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몸으로, 밤엔 마음으로 떠났던 진짜 여행
여행 3번째 밤, 감정의 챗바퀴에 올라탄 생각. 그리고 다음 날, 바다 위 루프탑 풀장에서 나답게 써 내려간 시간. 이 여정은 단지 힐링이 아니라, 나를 다시 충전하고, 처음의 감각을 회복한 기록이다.
사실 전날 밤 3시가 넘은 시간까지 나는 깨어있었다. 여행지가 주는 낯선 느낌은 그 안의 나 자신까지도 낯설게 만들어버리니까. 그래서 여행은 새로운 세상의 발견인 동시에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하는 것 같다. 친구는 일찍 잠이 들었고 나는 노트북을 앞에 놓고 무작정 책상 앞에 앉았다. 여행 중 나의 감정과 느낌을 조금이나마 끄적이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여행 가방과 함께 일상의 고민거리도 싸매고 왔기에. 그렇게 육지에서 시작된 생각이 자연스럽게 섬까지 흘러 넘어왔다. 얼마나 멍하게 앉아있었을까. 생각의 생각을 거듭했다. 생각의 챗바퀴는 머리를 위한 놀이기구가 아닐지. 다만, 어떤 건 타면 자꾸 또 타고 싶지만 또 어떤 건 타고나면 너무 지친다.
어느 순간 왠지 모를 벅차오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을 그만해야 하는 신호인가? 아니다. 예전 같았음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이름 모를 감정을 꾹꾹 눌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더 선명하고 분명하게 그것들을 바라보고 느끼고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책상에 놓인 투명한 생수병을 따서 한 모금을 마셨다. 한결 나았다. 그리고 침대로 올라가 조용히 잠을 청했다. 낮에는 몸으로 여행하고 밤에는 머리가 여행하는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번 제주여행에서 내가 유일하게 기대한 일정이 하나 있다. 바로 바다가 보이는 루프탑 수영장에서 나만의 놀이공간을 갖는 것. 이를 위해 4일 차 하루 일정을 완전히 비워두었다.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오직 수영과 글쓰기만 할 계획이었다. 거기다 곁들인 생맥주와 칵테일 그리고 후라이드 치킨까지. 결론은 완벽했다. 요즘 웨이트운동에 푹 빠져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글 쓰는 작가의 감성을 다시 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독자들을 위한 브런치 글을 무조건 2개 이상 발행하는 것이 목표였다.
푸른 제주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 풀(pool)과 노트북이 놓인 테이블. 그 순간 그 공간은 단순한 호텔 수영장이 아니었다. 영지작가를 위한 맞춤형 놀이터였다. 그 안에서 나는 잊고 있었던 글쓰기의 감각을 조금씩 충전하기 시작했다. 물기를 머금어 축축한 수영복에 호텔 가운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앉아 3일간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내 마음이 진짜 움직였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봤다. 그리고 나름의 서사를 담아 오전에 하나, 늦은 밤 또 하나의 글을 발행했다. 글 발행은 브런치 작가의 당연한 책임이지만, 이번은 나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지켰고 거기서 오는 뿌듯함에 어느 때보다 편한 마음으로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첫 숙소의 기대이상의 정갈함을 시작으로 그다음 날 조식으로 만들어져 나온 샌드위치 빵의 '처음' 느끼는 바삭거림과 담백함. '처음' 운전해 본 차종의 렌터카. 오후 2시가 넘어 도착한 우도에서 갑작스럽게 에어컨이 고장 나 우리가 마지막 손님으로 선정되어 먹을 수 있었던 짜장면과 탕수육 그리고 짬뽕, 세 가지 음식의 '처음' 느껴본 조화로운 맛까지. 제주에서 떠올려본 여정에서 '처음'이란 단어가 꽤 등장한걸 보니 새로움은 여행에서는 빠질 수 없는 친구가 맞는 것도 같다. 처음이 주는 단순히 신선한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큰 기대 없이 사소한 행복만으로 일상을 버텨온 결과일까. 어느 쪽이든 중요한 건 내가 '처음'이 주는 감정들을 그래도 여정의 마지막을 앞두고 꽤나 상세하게 기억해 냈다는 것이다.
나중에 다시 찾았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기억과 풀로 충전한 작가의 감성. 이 두 가지가 이번 제주섬 여행에서 육지로 유일하게 가져가는 나만의 기념품이다. 아, 우도 로드샵의 주황색 귀여운 포장에 반해서 산 팀원들을 위한 감귤 핸드크림도 있구나. 그것까지 세 가지를 여행 가방에 잘 넣어서 이제 다시 일상 속으로 나는 오늘 돌아간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을 더듬어 다시 찾을 곳이 이미 몇 군데 생긴 건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
이번 여정에서 되찾은 감각과 감성은
내 안에서 오래, 천천히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 섬을 찾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단단한 마음으로
지금의 이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 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