧붙여 말한다. "시민은 시민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어느 나라에서 확진자가 얼마나 나왔는지로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역경 속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각자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과정이 남을 것이다.(같은 책, 30P)" 우리 시민들도 정부의 통제로 움직이기보단, 성실과 관용으로 방역을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승관은 우리나라가 위드 코로나 준비에 미진했다고 말하지만, 지금이라도 바뀌면 된다는 듯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존경스럽다. 나는 여전히 불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K-통제가 아니라 K-자유, K-인권으로 세계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을까? 사실 나도 K-방역이 자랑스러웠었다. 나도 아직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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