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을 이해 받기 위해 글 뭉치를 쓰겠습니다.
아빠는 "너는 성격이 더러워서 맞춰줄 남자가 있을 지 모르겠다."라고 말했었고, 고3때 담임 쌤은 "은지는 말라서 성격이 더럽지?"라고 했다.
도대체 내 성격의 어느 부분이 더럽다는 걸까. 누구보다도 눈치 빠르고 배려심이 깊다는 상반된 평가를 듣기도 하는데 말이다.
그 때로부터 십여 년이 지났고, 유행을 따라 MBTI 검사를 한 이후로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내가 남들보다 독특하고 유별나다고 했던 부분들이 누군가가 보기에는 굉장히 예민하고도 까탈스러운 성격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예민함을 사랑했다. 이 성격 때문에 좀 더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내가 요상한 패턴의 옷을 사오면 엄마는 "또 지같은 거 사왔네."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입은 모습을 보고는 "또 지같은 거 입고 있네."라며 이쁘다고 덧붙이곤 했다.이런 스타일은 나밖에 소화 못한다는 작은 관심종자의 마음과 자부심이 나를 구성하는 일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 명확한 분석 때문에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모호해졌다. 독특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한 내 성격은 INFJ들이라면 일반론적인 성격이었던 것이다. 친절하게 굴다가도 속으로 쌍욕을 하는 것이 이중인격자가 아니고 아수라 백작도 아니고 그냥 그런 사람 유형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이상한 성격을 이해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는데, 이미 나보다 앞서 이 성격을 이해받으려고 했던 선배들이 있었고 사회화를 위한 루트도 있었다.
작년에 강릉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
동생은 아빠에게, 나는 엄마에게 붙어서 MBTI 테스트를 도와드렸다. 결과는 심히 놀라웠는데, 엄마가 나와 같은 INFJ가 나온 것이다.
엄마가 검사지 응답은 내가 곁눈으로 보면서 응답한 것들과 대체로 정반대였다. 역시 엄마는 나와 정반대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었는데, 답안이 반대임에도 INFJ가 나온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동족혐오를 하고 있었다는 게 실증적으로 증명되었다. 내가 정신과에 가면 모든 문제의 귀결은 엄마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 사랑받지 못한 것이 내 유년기의 모든 결핍을 상징했다. 눈치 빠른 나보다 눈치가 한 발 더 빨라서 내가 하고 싶은 일 조차 마이크로 컨트롤 해버리는 엄마를 미워했다.
엄마의 섬세함과 배려를 가뿐하게 이용하면서도 가벼운 간섭에 대해서는 발작을 했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 원인을 나는 MBTI 결과에서 찾은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 닮아있어서 서로를 너무 빨리 간파해버리는데, 간파당하는 걸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이라 서로가 못미덥고 미워지게 된다.
이렇게 글을 쓰자니 나는 또 자조적으로 "와, 성격 진짜 더럽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냥 좀 넘어가는게 없이 꼬장꼬장한, INFJ라는 사람에 대해서 앞으로 한 조각씩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굳이 이해 받지 않다만 구태여 오해 받지 않고 싶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