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데나 휴대폰을 두는 나쁜 습관 탓에 나는 휴대폰을 집에 두고 도서관에 왔다.
중증 휴대폰 중독자로서 나는 오늘의 일정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에 갔다 올까? 차로 왕복 30분 정도 거리잖아.
아냐. 잘 되었다. 이번 기회에 활자의 숲에서 진정한 자연인으로 세 시간 정도 버티는 것이야 뭐. 나름 좋은 일이지'
항상 그렇듯이 신간 코너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 편안한 소파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음, 별 내용 아니구먼. 다른 책을 읽어야겠어.’
‘이것도 뭐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를 정성스럽게도 썼네.’
‘아, 지난번에 읽던 소설책 어디 있지. 찾아볼까?’
'역시 인기 있던 책이라 그런지 아직도 대출 중이네. 아쉽다.'
여기까지 휴대폰 없는 자연인의 기쁨을 활자의 숲에서 누렸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이라 짱짱한 에어컨 바람마저도 커다란 도서관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온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또 지난밤 잠을 설친 탓에 낮잠의 어두운 기운이 모락모락 올라오는데, 아 이럴 땐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 바로 글쓰기.
휴대폰에 상시 꽂혀 있는 도서카드가 현재 나에게 없는 바람에 오랜만에 사용하는 나의 도서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느라 좀 버벅거렸지만, 무사히 pc 코너에 자리 예약을 하고 앉았다. 그래, 휴대폰이 없어도 뭐, 컴퓨터가 있으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잖아. 하지만, 나의 흐뭇한 미소는 3초를 넘기지 못했다.
맙. 소. 사.
브런치에 들어갈 수가 없다. 브런치에 들어가려면 카카오 인증을 해야 하는데, 이건 휴대폰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아, 활자의 세상, 도서관에서도 휴대폰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니.’
괜히 pc의 모니터에 떠 있는 브런치 로그인 화면에 내 카카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어보지만, 카카오톡에서 인증버튼을 누르라는 메시지만 뜰뿐이다. 휴대폰이 없는 나에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아니, 글쓰기 앱의 선두주자인 브런치가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은 브런치에 로그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인가? 그렇게 한나절이라도 휴대폰 없이 살면서, 책 읽고 글 쓰고 싶었던 초보 언플러그드 자연인은 휴대폰을 철석같이 몸에 붙이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하지만,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지. 멍하니 pc에 앉아서 빈 모니터를 잠시 바라보았지만, 다시금 고쳐 앉아 한글 워드프로세서에 이렇게 이 글을 쓰고 있지. 물론, 작가의 서랍에 저장된 글을 수정해서 글을 올리려는 나의 계획은 좌절되었지만, 뭐 어떤가? 덕분에 투덜거리는 서툰 글 하나 이렇게 만들었으면 된 거 아닐까?
그리고 브런치앱에 고합니다. 휴대폰 없이 어디에선가 브런치 글을 쓰려는 사람을 위해 카카오톡 메시지 인증 말고 다른 방법도 만들어 주시길. 아니, 나만 모르는 거라면 누군가 알려주시길. 그래서 휴대폰 없는 어느 날을 꿈꾸는 사람에게도 자연 속에서 브런치에 글 쓸 자유를 주시길.
이상 어느 더운 여름날, 휴대폰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잠시 길을 잃고 한글 워드프로세서에 글을 쓰고 메일에 담아와 집에 와서 브런치로 옮긴 사람의 넋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