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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Nov 04. 2024

치앙마이행 비행기에서

운동과 인생에 정답이 있다? 없다?

지인들과 식사 자리에서

(선배언니) 나 회사 그만뒀어(무심한 듯)

(영지) 헉! 진짜요? 언제요?(놀라서 고개를 든다)

(선배언니) 좀 됐지. 그냥 그렇게 됐어. 안식년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여행 다니면서 쉬고 있지. 안 그래도 곧 치앙마이로 2주간 여행 가려고. 숙소랑 항공 예약은 끝냈어. 혹시 시간 되면 며칠 쉬러 와. 방은 2인실이니까.

(영지) 언니, 힘내요. 그래도 여행도 다니고, 잘 쉬는 것 같아서 보기좋아요. 치앙마이라... 이름부터 아주 솔깃하네요.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요

(선배언니) 진짜야? 네가 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웃음)


그로부터 2주 뒤

 꺼진 비행기 . 고도 몇 미터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대기와 비행기 표면이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웅장한(?) 소음만이 내 귀를 괴롭힌다. 어둠 속에서도 저마다의 손에 들린 세상과 소통하는 조그만 창을 통해 기내 방송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5시간 남짓 비행인데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탑승을 기다리면서 고민 아닌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나도 그랬으니까.


 나의 마지막 비행은. 

올해 1월 샌프란시스코행이었다. 10시간이 넘는 시간. 도대체 뭘 하면서 그 시간을 보냈는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업무로 가는 출장이었기에 현지 일정도 다시 확인하고 중간중간 노트북도 꺼내고 책도 꺼내서 읽었던 짧은 단상들 외엔 10시간을 어떻게 채웠는지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오늘처럼 뭔가 처음 하는 걸 하지 않았기에 뇌의 기억창고도 그 시간을 뚜렷하게 담아두진 않았나 보다. 그렇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싶다. 탑승게이트가 열리기 전에도 수첩을 꺼내서 잠깐 당시의 생각을 한 페이지정도로 정리했는데, 비행기가 이륙하고 대기권 가까이 다가가자 또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뭐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사실 기내에서는 처음 쓰는 글이다.

요즘처럼 학기 중에 여유롭게 앉아서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도통 안 생길 때 이런 마음은 너무도 반가운 이다. 뭐 인생에서 첫 경험은 뭐든 환영이고 또 나름 즐길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기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면 할 말도 없지만, 한 번이라도 해봤으면 뭐든 할 말이 생기는 거니까. 아무튼. 치앙마이로 가는 비행기도 처음이다. 이 공간을 공유하는 대부분 사람들나처럼 여행객이 아닐까 싶다. 갓난아이를 동반한 부부와 어르신들도 간간이 보이고 특히 초등학생을 동반한 가족들이 유난히 많다. 나도 치앙마이라는 도시가 태국에 있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름은 어디선가 몇 번 들어봤기에 지난번 식사자리에서 대학원 선배언니가 갑작스럽게 맞이한 퇴직을 기념한 안식년(?) 여행에 나를 초대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치앙마이.

솔직히 이름 자체가 주는 유쾌함이 있다. 서울, 수원, 대구, 광주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경쾌함 같은 것. 그래서 더 편하게 이곳을 갑자스러운 여행지로 선택할 수 있었다. 아무튼. 기류와 비행기가 만들어내는 ‘윙~’ 소리가 이제는 익숙해진 것일까. 그 소리에 장단을 맞춰서 키보드 위를 분주하게 오가는 열개의 손가락들. 노트북 모니터가 발산하는 빛에  손가락들은 마치 발레 무대의 무용수라도 된 듯 통통 뛰어다닌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자세를 바로잡고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아까 드문드문 보였던 작은 모니터 불빛들이 그사이 많이 줄어들었다. 2시간쯤 지났을까. 슬슬 잠이 몰려오는 시간이 된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오래간만에 9시까지 푹 잔 덕분에. 커피도 무려 2잔을 마셔서 그런지 그다지 피곤하지도 졸리지도 않는다. 그저 치앙마이로 가는 비행기 안의 나를 기록하고 이 순간을 남기로 싶은 의지만 가득하다. 그다지 특별한 내용도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빈 페이지가 새까만 텍스트로 가득 채워지는 것만으로도 나는 왠지 뿌듯하다. 처음으로 기내에서 쓰는 글이라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란 걸 가진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기에. 


 일과 학업 그리고 운동.

한국에서의 바쁜 일상에서 오늘처럼 3박 4일 짧은 여행을 무작정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낸 것도 그렇고. 이제 나는 치앙마이든 어디든 필요하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머리가 복잡하든 아니든 관계없이. 그냥 훌쩍. 어디든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는 나에게 그것 이상의 많은 것을 내 인생에 가져다줄 것이다.


 무한한 기회의 창.

그것은 바로 이런 크고 작은 용기의 발휘를 통해 열리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기내에서도 글을 통해 내 마음을 정리하고 표현하고 주변을 관찰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에 스며들고 환경에 적응하는 내 모습에 다시금 놀라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아닐지.


 낯선 뭔가를 하는 것.

이런 일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면 이제 내가 정복해야 할 두려움이 또 있을까. 낯선 사람 정도? 여전히 많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뭔가를 하나 뛰어넘고 있다는 막연한 깨달음 비슷한 걸 느낀다. 이 여행이 내게 준 의미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장애물 혹은 두려움의 벽을 내가 스스로 뛰어넘었다는 것이 아닐까. 웨이트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에게 체지방 감량에 대한 고마움 함께 두 번의  강습 약속을 펑크 낸 PT선생님 '미숙함'까지 내가 "그럴 수 있죠"라며 수용하고 그 이후 수개월을 함께 했던 것도.(결국 첫 선생님과는 같은 문제로 수업을 완주하지 못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런 종류의 (용서가 아닌) ‘용기’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낯선 여행지로 향하는 기내에서 스스럼없이 노트북을 꺼내어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이 용기와 별반 다를 것이 있을까. 새로운 감정이든 결정이든 사람이든 여행이든 관계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쩌면 내가 넘어야 할 가장 높으면서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요즘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뛰어넘으며 나를 시험하고 있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그 실체를 내가 벗겨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최근 나의 행보는 (내가 생각해도) 꽤나 파격적이다. 하지만 자연스럽다. 나답다. 그래서 거리낌이 없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가까운 사람들이 거부감보다는 "멋지다"라는 표현을 더 자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은 의아하다고 속으로 생각할지도...) 뭐 그렇다. 이런 모습이 바로 진짜 나란 사람이기에. 지금까지 나는 너무 많은 프레임에 나를 끼어 맞추면서 살아온 게 아닌지. 이제 내게 남은 생애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내일, 모레, 다음 달... 언제 또 무슨 일이 내 일상에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동안 나는 너무 정해진 틀에다 스스로를 가둬 놓고 살아온 느낌이다.


 "운동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최근에 바뀐  트레이너 선생님이 며칠 전 강습때 했던 말이다. 사람의 몸이 재각각으로 생겼기에 그에 맞는 운동의 정답도 여러 개라는 의미로 나는 이해했다. 그렇다.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정해진 틀이 곧 정해진 일상의 정답인 듯 알고 살아온 것이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었다면. 이제 나는 일상을 나만의 정답들로 다채롭게 채우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해볼 작정이다.


 이륙을 하고 벌써 2~3번이나.

기류의 영향으로 식사 서비스가 중단되었고,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밥을 먹다가 잠시 멈추고 잠잠해질 때까지 다시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내 여정 종착점인 치앙마이공항까지 얼마나 많은 기류를 만날지 알 수가 없다. 견딜만한 기류도 물론 있을 테지만 한두 번은 꽤나 심한 기류를 만나서 이렇게 글을 쓸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상의 매 순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를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발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일상을 채운 사소한 용기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내 인생의 종착점까지 연결되듯이 말이다.


 나는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나는 더 새로운 것들을 접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씩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그래야 한다’는 ‘정답’이라는 허상들끊임없이 바깥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 가볍게 단순하게 머릿속과 마음속 공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나만의 답들을 담을 수 있다. 그래야 더 포용할 수 있다. 그래야 더 들을 수 있다. 그래야 더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들. 나아가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까지.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를

진심으로 변화시키길 원한다면, 가장 먼저 나부터 비워내야 한다. 수시로 비우고 채우고 비우고 채우고. 내 마음과 머릿속은 그렇게 새롭고 오래된 것들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과정 속에서 점점 그 벽이 얇아지고 투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벽 자체가 없어져서 세상과 내가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더 이상 내가 고뇌하지 않는 바로 그 시점. 그 지점이 어쩌면 내 생에 최고이자 마지막 순간이 되겠지.


 2024년 10월 어느 늦은 저녁 치앙마이행 비행기.

이 비행기를 타기까지 내가 만든 용기는 과연 몇 개였나.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두어 번 정도다. 학교 선배언니의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은 그 순간과 가족들에게 여행계획을 이야기하던 때. 당연히 두 번째 용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것이었고 포기할 뻔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욕먹을 각오든 용기든 뭐든 나다운 나를 위해 버텨냈고, 당시는 꽤나 죄책감 비슷한 걸 느껴야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냥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내가 하는 이 틀린 일은 아니기에. 단지 '드문 일'이다. 앞으로 나는 더 자주 이런 종류의  '드문 일'을 만들 작정이다.


 운동에 정답이 없듯, 인생도 정답이 없다!

나는 진정한 나로 오롯이 살기 위한 용기를 마음껏 발휘하면서 살 작정이다. 이번처럼 몇 번 시험적으로 해 본 결과,  나쁘지 않다. 왜 진작에 이렇게 살지 않았나 싶다. 무엇을 위해. 도대체 누구를 위해. 나는 정답이라는 알 수 없는 다른 이가 만들어 놓은 틀에 스스로를 가두는 삶을 살았을까. 이제라도 나는 진짜 내가 원하는 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어디서? 치앙마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 있게. 

더 단순하게. 더 명료하게. 더 유쾌하게.

나 자체로 사는 생이 무엇인지 일상에서 실천하는 삶.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내가 먼저 행동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인생에서 가져야 할 유일한 정답이 아닐까.


 먼저 행동하고 실천하는 삶.

그것이 유일하게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을 나는 요즘 더욱 명하게 깨닫고 있다. 내가 먼저 해보는 것. 여행도 운동도 공부도 반성도…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실천하는 데 있어 어떤 것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꽤 긴 글을 써내려 오는 동안.

주변이 깜깜해졌다. 바로 옆자리 사람만 제외하고 주변 승객들은 모두 잠이 들었다. 나도 슬슬 눈에 피로감이 몰려온다. 아침 운동을 너무 열심히 했는지 심하지는 않지만 허리 통증도 신경이 쓰인다. 이 정도면 첫 기내 글쓰기 도전에서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해도 되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이 글을 다시 읽어본다면 어떤 느낌일지... 너무 두서없이 쓴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런 의식의 흐름에 충실하게 따른 글도 어떻게든 인생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름 합리화를 해본다. 아! 더 이상은 모니터를 볼 수 없다. 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휴식을 취하자. 1~2시간 후면 착륙일 텐데. 지금은 용기보단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다...(치앙마이 여행후기는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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