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논어를 쓰는 시간
"안녕하세요, 수원에서 온 영지입니다!"
"제차로 수원에서 순천까지는 휴게소 두 번 정도 들르고 하니까 4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수원과 순천의 지리적 거리는 단 4시간밖에 안되지만, 공무원 영지가 이곳 향부숙에 오는 데 걸린 시간적 거리는 10년입니다."
2014년 10월, 전(前) 시장님께 처음 선물 받은 책 『논어의 자치학』. 향부숙장님의 책 '논어의 자치학'을 2014년 10월, 전 시장님께 처음 선물 받은 후 2025년 향부숙의 숙생으로 입학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그래서 향부숙의 전통처럼 내려오는 시군별 자기소개의 시간에 내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겉으론 무표정했지만 내심 꽤 많은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주는 깊이와 무게가 어떤 것인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지방행정서기(행정 8급) 시절. 너무 두껍고 제목부터 고리타분해서 반년을 그냥 내 자리 책장에 꽂아두었 책 '논어의 자치학'. 그러다 어느 평범한 날. 평소보다 이른 출근을 하고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책장에 꽂힌 이 책을 자연스럽게 꺼내 들고 읽기 시작한 그 순간. 이 장면은 이후 공무원 영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 후 나는 39살에 훌쩍 떠난 해외어학연수, MBA 입학, 공무원 직업 에세이 출간, 한국코치협회 코치 자격 취득, 문화예술 및 리더십 분야의 단독·공저 집필까지, 내 안의 ‘가능성’을 계속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지금도 『논어의 자치학』은 내 책상 옆을 지키며,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버릇처럼 집어드는 책이 되었다.
10년 동안 19번을 읽으며, 책 표지와 종이에는 묵은 때가, 나의 얼굴에는 주름이 하나둘 생겼다. 인간과 책은 전혀 다른 존재지만, 시간의 흔적을 품는 방식은 묘하게 닮아 있다. 나란 '공무원'은 '논어의 자치학'과 함께 성장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 성장의 길에 있다.
그동안 나는 글을 통해 숙장님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이제는 현장에서 육성으로 배우고 있다. 그래서 올해, 시청 팀장 3년 차 자격으로 드디어 향부숙 숙생이 되었다. 입학식 날, 나의 세 번째 ‘논어’를 숙장님께 선물했다.
지난달 강의에서 숙장님은 “향부숙에 한 번도 안 빠지는 건 종종 있지만, 딱 한 번만 빠지는 건 어렵다”라고 하셨다. 속으로 조금 뿌듯했다. 내가 바로 그 ‘단 한 번’만 비대면으로 출석한 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선거 투표관리관 업무로 어쩔 수 없었는데, 온라인으로 들어보니 왜 현장에서 직접 들어야 하는지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딱 한 번의 결석을 빼고 내가 매달 왕복 8시간을 OO에서 순천을 오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향부숙에 내가 부여한 아주 사적인 의미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논어의자치학'과 이 책으로 탄생한 '향부숙'이 내 삶에서 만들어낸 특별한 서사가 나를 이곳 순천으로 계속 끌어당기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발을 들인 숙생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서사를 남길 수 있다고 믿는다.
숙장님은 『논어의 자치학』 서문에 이렇게 쓰셨다.
누구나 자기만의 논어를 써야 한다.
10여 년 전, 어느 한 구청 건물 2층에서 이 문장을 읽은 8급 공무원은 ‘나도 나만의 논어를 쓸 수 있을까’ 막연히 다짐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다른 10년을 향해 서 있다. 그리고 이제 숙장님이 강조하신 ‘공부·아부·운동’이라는 세 가지를 평소에 실천하며, 앞으로 남은 서사를 천천히 써 내려가고자 한다.'자기 경영과 지방경영'의 의미부터 하나씩 이해하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이제 시청 팀장이 되어 올해 향부숙에 정식 입학을 했다. 이 모든 것이 10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또 어떤 일이 나란 공무원에게 일어날까? 나는 이곳 향부숙에서 어떤 서사를 쓸 수 있을까?
2년 전, 두 번째 논어를 전해드리기 위해 처음 찾은 순천. 향부숙을 나와 순천만국제정원 한가운데서 가을 햇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피식 웃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올해, 다시 순천으로 오기로 한 결심이 또 한 번 잘한 결정이었다는 걸,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느낀다.
"영지작가, 글은 영감이 왔을 때 쓰는 게 아니에요."
"글을 쓰다 보면 영감이 나오는 거지..."
지난주. 하루 휴가를 내고 295km를 달려 도착한 순천만. 그곳에 특강을 준비하면서 몇몇 수강생들이 가져온 책에 작가서명을 하고 계신 교수님(2014년 교수님이 쓰신 책을 선물 받고 지금까지 그 책을 18번째 읽고 있다. 3년 전 우연히 책의 저자인 교수님을 직접 찾아뵙게 되었고 그 이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인연을 끈을 이어오고 있다) 앉아계신다. 줄 맨 끝에서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고개를 꾸뻑하고 나의 '두 번째 논어'를 내밀면서 인사를 드렸을 때 교수님이 내게 가장 먼저 해주신 말씀이다.
요즘 내가 브런치글 발행이 뜸한걸 어떻게 아셨지?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이내 2년 전 나의 첫 번째 책을 출간하고 찾아뵈었을 때 작가는 '카나리아'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짧게 보내주신 글이 떠올랐다. 카나리아는 탄광 속에서 독가스를 사람보다 먼저 냄새 맡고 울기 때문에 어둡고 깊은 탄광을 들어갈 때 광부들에게 작고 여린 카나리아의 노래만이 그들을 지겨주는 유일한 생명줄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나에게 세상의 문제에 대해 먼저 글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작가의 소명임을 카나리아에 빗대어 알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1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만난 내게 이제 교수님은 글을 쓰는 영감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냥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생각들이 은근쓸쩍 따라붙는다고. 그러니까 계속 글을 쓰라는 의미다. 사실 그날 강의장을 떠날 때 나를 바라보며 교수님은 같은 말을 다시 하셨다. 영감은 글을 쓰다 보면 따라오니 글 쓰는 걸 멈추지 말라고. 그 순간 그 말은 분명 먼 길을 달려 찾아온 나를 향한 것이었지만 문득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처럼 들렸다.
다시 순천을 떠나 3시간을 걸려 올라오는 동안. 나는 일의 순서라는 것이 꼭 '그래야만 하는 게' 있을까 생각했다. 뭐가 먼저인가? 일을 만들어가는데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순서가 과연 맞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순서에 대한 선입견 같은 걸 갖고 있진 않을까? 뭐 이런저런 생각들로 올라오는 여정이 심심하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대학원 학기중과 방학을 대하는 나의 자세에도 비슷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어제 대학원 2학기 기말과제 제출을 마무리하면서 나름 나만의 '공식적인' 종강을 했다. 늦은 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꽁꽁 얼어버린 고속도로를 꽝꽝 울려대는 BTS 음악과 함께 타고 내려오는 나의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당분간은 과제와 수업준비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자유로움이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아침 이 글을 쓰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내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학기 중엔 과목별로 교수님들이 요구하는 과제를 하느라 사실 내 공부를 거의 할 수 없는 구조이기에.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파트타임 대학원생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긴 하지만 내가 극복해야 할 과제인 것도 분명하다. 어쩌면 학기중은 내 공부를 위한 준비기간이 되고 방학기간이 진짜 내 공부를 위한 시간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대학원 공부를 예전 학부 때처럼 너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닐까. 소위 말하는 '자기 주도적인' 공부가 꼭 필요한 건 중고등학생이 아닌 대학원생인지도 모른다. 어젯밤 나는 이제 방학이라서 맘껏 놀 수 있다는 꽤나 달콤한 감상에 푹 빠져있었다. 그리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그 꿈에서 확 깨버렸다. 학기중은 과목별 교수님들이 하라는 것만 하면 되니까 오히려 내 머리를 덜 쓴다. 진짜 머리 쓰는 건 이제부터인 것이다.
오늘의 글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순서'에 대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고찰이라고 하고 싶다. 영감이 떠올라야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과 같이 나의 진짜 공부는 학기 중이 아닌 방학때 해야 한다. 언뜻 전혀 다른 이야기로 들리지만 내게는 완전히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이렇게 일이 만들어지는 '순서'에 대한 내가 가진 또 다른 선입견들은 앞으로 계속 나타날 것이다. 단, 내가 계속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생각하지 않으면 깨닫는 것도 없다.
12월의 순천. 햇살 가득한 강의실에서 마주한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쓰는 이 글. 지금 이 순간 같은 하늘 아래 비슷한 가치를 공유한 누군가에게 우연히 읽히고. 그 누군가에게 또 다른 영감의 소재가 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한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아이보리색 갈대들이 흔들흔들 춤추는 순천만국제정원의 한가운데 위치한 강의장을 빠져나오는 길. 마당 한가운데 서서 그날따라 유난히 너그럽고 따스하게 세상을 내려다보는 태양을 보기 위해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저 널찍한 하늘이 하얀색 줄노트라면 일상의 잡다한 이야기들로 가득가득 채워줄 텐데...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웃음은 사실 이번 여정을 결정한 나를 향한 것이었다. 꽤나 잘한 결정이라고...
“이곳에서 나만의 논어를 쓰는 일, 그 시작은 오늘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