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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도서관

by 연구하는 실천가

우리 동네는 참 좋다. 내가 좋아하는 러닝을 하기에 최적인 잘 정돈된 낙동강 갈맷길과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도서관인 부산국회도서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6개월을 숨차게 달려오고 조금은 숨을 돌리는 여름방학 기간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른하게 나를 짓누르는 햇살과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에 나는 무서운 햇빛과 햇빛보다 더 무서운 나의 나태함을 피하고자, 도서관에 매일 온다.


내가 도서관에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우선 내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는다.(그 이유로 나는 도서관 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추어 온다.) 주로 내 등을 온전히 기댈 수 있는 등받이가 높은 일인용 소파나, 남편과 같이 올 때면, 예쁜 전등이 가운데 놓인 큼직한 커플 좌석을 고른다. 그리고는 바로 도서관 내 카페 옆 잡지코너로 간다.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거나 집에서 가져온 아이스 허브차를 담은 텀블러를 들고 카페 주변 테이블에 앉는다. 이곳에서는 취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커피가 나올 동안, 내가 관심 있는 이슈가 보이는 표지의 시사 잡지 한 두 권을 골라 읽는다. 가끔은 집에서 가져온 삶은 달걀을 까먹으면서. 그렇게 아침을 대충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내가 자리 잡은 좌석으로 이동해서 신간 도서 몇 권을 골라 읽는다.


이렇게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소파에 앉아 선선한 에어컨 바람의 쾌적함 속에서 하는 독서란. 조선시대 선비들이 한여름 계곡물에 발 담그고 하던 독서의 기쁨에 감히 가름할 수 있지...... 는 않겠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나만의 여름방학의 기쁨이다.

하지만, 이런 쾌적함에도 불구하고 활자만 보면 잠이 오는 나의 특성상, 졸음이 나를 서서히 덮칠 때쯤 나는 컴퓨터가 있는 공간으로 자리를 이동한다. 도서관 회원증을 키오스크에 대면 컴퓨터 좌석을 바로 예약할 수 있는데 그곳에서 나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며 종이 활자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인터넷의 세상을 유영하며 잠의 유혹을 벗어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도서관은 어떤 공공기관보다 꼭 있어야 하는 마을의 필수 공간이다. 어떤 기관보다 좋은 환경으로. 사실 요즘 새로 짓은 구청이나 시청 사옥의 웅장함을 보면 짜증이 올라온다. 공무원이 근무하고 민원인들이 가끔 찾아와 업무적으로 잠시 머무는 저곳을 저리도 화려하게 짓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에 비하면 도서관은 소박한 곳이 대부분이고 이마저도 적다. 적어도 부산국회도서관정도의 시설과 규모로, 많이, 좀 더 안락하게 지어질 필요가 있다. 책만 빽빽이 꽂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중간중간 예쁜 소파와 아기자기한 전등, 다양한 코너와 식물들이 어우러진 공간, 모든 시민들이 쾌적한 주거를 갖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적어도 이렇게 쾌적한 공공의 공간이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또 도서관 로비나 강당에서 가끔 열리는 크고 작은 축제들도 작은 문화적 윤활유가 된다. 지금 부산국회도서관이 교통이 좋지 않은 서부산 끝임에도 어떤 도서관보다 시민들이 많이 찾는 도서관 중 하나가 된 이유들이다.


일 년 365일, 특히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 시민 누구나 아무런 제약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그저 한낮의 더위를 피해 들어와 가볍게 걷고 있는 저 몸이 불편한 중년의 사람에게도, 잡지 한 권 골라서 읽다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든 저 노년의 어른에게도, 엄마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으며 그림책을 있는 저 어린이에게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느라 아침 일찍 줄을 서서 들어와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저 젊은이에게도 너무나 유익하다. 도서관은 마음과 몸의 재충전이 필요한 시민들의 안식처이고 대피처이다. 우리 동네뿐 아니라, 이런 좋은 도서관이 곳곳에 많이 생기길. 그래서 그들이 좁고 더운 집에서 여름을 버티기보다 넓고 멋있고 아름답고 싱그러운 도서관에서 외로운 마음을 채우고, 춥거나 더운 몸을 편안히 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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