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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Mar 30. 2024

'밀물 때'와 '새들의 나라'

Am I good enough?

"우와! 아빠, 갈매기떼 좀 봐요!"

이미 지나간 썰물 때로 넓게 펼쳐진 회색의 갯벌이 황사로 희뿌옇게 보인다. 그런 갯벌을 내려다보는 길 위에 가족과 나들이 나온 꼬마 아이가 연신 과자를 던지고 있었다. 수십마리의 갈매기떼서로 싸울 듯이 달려들면서 아이 머리위를 빙글빙글 맴돌고 있다. 평범한 해변길 장면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천진난만한 아이보다는 갈매기들의 과자를 향한 집요한 날갯짓이 눈에 더 들어왔다.


 물 빠진 갯벌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간단히 먹을 것을 사들고 갯벌 방향으로 난 계단에 걸터앉았다. 저 멀리 진흙 벌판 깊숙한 안쪽에는 좀 전에 보았던 갈매기 무리들이 하얗게 부풀어오른 배를 내밀며 태양 쪽을 향해 눈을 감고 낮잠을 청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같은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따스한 봄햇살이 얼굴 전체를 감쌌다. 갯별의 진흙 냄새, 바닷물의 소금기 베인 바람, 황사를 타고 온 텁텁한 공기까지. 다양한 자연과 인공의 향기와 맛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나의 오감을 마음껏 자극했다. 행복했다. 얼마만의 평화로움인가.


 다시 눈을 뜨고 이번에는 바다 쪽의 갯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내가 앉은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갈매기 한 마리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자박자박 작은 걸음으로 길이 없는 진흙길에 새발자국을 내며 연신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녀석은 왜 저리 열심히 돌아다니지?' 호기심이 들어 먹이를 잡아내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계속 허탕을 치는 모습에 '제발 지렁이 한 마리라도 잡아' 나도 모르게 그 녀석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 녀석의 움직임을 보느라 어느새 썰물에서 밀물 때가 된 줄도 몰랐다. 갯벌의 깊은 언덕부터 밀물이 차면서 작은 물줄기들이 곳곳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면서 을 바깥쪽부터 잠식하기 시작했다.


 갯벌 안쪽의 거대한 갈매기 무리는 여전히 달콤한 휴식에 빠져 꼼짝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바깥쪽에서 밀려드는 밀물의 위협에도 연신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던 갈매기가 결국 갯지렁이 한 마리를 낚아채고 있었다. 내가 자리 잡은 계단 바로 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장면나도 모르게 힘차게 '물개' 박수를 쳐주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보기가 어려워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결기 비슷한 것이 조그만 생명체에서 느껴져서.


 이내 그 녀석은 점점 더 넓고 깊게 밀려드는 밀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갯벌 중간의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몸단장을 시작했다. 갈매기의 목욕을 자세히  적이 없었기에 나는 더 흥미롭게 그 장면응시했다. 물속에 머리를 담갔다 빼기를 반복하고 날개 쪽 깃털을 푸드덕거리며 춤을 추듯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온 세상을 향해 절규하듯 화려하게 몸을 씻어내는 그 녀석의 몸짓에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금세 두어 마리의 갈매기가 주변으로 날아와 녀석과 함께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웠다.  


 그 사이 바다 쪽에서 밀려들어 온 작은 물줄기들은 합쳐지고 다시 또 합쳐져서 거대한 물결이 되어 갯벌을 무서운 기세로 덮치고 있었다. 물길은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속도를 내면서 면적도 꽤 넓게 갯벌을 잠식하고 있다. 바다 쪽의 몇몇 갈매기들이 즐겁게 축제처럼 저녁 밀물 때를 맞이하고 있는 것에 비해 안쪽의 양지바른 곳의 갈매기 무리는 바깥쪽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눈을 감거나 머리를 날개 깊숙하게 파묻은 채 꼼짝하지 않고 있다. 거대한 바닷물이 갯벌 전체를 다 덮어버리기 전에 지렁이 한 마리라도 먹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갈매기는 아까 아이에게 받아먹은 과자로 이미 배가 부른 건지 미동조차 없었다. 그렇다.


 평일 늦은 오후. 서해안의 수백 평 남짓의 평범한 갯벌 위. '새들의 나라'를 일제히 덮치는 밀물 때의 장관을 우연히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지금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갯벌 바깥쪽인가 아니면 안쪽인가? 아무리 변명거리를 찾아봐도 나는 그냥 양지바른 안쪽 무리 속 한 마리였다.


Am I good enough?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가)
by 미셸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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