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 이환희, 이지은 지음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쓴 문장들을 휘리릭 읽어 넘길 수가 없어서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애도를 한다는 것...
애도 기간이 끝나면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그 사람과 함께 한 과거를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미래를 살아 가야 하지 않냐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애도는 소중한 사람을 잊지 않고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내 속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생기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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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돌덩이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나는 안다. 그것은 세월에 따라 조금씩 닳겠지만 결코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돌덩이가 조약돌, 나아가 모래알만큼 줄어들 수는 있어도 절대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지는 못한다.
당신을 모르던 세계로 나는 돌아갈 수 없다.
<들어 봐, 우리 위해 만든 노래야> 프롤로그 중
이지은 편집자보다는 이환희 편집자를 먼저 알았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고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에 대한 편집자 후기를 읽고 이환희 편집자를 처음 알게 됐다. 단순한 책 홍보를 넘어서 책을 기획한 진정성, 저자에 대한 믿음이 글 속에서 진하게 풍겨져 나와서 홀리듯이 책을 구매했었다.
그러다 한겨례에서 열렸던 출판 편집자 강의에서 이지은 편집자를 만났고 그걸 인연으로 편집자 독서 모임을 함께 했다. 이지은 편집자의 반려인이 이환희 편집자라는 건 뒤늦게 알았다.
두 사람이 SNS에 남기는 글을 보고, 혹은 이지은 편집자를 통해 가끔씩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나란히 걸어가는 부부구나'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 다 편집자로서도 배울 점이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세상에 관심이 많고 동물을 사랑하고 소수자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두 사람을 존경했다.
이지은 편집자는 평소에 부지런히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겼다. 그의 서평들을 읽으면서 바쁜 와중에 꾸준히 책을 읽는 성실함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분석과 감상이 담긴 글을 나 혼자 읽기 아까웠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출간 제안을 했고 그렇게 <편집자의 마음>을 함께 작업해서 냈다.
그때 이환희 편집자가 동료 편집자로서 추천사를 써 줬었고, 책 출간을 축하하며 이지은 편집자에게 케이크 선물을 했던 게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책을 내고 나서 이지은 편집자한테 "계속 글을 쓰세요."라고 얘기했었다. 이지은 편집자는 어설프게 중립을 지키려고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그가 쓰는 글에는 본인의 신념과 주관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그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스스로 여기저기 부딪치고 깨지면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편집자가 아닌 저자로서 이지은 편집자의 글을 계속 보고 싶었다.
그런데 두 번째 책이 애도의 글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환희 편집자의 글도 계속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가 펴내는 책도 계속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지은 편집자가 100일 동안 매일 SNS에 올리는 애도의 글을 보면서, 뭐라고 위로의 말을 남겨야 할지 몰라서 덧글을 썼다 지웠다 한 적이 많다.
시간이 약이다, 힘내라...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걸 알았기에 그저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애도의 글을 책으로 엮을 거라는 소식을 알고 나서 "글을 쓰면 치유가 될 거예요." 이런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넸던 것 같다. 사실 그 말을 하고 나서 많이 후회했다. 한 줄 한 줄 써 나가면서 소중한 이를 잃은 아픔이 더 깊이 몸과 마음에 파고들었으리라.
그럼에도, 미안하게도... 이지은 편집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한동안 밤마다 깨서 옆에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애썼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 열심히 챙기려고 했다.
누구나 언제든 소중한 이를 떠나 보내야 할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최대한 뒤로 미룰 수만 있다면, 혹은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매순간 열심히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이지은 편집자에게 전할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이지은 편집자에게는 매일이 애도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하루하루 '살아 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또 어리석을지도 모를(?)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지은 편집자가 글을 쓰면 좋겠다.
누군가는 그의 글에서 위로를 받고, 누군가는 그의 글에서 삶의 방향을 찾고 삶의 태도를 배울 것이다.