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꿈

영지의고민상담실 22

by 영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공무원이 되고 싶은 사람이 많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들. 이미 졸업한 취준생들까지. 동네 한적한 도서관에서. 음악소리 시끄러운 카페에서. 그리고 하얀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가정집 방안에서도. 그렇게 나름의 꿈을 위해 네모난 책상에 앉아 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럼 이미 공무원이 된 사람들은 어떤가. 과연 어떤 꿈을 가진 사람이 지금 공무원이 되어 있을까. 그들도 한때는 똑같이 '그 책상' 앞에서 힘든 시간을 버텨내었을 텐데.


며칠 전.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사무실 근처 삼계탕집을 2명의 동료와 함께 찾았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후루룩 한 숟가락 뜨려는 찰나. 일행 중 한 명이 불쑥 내뱉는다.

"예전에 제빵을 배운 적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빵을 많이 좋아해요."


그 말에 나와 다른 직원 둘 다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평소 유난히 말수가 는 분이기에 더욱 그랬다. 호기심이 발동한 내가 물었다.

"전혀 빵 좋아하시는지 몰랐어요."

"그리고 제빵을 하셨다니 조금 놀랐어요."

(손사래를 치며)"에이, 그땐 돈 벌려고 배운 거예요."

"그래도 가끔은 그때 반죽하던 때가 생각나긴 하죠."


그리고 잠시 예전 생각이 난 듯 말을 멈추었다.

"막상 듣고 보니까 OO님은 공무원 보단 하얀 모자를 쓰고 열심히 반죽을 하는 모습이 더 어울리는 것도 같아요."

"아, 그런가요?"(다 같이 웃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직원도 말을 거든다.

"저도 실은 공무원이 되기 전에 증권사에서 근무했어요."

"어머. 진짜요?"

"전공이 그쪽이기도 했고요. 비록 인턴이었지만 두어 달 일하면서 모의투자도 해보고 그랬어요."

"근데 일하면서도 그렇게 재밌게 하진 못했어요."

"그래서 마지막 면담에서 저랑 증권업무는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나왔어요."

"지금 저는 공무원이 더 맞는 것 같아요."(웃음)


이어서 내가 물었다.

"OO님은 어릴 적 꿈이 뭐였어요?"

"꿈이라기보다는.. 손으로 뜨개질하는 걸 좋아했어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뜨개질은 계속하고 싶어요."

"셋다 '손'을 쓰는 활동이네요. 뜨개질, 반죽, 글쓰기"


나의 어릴 적 꿈은 신문기자다.

그땐 풍성한 파마머리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여기자가 타자기로 기사를 송고하는 모습이 왜 그리도 멋져 보였는지. 고3이 되어 가고 싶은 학과도 물론 신문방송학과였다. 하지만 당시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 살았던 여고생에게 신방과 진학은 이뤄질 수 없는 '무모한' 꿈이었다. 외삼촌이 살던 지역의 국립대가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비록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글 쓰는 일은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다. 내 꿈은 여전히 삶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렇게 그날. 세명의 공무원이 가졌던 꿈에 대한 이야기로 점심시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회색의 시청 건물.

낮 12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수백 명의 공무원들이 보인다. 무채색의 옷차림에 감정이 읽히지 않는 표정. 삼삼오오 각자의 메뉴를 떠올리며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간다. 서로서로 다른 듯 닮은 어느 직업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사이로 언듯 언 듯 비치는 파스텔톤과 원색의 옷차림들. 뭔가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며 시끌벅적 즐겁게 걸어가는 그룹도 있다. 거대한 무채색의 흐름 속에서 그런 모습이 금방 눈에 띄지 않을 뿐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습들이다. 그리고. 제빵사, 뜨개질, 기자 등등. 공무원이 되기 전 그들이 가졌던 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많은 이에게.

공무원은 조금은 무미건조한 직업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직업이 그렇다고 해서 그 안의 사람들까지 그런 삶을 사(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누구보다도 다채로울 수 있는 꿈을 가진 사람이 바로 공무원, 바로 그들이 될지 누가 알까.


"발목이 거의 나았어요. 이제 조정해야죠! 자주 뵙겠습니다"

지난해 발목 부상으로 2년을 쉬었던 조정(rowing)을 이달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오랜만에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나의 삶에 '균형'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준 조정이란 스포츠. 또한번 좁다란 배 위에서 노를 힘차게 저으며. 사람들과 함께 그려낼 올한해가 새삼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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