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스에 만난 화관을 쓴 순례자의 조언
7~8일 일정으로 산티아고를 걷기로 했다. 대충 거리를 예상해보니 사리아(Sarria)부터다. 순전히 일정을 생각해서 고려해본 것인데.. 와서 보니 사리아부터 산티아고까지의 길이 가장 핫한 길이란다. 그리고 사리아부터 산티아고까지가 140킬로미터라.. 순례길 증서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일부러 사리아부터 걷기로 한 거냐며 놀린다.
사리아(Sarria) 근처인 사모스(Samos)에 지난밤 9시에 도착했다. 6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루고에 도착하니 시간은 밤 8시 30분, 낯선 곳이기도 하고 사모스(Samos)까지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아 택시를 탔다. 순박해 보이는 아저씨를 의심하고 싶진 않았지만 가고 또 간다. 택시 안 미터기의 말은 멈출 생각 없이 뛰고 또 뛴다. 50유로가 넘는 돈을 내고 사모스에 도착했다. 예산을 초과한 택시비로 저녁은 걸러야 했으나 긴장하고 온 탓인지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허기가 졌다. 코앞에 있는 바에서 진/수/성/찬을 주문했다. 예산땨위는 저 밤하늘에 던지고.
마시고 남은 화이트 와인을 챙겨 들고 서둘러 씻고 잠이 들었다. 깜깜한 사모스는 존재감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창밖 풍경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뭐지.. 이 동화 속 동네는. 오이와 나는 취한 사람처럼 실실거리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빨래집게와 비누가 필요해서 슈퍼마켓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꽃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오는 순례자를 만났다. 이름은 치아끼. 웹디자인을 5년 하다가 그만두고 이 길을 온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걸음이 느리고 12시 이후에는 걷지 않아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기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고 했다.
슈퍼에서 나와 숙소로 향하는 길에 다시 치아끼와 헝가리 아줌마를 만나서 여러 주의 사항을 들었다. 카페에서 뭔가 주문할 때는 순례자들을 따라 해라.
하지만 절대 걷는 속도는 따라 하지 마라.
Don't rush. Change your socks every 2 hours.
맥주를 마시고 있는 헝가리 아줌마가 취하면 노래하고 춤을 출 거라고 말했다. 춤과 노래를 듣지 못하고 할 일이 있어 그들과 헤어졌다.
산티아고를 걷고 난 후에는 프랑스 남부 바욘에 머물 계획이다. 큰 정보 없이 몇 개의 소개와 사진을 보고 결정한 곳이다. 걷기 전에 교통편을 마련해놔야 했다. 산티아고에서 바욘을 가려면 산세바스티앙을 거쳐야 한다.
내가 머문 숙소의 옆 호스텔에서 운영하고 있는 Bar에 노트북을 들고나갔다. 산티아고에서 산세바스티앙까지 기차를 예매하는데 영어 사이트가 말썽을 부린다. 도대체 몇 번을 시도해야 하는 걸까. 빨리 예약하고 이 동화 같은 사모스에서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천상에 온 신선처럼 이 동네를 즐기고 싶었다. 바의 셰프가 담배를 피우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다. 셰프를 겸하고 있는 사장과 종업원 모두 나와 함께 에스파뇰과 몇 개의 영어단어로 함께 표를 예매하기 시작했다. 목이 말라 생맥주 큰 거 한 잔 시키고 계속되는 예매 에러와 싸웠다. 다른 테이블 손님이 먹다 남긴 음식의 모양을 보고 이거 소고기야?'라고 물었다. “응. 소갈비야.”라고 알려준다.
배도 고프고 너무 친절한 그들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그 음식을 주문했다. 장장 2시간을 그 바에 있었다.
음식을 건네면서 잘생긴 사장이 예매 성공했냐고 물어온다. ‘아직’이라고 했더니 잠시 후에 주문하지도 않은 와인을 가져다준다. 나도 모르게 고마움의 탄성이 나왔다. 겨우 열차표 예약에 성공하고 나서 ‘매우 고맙고 음식도 맛있었다’고 냅킨에 적어 테이블 위에 두고 나왔다.
내일부터는 나도 순례자!
까미노를 걷는 동안은 모든 것을 비우는 시간이 되기를. 한없는 감사와 위로만를 채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